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에서 '풍수' 읽기
칼을 겨누고 있는 한 남자 그리고 그 칼 끝에서 웃고 있는 또 다른 남자. 싸움이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사찰을 뒤로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수 십 명의 멀쩡한 목숨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수 백 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법당도 허탈하게 불길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명당>은 '명당'에 목숨을 걸었던 권력가들의 혈투를 그린 이야기다. 이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 그리고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운명을 바꾸고자 한다. 그리고 그 운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땅'을 손에 넣어야 한다. 이 모든 비극은 명당이 사람의 운명을 바꿔준다는 강력한 믿음에서 시작됐다.
또 영화는 약 백여 년 전 조선 시대를 그 배경으로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영토 위에 오밀조밀 모여 사는 우리의 모습도 비추고 있다. 이 좁은 땅 위에서 부동산 전쟁을 치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비극적인 일들이 황당하지 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내거는 '명당'이란 대체 무엇일까. 영화 <명당>은 초반부에 그 의미를 제시한다. 명당이란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땅의 기운(혹은 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 바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풍수(風水)'다.
흔히 '풍수'에서 명당이라고 하면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의미한다. 뒤로는 든든한 산을 두고 앞으로는 넉넉한 물길을 가지는 자리, 그곳이 바로 '명당'이자 '혈'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경치가 좋고 안전해서 일까? 정확한 이유는 '풍수(風水)'라는 말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사실 풍수라는 말은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줄임말이다. 뜻을 풀어보면 '바람을 감추고 물을 얻는다'는 의미다. 이처럼 풍수에서 바람과 물을 크게 고려하는 이유는 바로 '땅의 기운'을 품기 위함인데, 좋은 땅의 기운을 많이 품고 있을수록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땅의 기운'이라는 것은 손을 뻗는다고 해서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풍수에서 보는 '땅의 기운'은 바람을 만나면 쉽게 흩어져버리고, 땅을 따라 흘러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혈'의 주변에는 바람을 막아줄 산(북현무, 남주작, 좌청룡, 우백호)이 필요하고, 땅의 기운을 가둘 물길이 있어야 좋다.
하지만 이 좁은 한반도에 이런 '혈'이 몇 군데나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명당을 둘러싼 다툼이 끊이질 않았던 것이다. 특히나 조선 말기에 들어서는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빈번했다. 실제, 산소나 묏자리에 관련된 소송을 산송(山訟)이라 불렀는데, 현존하는 분쟁 관련 고문서 중 무려 80% 이상이 바로 이 산송과 관련된 문서라고 하니 그 치열함을 짐작해볼 수 있다.
영화 <명당> 또한 허구의 스토리가 아니다. 1892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편자 미상의 야담집 "계압만록"에는 영화 <명당>과 매우 흡사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물론 '야담'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과장이 더해졌겠지만, 실제 있었던 이야기들이 바탕이 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명당>과 유사한 부분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영화의 내용과 비교해보면 꽤나 흥미롭다. (스포일러를 막기 위해 주요 인물을 익명 처리하였음)
'아무개'가 부친 묘소에 성묘를 가는데 길가에 한 스님이 누워있었다. 그런데 이 스님은 어찌 된 것인지 사람이 지나다녀도 도통 일어나질 않았다. 하여 이를 수상히 여긴 '아무개'가 가까이 가서 보니 이 스님은 보통이 아닌 듯했다. 그래서 '아무개'는 스님을 모시고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역시나 이 스님은 풍수지리에 밝은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아무개'는 마침 고민 중이었던 부친의 묏자리를 물었는데, 스님의 대답은 매우 흥미로웠다.
"왕이 날 자리가 한 곳 있다"
이를 반갑게 듣던 아무개는 스님에게 그 명당의 위치를 소상히 묻고, 그곳에 부친의 묘를 이장하기로 했다. 덕산 가야동이었다.
이후 아무개는 스님과 약속한 시간, 약속한 장소로 부친의 관을 운반해 갔는데, 하필 그 자리에는 어느 절의 법당이 떡하니 있었다. 하지만 이 스님은 망설임 없이 절에 불을 질러 버렸고, 불에 타지 않는 구리 부처는 쇠망치로 부숴 골짜기에 묻어버렸다. 수 백 년간 자리를 지켜왔던 '가야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활활 타올랐던 허망한 불길이 멎자 '아무개'와 스님은 그곳에 부친의 묘를 쓸 수 있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아무개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계압만록'에 등장하는 이 용한 스님의 이름은 '정만인'이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 <명당>에서 '왕이 날 명당'을 짚어주는 인물 역시 같은 이름인 정만인(배우 박충선)이라는 것이다. 또한 스님이 아닌 '지관'이라는 점만 달라졌을 뿐, 영화를 이끄는 주된 내용은 '계압만록'의 스토리와 매우 흡사하다.
그렇다면 풍수의 대가들이 지목하는 명당은 정말 그 효과가 있을까?
