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발식 글쓰기의 결정적인 장점
한동안 스스로 큰 심경의 변화가 있었어서, 브런치 글을 내렸습니다. 실제로 조회수가 많이 있었던 디자인과 브랜딩 관련된 글들을 모두 내렸죠.
왜 브런치 글들을 모두 내렸을까요? 브런치를 비롯한 '글을 쓰고 계신' 분들이라면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한 번쯤을 해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열심히 브런치에 글을 써 내려가는 브런치 작가님들께선 이런 생각 한 번쯤은 해보셨을 겁니다.
'내가 지금 너무 중구난방으로 글을 쓰고 있나?'
어느 하루는 되게 다양한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되게 낯설게 느껴졌죠.
하루는 호텔 이야기 다른 하루는 디자인 그리고 브랜딩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있는 거지 싶었습니다. 이것도 했다가 저것도 했다가 줏대가 없어 보이기도 하고 심지언 내 글이 너무 얕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제 브런치에만 들어보면 '아! 호텔에 미쳐 사는 사람!' 이란 인식을 아주아주 명확하게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브랜딩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그 생각이 더욱 짙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책'을 출판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글이 중구난방으로 뻗쳐 나가는 것을 피하고 싶었죠.
"그래 딱 한 가지에만 집중하자"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호텔 글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브런치 글들을 모두 내렸습니다.
이 무슨 기이한 현상일까요?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고 싶어서 글들을 모두 정리했더니, 오히려 핵심으로 잡고 있던 글을 못쓰겠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글 쓰기가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부담스러워졌습니다. 계속 힘을 주고 쓰다 보니 지쳤는지 브런치 접속률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끝까지 끌어가는 힘이 더 떨어지고, 글 한 편 한 편 너무 힘을 주다 보니 글에 대한 '수치적인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 실망하기도 하더군요.
사실 브런치에선 '수치적인 결과(조회수, 공유수, 라이킷 수)'가 크게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음을 알고 있어도 실망감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내가 글을 잘 못 쓰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럴라고 제가 글을 쓰는 건 아닌데 말이죠. 아마 저와 비슷한 고충을 느끼고 계시는 브런치 작가님들이 꽤나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나를 비롯한 우리는 '글을 왜 쓰는가'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을 글자로 표현하고 기록하고 공유하고 싶은 건 어쩌면 우리 인간의 본능이지 않을까?
필자는 사비 털어 호텔을 돌아다니며 호텔들을 리뷰합니다. 이 호텔은 몇 성급이며 객실이 몇 개이며 이런 표면적인 리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야근에 지쳐 잠시 서울에 벗어나고 싶은 상황이라 가정했을 때 '어떤 호텔'을 가면 휴식에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그 호텔을 '왜' 가야 하는지 집중합니다. 나다움을 추구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직장인들이 고된 평일을 이겨내고 주말만큼은 온전하게 휴식을 취했으면 좋겠습니다.
단 한 명의 독자라도 온전한 휴식을 취하는데 제 글이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큼 뿌듯한 일이 있을까요?
앞으로 전 더욱 전투적으로 호텔을 돌아다닐 예정입니다. 이때만큼 행복한 일도 없죠.
디자이너 직업병이 도졌는지 호텔을 리뷰할 때면 항상 이 호텔은 어떤 브랜드 경험을 선사할지 관찰하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브랜딩과 디자인에 대해 수다로 이어집니다.
더 신기한 건 '그 수다'에서 또 파생되어 나오는 수많은 인사이트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어 질 것입니다.
결국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군요.
제가 호텔에 대해 글을 쓰는 핵심적인 이유는 '호텔을 직접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호텔을 바라볼 때 본업이었던 디자이너의 시각이 곁들여지고 브랜딩과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문어발도 사실 하나의 '몸통'에서 여러 가지 다리들이 나오잖아요. 결국 문어발식 글 쓰기도 하나로 정통하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입니다. 한동안 그 몸통에 대해 잠시 잊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나 스스로를 프레임 안에 가둬놓고 검열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호텔을 리뷰하는 모습, 브랜딩에 대해 떠드는 모습, 다지인에 대한 주제로 떠드는 모습이 개별적인 '나의 모습'이 아닌, 이 모든 게 다 '나 자신'입니다. 중구난방으로 쓰는 것처럼 보였던 글들이 결코 중구난방이 아니었습니다. 하나의 중심축인 '몸통'이 있었죠.
'내 글이 너무 중구난방으로 여러 주제를 다루고 있나?'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그 여러 주제들을 정통하는 하나의 몸통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면 그 글이 결고 아무렇게나 뻗혀나가지 않는 것들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꾸준한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다시,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머릿속에서 모두 끄집어내야겠습니다.
읽고, 보고, 느끼고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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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저의 생각이 확 바뀌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신 '스테르담' 브런치 작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