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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Cumi Mar 30. 2017

나쁜 과학자? 시적인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무지개를 풀며' (최재천 역, 바다 출판사)  

훌륭한 시적 과학을 꿈꾸는 리처드 도킨스 

     

이제 소금기 없는 조류 밑에는 어마어마한 물고기들이 있고

대지의 딱딱한 지각에는 적갈색의 부족들이 산다. 

세대와 세대가 이어지고 사람들의 평원은 넓어진다. 

세입자들은 멸망하지만, 그들의 세포는 남겨진 채;

세계 도처에서 산호 벽들과 광물 언덕들은 올라간다, 그 선을 둥글게 확장시키며

 ( 에라스무스 다윈의 시 ‘모든 것은 현미한 극미동물에서 발생되었다’* 중에서) 



  찰스 다윈의 조부인 에라스무스 다윈은 의사이자 동시에 자연사학자, 발명가, 식물학자, 그리고 시인이었다. 에라스무스는 ‘자연의 신전(The Temple of Nature) 이란 시집에서 오늘날 살아있는 모든 동식물이 태초에 미생물로부터 진화했다고 말한 바 있다.** 


 50여 년 뒤 찰스 다윈은 조부의 시에 답변을 하듯 종의 기원(1859년)을 발표하여 진화론을 세상에 내놓았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다윈 또한 문학적 욕심이 있었다는 점이다. 비글로 항해기를 ‘나의 최초의 문학작품’이라 부르며 아꼈으며, 이 책을 친구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막대한 빚을 졌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과학과 문학을 연결 짓는 일이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다. 심지어 과학이 환상과 상상력 가득한 문학적 낭만을 깨뜨린다고까지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기적 유전자(1976년)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유독 그런 비난의 화살을 많이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가 우리 인간을 유전자 운반 기계일 뿐이라고 명명하기 전까지 우리는 생태계 최상의 피라미드 권좌에서 진화적으로 성공한 인간 개체였다. 


이기적 유전자 초판본 (1976) 


 그의 유전자 선택설에 의하면, 자연선택의 기본 단위는 유전자이다. 진화 시스템을 설명하는 수많은 문장의 주어 자리는 유전자가 차지했고, 개체는 한때 사는 유전자들의 집합체로 만족해야 했다.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유전자가 다윈주의적 과정이 선택하는 개별 단위더라도 매우 협력적이라는 점이다. 선택은 환경에 대한 생존 능력에 따라 개별 유전자를 선호하거나 선호하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환경은 바로 다른 유전자가 구성하는 유전 환경이다. 결과는 협력하는 유전자 집단이 유전자 군에 모인다는 것이다.
생물 개체의 몸은 자연선택이 개체를 하나의 단위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다른 유전자와 협력하도록 선택된 유전자가 만든 것이다. 이들은 함께 개체의 몸을 만드는 사업에 동참한다. 그러나 그 협력은 '유전자 각각을 위한' 일종의 무정부주의적 협력이다.
 
 ( 무지개를 풀며, 326p ) 


 유전자 선택설에 반발한 학자들도 있었다.  집단 선택설을 주장하는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과 스티븐 제이 굴드가 대표적이었는데,아직도 몇몇 학자들은 '개체'가 자연선택의 '진정한' 단위라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한다. 이기적 유전자가 출판 당시 그 논란은 거셌으나, 현재에는 유전자 선택설이 대세가 되었다.  


 더욱이 진화는 목적도 없는 무심한 과정으로 오직 이기적 유전자들이 다산, 복제 정확성, 장수를 위해 벌이는 자연선택이라고 했다. 즉, 우리가 태어난 이유는 없다. 당연히 죽은 뒤 사후 세계도 없다.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 낸 밈, 문화유전자일 뿐이다. 그것도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나쁜 밈(meme)이다.  


 이쯤 되니 그의 책을 읽고 인생이 허무해졌다고 그를 ‘나쁜 과학자’라며 공격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이에 대해 도킨스는

 ‘달콤한 가짜 목적론을 제거하고 감상적 우주관을 폭로하는 이 학자적 양심을 개인적 차원에서의 희망의 상실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라고 응수하며 과학의 누명 벗기기를 위해 <무지개를 풀며>라는 저서를 쓰기도 했다. 


 도킨스는 과학은 위대한 시적 영감의 원천이며, 최고의 과학이 시적 감수성이 설 자리를 마련해야 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유익한 비유와 은유를 제공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좋은 시가 있다면 나쁜 시도 있다면서, 나쁜 시적 과학에 속지 말아달라고 당부한다.


 과연 나쁜 시적 과학은 무엇일까? 대표적인 사례로 그는 박테리아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나쁜 시적 과학에서는 박테리아는 생태계의 조화로움을 위해서 낙엽과 죽은 동물과 똥을 분해하여 숲의 지속적 번영을 돕는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런 시선은 ‘가이아’의 환상이다. 진실은 박테리아는 조화로움 따위는 모른다. 자연선택에 장기적 미래 같은 건 없다. 유전자 군 내 라이벌 유전자와의 경쟁에서 이기는 유전자에 의한 개선이 있을 뿐이다.


그리스 신화의 대지의 여신, 가이아


 가이아는 영국의 대기 화학자 제임스 러브록이 말한 시적 표현으로 지구 전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개체로 보는 시선이다. 가이아는 인간에게 교훈을 주려고 만든 신화처럼 생물학에 들어와 비과학적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다. 어딘지 종교적으로 선한 생물 이야기는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그래서 나쁜 시적 과학이 위험하다고 도킨스는 경고한다. 

 최재천 교수도 가이아에 대해서 어금니를 깨물며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가이아를 부르지 말았으면, 정말 언급도 하기 싫다!’고. 


 그렇다면 좋은 시적 과학은 무엇일까? 도킨스는 과학이 줄 수 있는 경이로움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상의 경험이고, 과학자는 상징적 직관력을 통해 진실을 대중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한다. 과학적 사실을 부인하는 자들, 무지한 사람들이 사실상 놓치고 있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알리려 한다. 


 도킨스의 진화적 세계관이 자연에 대한 영성을 제거하는가? 인생의 희망을 앗아가는가? 

아동 작가 C. S. 루이스는 시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잘 알려진 것을 설명하기 위해 시적 언어를 쓰는 ‘오만한 시정’과 스스로의 사고를 돕기 위해 쓰는 시적 상상력인 ‘학습용 시정’이 있다고 했다. 도킨스는 후자의 사용을 중시한다. 


 그는 최재천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그다음 저작은 어린이들을 위한 과학책을 쓸 거라고 했다. 이제 아이들에게 또 무슨 말을 하실는지! 리처드 도킨스이 다윈의 사도로서 훌륭한 시적 과학자가 되길 기대해본다. 







*(Poet of  ‘Have all arisen from Microscopic Animalcules’ by Erasmus Darwin


Now in vast shoals beneath the brineless tide,  

On earth's firm crust testaceous tribes reside;   

Age after age expands the peopled plain,      

The tenants perish, but their cells remain;      

Whence coral walls and sparry hills ascend

From pole to pole, and round the line extend.


** 비글로 여행기 (올재 출판사 17p) 


*** 무지개를 풀며 (바다출판사 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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