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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호기 Sep 07. 2018

<체실 비치에서> 이별한 두 남녀의 사정

영화 <체실 비치에서> 리뷰

  독특하게 생긴 해변에 두 남녀가 있다. 그리고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를 작은 배가 한 척 놓여있다. 여자는 이 작은 배 위에 걸터앉아 있고 남자는 토라진 채 등을 보이고 있다. 두 사람은 함께 배를 타고 항해를 떠날 수도 있고, 안정적인 뭍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선택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플로렌스(시얼샤 로넌)와 에드워드(빌리 하울)

 

  이들은 결혼한 지 6시간밖에 되지 않은 신혼부부다. 그리고 이들이 서있는 '체실 비치'는 영화의 무대이자 결혼의 시작을 알리는 '길'이었다. 그러나 이제 막 함께 걷기 시작한 부부는 결혼 당일에 일어날 수 있는 나쁜 일들 중 최악의 결말을 맞이하고 만다. 바로 이별이다. 이 둘의 서툰 사랑은 조화로운 음악이 아닌 외마디 비명으로 멎어버린다.


  두 사람을 아주 잠깐 담았던 작은 배가 덩그러니 남겨지는 장면, 두 남녀가 화면의 끝과 끝으로 멀어지는 엔딩 장면은 영화의 모든 것을 담는 한 장의 그림이다. 조금 엉성했지만 희망을 꾸게 했던 작은 배는 물에 젖어보지도 못한 채 난파선이 되었다. 그것도 바다가 아닌 해변 위에서다. 출항과 시작의 공간이 침몰의 공간으로 몰락해버린 것이다. 낭만적인 해변이었던 체실 비치도 어느새 단단한 절벽처럼 변해있다. 그리고 에드워드의 마지막 모습은 해변이 아닌 벼랑 끝에 서있는 것처럼 애처롭기만 하다.

  

  

  영화는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리고 온 신혼부부가 6시간 만에 헤어지게 된 과정을 담는다. 그러나 그 6시간 안에는 두 사람이 사랑을 시작하게 된 운명적인 순간들 그리고 두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콜라주'처럼 담겨있다. 관객들은 그 콜라주를 뜯어보며 이들이 왜 헤어졌는지 누구의 잘못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열심히 찾아보게 된다.


  애초에 서로 너무나 다른 역사를 가진 두 사람 이어서일까. 아니면 다른 성향 때문일까. 두 사람은 제법 잘 어울렸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눈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운명처럼 만나 이상할 것 없이 사랑에 빠졌지만 결혼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불어온 바람인지,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고 보면 사실 명확한 답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이유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은 잘 해내 왔던 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왜 정작 두 사람은 결혼 당일에서야 서로를 담지 못했는가. 왜 서로를 잡지 못했는가. 그리고 왜 후회하는가. 영화의 가장 큰 울림이 발생하는 부분이다.


  물론 두 사람 모두에게는 극복할 수 없는 큰 상처가 있었다. 에드워드에게는 어머니 그리고 플로렌스에게는 아버지와 관련된 큰 상처다. 누구의 상처가 더 크고 깊은지 저울질할 수 없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는 평생 극복하기 어려운 큰 상처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갈라서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되기도 했다.


  에드워드의 상처는 영화에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플로렌스를 통한 치유가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두 사람의 사랑을 진실되고 깊어 보이게 만드는 요소다. 하지만 플로렌스의 상처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짧은 이미지들로 암시될 뿐이다. 관객들은 플로렌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에 대해 '충분히' 알 수는 없었던 것이다. 에드워드도 마찬가지였다.


<레이디 버드>로 2018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시얼샤 로넌'

 

  아름다웠던 운명이 순식간에 난파됐지만 그 책임은 누구의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선택은 그들의 몫이었지만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의 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아주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두 사람의 인생은 크게 달라졌을 수도 있다. 영화의 끝자락에서 두 사람이 흘린 눈물은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영화는 그것이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평범한 듯 결코 평범하지 않은 영화 <체실 비치에서>는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원작의 작가는 그 유명한 '이언 매큐언'이다. 그의 전작 중에는 역시 영화화된 <어톤먼트>가 유명하다. 흥미로운 점은 <체실 비치에서>의 주연을 맡은 '시얼샤 로넌'이 <어톤먼트>에도 출연했었다는 것이다.


<어톤먼트> 에서 '브라이오니 탤리스' 13세 역을 맡았던 '시얼샤 로넌'


  영화의 제목인 동시에 배경이기도 한 '체실 비치'는 상상 속의 공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영국 남부에 실존하는 독특한 모양의 해변이다. 육지에 붙어 바다를 마주하는 우리나라의 해변들과 달리 바다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처럼 보인다. 어느 쪽으로나 바다에 닿을 수 있으면서 동시에 바다에 갇혀 있는 고독한 느낌도 준다. 주인공인 두 남녀의 상황을 극적으로 부각한다. 작가로서는 매우 훌륭한 선택이었다.


  '체실(chesil)'이라는 이름도 실제 '조약돌'을 의미하는 고어 'ceosol'에서 왔다. 체실 비치가 아름다운 조약돌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포틀랜드 섬으로 부터 웨스트 베이에 가까워질수록 조약돌의 크기가 정확한 비율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곳 어부들은 칠흑 같은 밤중에 해안에 닿아도 발에 밟히는 조약돌의 크기와 느낌만 가지고 현재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어디에 서있는지, 얼마나 가까운지 또 얼마나 먼지 알 수 없었던 두 주인공의 상황이 더욱 비극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 영화에서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는 바로 음악이다. 매력적인 현악기들이 비극과 희극을 오가는 두 주인공을 감싼다. 때로는 두 사람을 부추기기도 하고 때로는 동정하기도 한다. 절묘하게 음악을 개입시키는 '우디 앨런'의 영화들이 떠오른다. 특히 남녀의 충격적인 운명을 묘사한 영화 <매치 포인트>가 생각나기도 한다.


  영화 <체실 비치에서> 음악에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가 참여했다. 극 중 플로렌스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부분도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에스더 유'는 영화에 깊이 몰입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인상 깊은 캐릭터인 플로렌스는 시얼샤 로넌의 열연으로 탄생했지만, 에스더 유의 바이올린 연주 또한 플로렌스라는 캐릭터를 완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
시사회를 찾은 '에스더 유'와 음악 감독 '댄 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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