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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통과했다.

아직도 배운다- 글쓰기 수업 '비유'

by Goldlee

월요일 저녁은 둘째 이우와 함께 배드민턴을 치는 시간이다. 이제 배우기 시작한 이우에게는 네트는 필요 없고 공간만 있으면 된다. 가까운 테니스장에서 하자고 해도 좀 더 먼 거리인 배드민턴장으로 걸어간다. 몇 주를 가르쳐 주니 좀 더 하면 주고받으며 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투덜대지 않고 따라가는 꼴이다.

지난 월요일에도 운동하러 갔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고 할 때 도어록이 "학교 종이 땡땡땡~"이라고 노래를 부른다. 건전지를 나가는 길에 교체하려니 귀찮았다. 금방 오는데 괜찮겠지 싶었다.

연습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설마 했던 일이 생긴 것이다. 번호를 누르면 신호음은 들리는데 열리지가 않는다. 몇 번을 해도 안된다. 괜히 철문의 멱살을 흔들어 시비를 걸어 본다. 대답 없는 철문은 멀뚱멀뚱 내려다볼 뿐이었다.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스마트폰만 보고 있을 때 이우가 말했다.

"아빠 창문으로 들어가면 안 돼?"

이우의 말에 눈을 치켜뜨고 창문을 훑어봤다. 바람만 통하는 모기장이 견고히 붙어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먼지투성이라 내 얼굴 한쪽이 찡그려졌다. 다시 한번 철문의 멱살을 흔들어 봤지만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철문을 놓아주고 창문의 모기장을 손가락으로 건드려 봤다. 새까매진 내 손가락은 나를 보고 말한다. '갈아 놓고 갔어야지! 한심한 놈.'이라고 한다. 이우도 아빠만 보고 있다. 지체할 수 없었다. 확 잡고서 뜯어 버렸다.

뜯긴 모기장 속에 있는 창문은 열려 있었다. 몸을 쪼그리고 창문을 통과했다. 현관문을 열고 도어록 건전지를 교체했다. 덜렁거리며 걸려있는 모기장도 다시 붙였다. 창문의 열린 틈으로 어두워진 밖을 잠시 앉아서 봤다. 내 눈에는 어둠이 찾아오고 잠시 잊고 있던 배고픔이 짜증을 냈다. 이우에게 간식이라도 해줄까 싶어 짜증 나는 기분을 누르고 상냥하게 물었다. 창문 밖에서 짜증만 내던 아빠와 밖으로부터 가둬지고 나서 상냥해진 아빠를 멀뚱히 쳐다볼 뿐이다. 침묵을 깨우는 이우의 대답은 아직 밖에 있는 듯했다.

"아니, 씻고 잘래."

다음날 아침.

거실에 있는 창문을 열고 밖을 봤다. 지난밤에 창문을 넘어 통과해 보니 평소와 다른 창문이 보였다. 지금까지는 창문을 통해 안에서 밖을 보기만 했었다. 그리고 창틀에 가둬진 내 시선은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를 안심했던 것이다. 다른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도 안을 볼 수 있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창문으로 어떤 것이든 나갈 수도 들어갈 수도 있다. 들어오는 것이 무엇이든 안에서 볼 수도 있다. 그제야 보였다. 햇살과 함께 세상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바람과 함께 고정관념이 나가는 것이 보였다. 안에서 보는 창문과 밖에서 보는 창문은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것이 달랐던 것이다. 지금까지 창틀에 갇힌 바깥세상만을 본 것이다. 그 틀에 박힌 세상을 보았던 것이다. 이우가 아빠를 바라보며 창문을 넘어가도 되지 않느냐고 했을 때 간단한 행동이지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모기장만 뜯었지만 창틀도 깨트린 것이다.

이우에게는 아빠인 내가 창문이다. 배드민턴장이 멀지만 아빠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우를 생각하지 못한 창틀 같았다. 더러운 모기장 따위는 막지 못하는 햇살과 바람은 이우에게 들어가고 있었고 나에게 틀에서 나오라고 했다.

'창문으로 본다. 안에서든 밖에서든 어디로든 볼 수 있다. 내 마음속의 창틀에 갇혀있지 말자.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있다. 가둬두지 말자.'라고 하얀 종이에 큰 글씨로 적어 보았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함에서 특별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새겨둔다. 내 눈에 보이는 이우에게 새겨본다.

등교하는 이우의 인사를 듣고 나서야 고개 들어 창문을 바라본다.

배드민턴 네트를 아빠랑 세 번이나 넘겨주고 받았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한다는 이우의 웃는 얼굴이 보인다. 창문 바깥에 있는 이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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