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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인어 Mar 08. 2016

잃어버린 글쓰기3

독자가 읽어 준 첫번째 글

누구나 생애 처음으로 쓴 글이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 선생님이 검사하던 숙제용 일기장, 학교에서 열리는 글짓기 대회에 나가서 힘들게 썼던 글들. 이런 글쓰기는 재미가 없었다. 나는 수줍음이 많은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는 것이 너무 떨리고 두려운 일이었다. 선생님이 내 일기장을 검사하고 돌려줄 때는 얼굴이 빨개지고 어딘가로 얼른 숨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숙제용 일기장이 아닌 나만의 비밀 일기가 있었다. 작은 열쇠가 달린 일기장은 나에게 수줍음이 많아서 할 말을 못하는 대신 나의 답답한 마음을 풀 수 있는 공간이었다. 속마음을 그저 펜으로 빠르게 적으며 푸는 것만으로 크게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아무도 못 읽도록 꽁꽁 감췄기 때문에 내 글을 누가 읽도록 보여준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꿈을 이룬 어떤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의 글을 남에게 서슴없이 보여주는 그들이 내게는 너무나 신기했다.

처음으로 내 마음의 글을 보여주게 된 것은 대학교 동아리방 날적이였다. 날적이는 동아리방 사람들이 공동으로 쓰는 일기장 같은 것이다.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처음 사귄 친구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날적이에 적었다. A4크기 스프링 노트에 짧게는 3-4줄, 길게는 7-8줄 정도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적으면 선배나 동기들이 글 밑에 반응하는 글을 달아주었다. 마치 지금 인터넷 게시판의 댓글같은 것이었다.

단짝 친구처럼 조금씩 날적이를 내 일기장처럼 쓰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되었고 누군가 남겼을 댓글을 기대하며 동아리방을 찾았다.

대학을 졸업한 뒤로 글쓰는 일을 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다만 힘든 마음을 풀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글이 내게 위안이 되었기에 글을 쓰는 작가들을 동경하곤 했다. 아주 먼 꿈. 꿈을 저버리고 먹고 사는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할때 인간의 영혼은 시든다.

시든 영혼은 육체를 좀먹고 나는 병이 들었다. 병원 가서 물을 병이 아니라 내 자신의 내면의 치유를 원하는 병.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막연히 꿈꾸던 꿈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 작은 매체를 찾기 시작했다. 불특정 많은 사람이 읽는 큰 일간지나 패션잡지는 들어가기도 힘들겠지만 내 글을 많은 사람이 읽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피하고 싶었다.

작은 잡지나 전문 신문을 찾아 이력서를 냈다. 농업계 "먹거리"를 다루는 신문에 입사했다. 그리고 식품유통 전문지 창간 멤버로 참여했다. 난 어떻게 기사를 쓸지 두려웠고 누가 내 글을 읽어줄까 자신이 없었다.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 나를 위로해준 생각하나를 마음 속에 되새기며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쓴 글을 한 사람만이라도 읽어준다면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서 나는 쓸 것이다."


그렇게해서 남이 내 글을 읽는다는 공포심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겁을 내서 비밀 일기장에서만 움직이던 펜을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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