조선 후기, 명당을 둘러싼 다툼이 끊이질 않자 실학자인 성호 이익 선생 역시 위와 같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이익 선생은 풍수에 능한 지관들을 불러 관할 지역의 땅을 명당과 흉당으로 분류하게 했고, 이후 그 후손들의 삶을 추적하게 했다고 한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그의 예상대로 제각각이었다. 명당에서 망한 후손이 있는가 하면 흉당에서도 흥한 후손 또한 엄연히 존재했다.
분명 과학적으로든 비과학적으로든 명당의 효과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명당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다만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운명을 바꾼 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운명을 바꿀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묏자리를 두고 칼부림이 일어나기도 했고, 몰래 남의 묏자리에 자기 집안의 묘를 쓰는 투장(偸葬)도 성행했다.
이것이 어디 수백 년 전의 이야기일 뿐일까. 명당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정치인들이 조상들의 묏자리를 신중히 쓴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묏자리 주변의 지형을 인위적으로 바꾸기도 하고, 왕릉 못지않은 규모의 묘소를 만드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물론 조상에 대한 도리겠지만 득세를 바라는 마음 또한 숨기기 어려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부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선거 캠프의 위치도 신중하게 선택한다. 엄연히 선거 캠프에도 명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명당으로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근처에 자리한 '대하 빌딩'이 꼽힌다. 실제 이 빌딩을 본 어느 유명 역술인은 '제왕지기(帝王之氣)가 서린 곳'이라 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곳은 1997년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통령 후보의 대선 캠프가 있었던 곳으로, 대선 승리의 영광을 누린 곳이다. 그 덕인지 이 빌딩은 최고의 명당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이후 2008년 당시 이명박 대선 후보, 2012년에는 당시 박근혜 대선 후보도 이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승리했다(1995년 조순, 1998년 고건 전 서울시장도 이곳에서 승리했다).
그렇다면 풍수에서 보는 이 빌딩의 비밀은 무엇일까? 실제 어느 풍수전문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균형 잡힌 사각형의 창문이 반복되는 데다 밝은 회색 건물 모습이 풍수에서 말하는 금(金)의 형태를 띠고 있다. 금형(金形) 건물은 수직선인 '성장'과 수평선인 '관리'가 조화를 이루는 형태로 가장 안정감 있는 모양이라 관공서나 재벌그룹들이 선호하는 외관. 또 사거리에 위치해 있어 돈과 사람이 모이고 머물기 때문에 홍보 효과를 노리는 정치인과 상인들에게 꼭 맞는 터”
그러다 보니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2014년 새누리당 전당대회 때다. 당시 당권을 꿈꾸던 김무성 의원, 서청원 의원 그리고 홍문종 의원이 이 명당에 모인 것이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각각 2층과 7층 그리고 8층에 캠프를 차렸다. 물론 영화처럼 살벌한 싸움은 없었지만(빌딩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경쟁자들이 같은 출입구로 드나들게 되는 다소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처럼 영화 <명당>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역사 속 야담을 바탕으로 하지만 수백 년을 이어온 이 땅의 관심사를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더욱이 부동산에 대한 논쟁이 뜨거운 요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소재를 속도감 있게 풀어낸다. 무게감 있는 배우들의 열연 덕이다.
또 영화 <명당>은 '계압만록'의 스토리를 뿌리로 하긴 하지만 완전히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사실과 허구를 적절하게 조화시킨 <관상>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참고로 영화와 다른 '계압만록'의 결말을 간단히 보면 이렇다.
왕가의 꿈을 이루게 된 '아무개'는 은혜를 갚기 위해 스님에게 소원을 말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스님은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을 출간하게 해달라고 했다. 곧 아무개는 명령을 내려 팔만대장경을 모두 끌어내고, 먹을 묻혀 인쇄하게 하였다.
그 틈을 타 스님은 텅 빈 해인사로 몰래 들어가더니 땅바닥을 파헤치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그 안에는 해인사의 보물인 '해인(海印)'이 있었다. 이를 찾아낸 스님은 곧 '해인'을 꺼내 훔쳐 달아났다. 이 '해인'을 가진 자는 신통 조화의 재능을 부릴 수 있는 보배로 알려져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해인’이 묻혀 있었을 때에는 해인사가 새의 배설물로 더럽혀지는 일도 없었고, 거미가 줄을 치지도 않았으나 ‘해인’이 사라진 뒤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명당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욕망이 중첩된다. 그러다 보니 명당을 둘러싼 싸움의 결말 또한 아름답지만은 않다. 영화 <명당>의 결말 또한 마찬가지다. 명당을 탐하던 자들 모두 씁쓸한 결말을 피할 수 없었다. 영화와 야담집 어느 쪽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라고 평하기는 어렵겠지만 두 작품 모두 '명당'에 대해 남기고자 하는 메시지는 비슷해 보인다. 끝으로 조금 더 명쾌하게 이 메시지를 정리한 어느 풍수지리서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임금과 제후가 나는 큰 명당은 기이한 형태의 혈에 있는데, 하늘이 덕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지 사람의 힘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지리오결(地理五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