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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호기 May 24. 2019

진실은 어느 한 사람의 입에 갇히지 않는다

교양 PD의 눈으로 본 영화 <김 군> 리뷰

  다부진 한 남성이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고 있다. 날카로운 눈매에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지지만 굳게 다문 입매에는 긴장과 두려움도 공존한다. 그의 앞으로는 길게 뻗은 두꺼운 총열이 단호하고, 그 위로는 금방이라도 쏟아져 나갈 것 같은 두터운 총알들이 늘어져 있다. 사진 속 주인공은 당시 시민군의 '페퍼포그 차량' 위에 자리하고 있지만, 그곳은 5.18 민주화 운동의 한 페이지이기도 했다. 영화 <김 군>은 바로 이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다.


1980년 5월. 당시 중앙일보 이창성 기자가 촬영한 광주 시민군 '김 군'


  이 한 장의 사진이 영화 <김 군>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이유는 극우 논객 지만원 씨의 황당한 주장 때문이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 사진 속에 등장하는 시민군이 사실은 북한 특수군이라는 것. 그러니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시민들에 의한 자발적인 운동이 아니라 북한 특수군들이 주동한 일종의 폭동 같은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됐을까. 영화의 첫 번째 질문이다.


전 육군 대령이자 현 극우 논객인 지만원 씨


  지만원 씨는 1980년 당시 촬영된 광주 시민군들의 얼굴을 분석했다. 그리고는 온라인과 각종 언론에 등장하는 북한 주요 인사들의 얼굴과 이들의 얼굴을 겹쳐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만원 씨는 시민군들이 대부분 북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눈매나 얼굴의 비율 등이 일치하기 때문에 동일인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시민군의 얼굴 위로 붉은 화살표를 긋고, 머리 위로는 붉은 점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진실을 가리기 위한 일종의 표식이자 낙인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지칭하기 위해 '광수'라는 이름을 지어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광수'는 제1 광수를 시작으로 현재 제660 광수까지 무려 600명이 넘어서고 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런 황당한 주장에 질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주장은 일부 커뮤니티와 극우 인사들 심지어 유력 정치인들의 입을 타고 지금 이 순간에도 끝없이 퍼져나가고 있다. 영화 <김 군>은 바로 이러한 현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제1 광수로 낙인찍혀버린 시민군 '김 군'의 진실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제1 광수'로 지목된 '김 군(좌)'과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김창식(우)
'광수'로 지목 된 수 많은 광주 시민들


  영화 <김 군>은 '김 군'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감독의 여정 그 자체다. 감독은 수많은 영상자료와 사진, 그리고 관계자들의 증언을 한 땀 한 땀 모아 김 군에 한 발씩 다가선다. 복잡한 자료를 나열하거나 취재한 사실을 소개해주는 단순한 구성을 피했고, '김 군'을 찾아다니는 여정 속에 감독의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녹였다. 때문에 영화는 지루하지 않고 몰입도가 높다. 김 군을 꼭 찾아내고 싶다는 마음과 그의 안위에 대한 걱정이 가득 차오르는 사이, 영화는 어느새 긴 여정의 끝을 향하게 된다.    


'제1 광수' 찾기가 아닌 '김 군' 찾기


  이 고된 여정에는 단어 하나하나 함부로 흘려들을 수 없는 강렬한 증언들이 가득하다. 모두 5.18광주 민주화 운동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고 스스로가 진실 그 자체인 존재들이다. 숨을 함부로 내 쉴 수도, 함부로 들이마실 수도 없어 숨이 턱턱 막혀오는 순간들이 이어진다. 그 중 어느 시민의 인터뷰가 특히나 인상적이다. 그는 ‘우리가 왜 김 군이 광수가 아니라는 것을 직접 증명해내야 하는지’ 되묻는다. 그의 목소리엔 화석처럼 굳어버린 울분이 선명하다.


  또 다른 시민군의 목에는 아직도 다 제거하지 못한 총탄의 파편이 여전하다. 그는 지금도 가끔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원래 아픈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산다고 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뜨겁게 타올랐던 수많은 '김 군'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광수'가 되어 있었고, 또 지난 39년 동안 본인이 광수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만 하는 고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것은 그러려니 하기에는 너무나도 아픈 일이었다. 영화 <김 군>은 너무 과하지 않게, 그래서 더욱 강렬하게 이들의 고통을 전한다.



  영화의 끝에서 감독은 김 군의 행방에 대한 결정적인 증언을 제시한다. 한 시간 넘게 김 군을 찾아다녔던 관객들에게는 그야말로 고대하던 순간이다. 하지만 그 반가운 순간이 전혀 좋지만은 않다. 막막한 진실이 주는 반가움과 허탈함이 강렬하게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까닭도 있지만, 그토록 애타게 찾아다녔던 김 군이 지난 39년 동안 단 한순간도 김 군이 아닌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 한순간도 변한 적이 없는 김 군을 가만히 두고 우리는 너무나도 먼길을 돌아온 셈이다. 영화가 던지는 가장 강렬한 메시지다.


  진실은 단 한순간도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순식간에 오염되고 쉽게 침몰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까마득하게 멀어져 버린다. 지만원 씨가 몇 번의 마우스 클릭과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근거로 5.18 시민군의 진실을 모욕하기는 무척 쉬웠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누더기가 된 진실 위로 너무나도 쉽게  '새로운 진실'을 지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김 군>이 5.18의 실체적 진실에 다시 다가서고 그 끝자락을 겨우 붙잡기 까지는 또다시 4 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영화의 끝자락에 무심코 등장하는 광주 시내의 이곳저곳이 인상적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한 광주의 곳곳에는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함부로 기억해서도 안 될 너무나도 선명한 이야기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 진실은 감히 누군가에 의해 쉽게 설명되어서도, 정의되어서도 안 될 것이었다. 진실은 결코 어느 한 사람의 입에 갇힐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김 군>은 그런 이야기들을 꾹꾹 눌러 담고 있다.


시사회 후 관객 앞에 선 강상우 감독과 양희 작가

 


  영화는 5월 18일이 아닌 23일 개봉했다. 이유가 궁금했다. 왜 5월 18일도 아니고 5월 23일일까. 시사회가 끝나고 짧게 관객들과 대화에 나선 양희 작가가 그 의미를 찾았다. 5월 23일은 김 군의 마지막 사진이 찍힌 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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