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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호기 Sep 02. 2017

영화 <공범자들>의 의미

방송은 사람이 만든다. MBC 내부자의 고백

 영화 <공범자들>을 보고 후기를 남기고 싶은 마음에 몇 번이고 펜을 들었다 놓았지만, 감히 그럴 수 없어 영화 권유로 대신해봅니다.  



  지난 4월 18일. 고민 끝에 <PD수첩> 세월호 3주기 방송 '세월호, 101분의 기록'의 클로징 음악으로 416합창단의 '네버엔딩 스토리'를 택했다. 故수현 군 아버님의 인터뷰 부분부터 방송 끝까지 믹싱한 이 곡은 중간에 끊기가 어려울 정도로 가슴 먹먹했고, 수십 수백 번을 반복해 들으며 후반 작업을 했던 제작진들도 눈물을 가두어두기 어려웠다.


  그렇게 후반 작업을 완료하고 종편실을 나서는 순간이 기억난다. 드디어 끝났다는 후련함보다는 이제야 시작인 것만 같았던 기분이 들었다. 그곳을 나서는 우리 모두가 그랬다. 어렵게 카메라 앞에 서주신 유가족 분들이 단호히 하셨던 말씀들. MBC가 너무너무 원망스럽다는 어머님, 아버님들 앞에서 죄송하다는 말조차 함부로 입에 담기 어려웠던 순간들.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XLN5LXRcpSM

416 합창단의 '네버엔딩 스토리'


  그로부터 약 4개월 후인 지난 8월 25일 금요일.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모임에 416합창단이 오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더 반갑기도 했지만 동시에 믿기지 않았다. 유가족 분들에게  MBC는 분명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언론, 입에 담기도 불편한 존재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듯 MBC는 참사 당일 치명적인 오보를 했고 이후에도 진실을 외면했다. 그리고 MBC는 아직 오보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MBC의 무대에 416합창단 분들이 서주신다고 하니 죄송한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에 하늘만 계속 쳐다봐야 했다.


  416 합창단은 담담하게, 그러나 누구보다 큰 울림으로 청계광장을 채워나갔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 그리고 공기에 떠다니는 모든 것이 음악 같았다. 노래는 시계를 3년 전으로 되돌렸다.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모두 같은 날 같은 시간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숨죽여 눈시울을 붉혔다.


"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불금파티" 무대 위 '416합창단'


  노래를 마친 합창단은 지난 수년간 진실을 외면했던 MBC, KBS를 단호히 꾸짖었다. 그러면서도 그토록 원망스럽고 미웠을 공영방송의 정상화 노력을 지지하겠다고 했다. 찡한 코 끝 너머로 새파란 하늘이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지난겨울, 간절한 촛불들이 모여 밝혔던 하늘이 새삼 높아만 보였다. 그렇게 또 한 번의 부끄러운 계절이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MBC는 아직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


  세월호 3주기 <PD수첩>을 방송했던 지난 4월 18일 바로 다음 날이었다. 시사 중에 '국가'라는 단어와 '청와대'라는 단어를 빼라고 주문했던 국장이 방송 좋게 잘 봤다는 문자를 보냈다. 의외였다. 하지만 얘기를 좀 더 듣고 보니 유가족들이 눈물 흘리는 장면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았다는 뜻이었다. '최루가스'라는 표현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국장은 식사 자리에서, 방송 후반부에 나간 클로징 음악에 대해 물었다. 416합창단의 네버엔딩 스토리에 대해 설명하자 그는 '어쩐지 노래를 너무 못 하더라' 라는 말을 내뱉었다.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입으로 곱게 썰린 스테이크 조각이 들어갔다.


  방송을 준비하는 내내 제작진들이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완성된 편집본을 다시 볼 때도 울었고, 본 방송을 보고 있는 중에도 또 눈물이 났다. 하지만 눈물 나게 하지 않아서 좋았다는 국장의 말 그리고 한 음 한 음 겨우 내뱉는 416합창단의 노래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듯한 표현들은 너무 이질적이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이후로도 국장은 모든 아이템을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해석했고, 기계적인 중립을 강요하며 특정 내용을 빼거나 더할 것을 요구했으며, PD들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차 <PD수첩>을 난도질했다.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지긴 했지만 성소수자 인권문제를 다룬 아이템에서는 소수자들의 인권문제보다 옷에 달린 노란 리본을 지적했고, 4대강 아이템에서는 '죽은 권력 좀 그만 물고 살아있는 권력 좀 물어뜯으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PD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찾아가 직접 질문을 던지는 장면에서는 '네가 무슨 독립투사인 줄 아냐'며 나무랐다.


  묻고 싶다. 지난 권력이 살아있는 동안 MBC는 어땠는가.

 

4대강 아이템 방송 이틀 후, 다른 부서로 발령 받았다

  

  아직도 MBC에서는 이처럼 최소한의 인간다움도 상실한 존재들이 함부로 공정성이라는 단어를 오용하고, 정치적 편견을 근거 삼아 제작 자율성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 그리고 언론의 기본인 '질문'을 통제하고 표현의 자유를 약탈했다. MBC는 그런 자들에게 그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게다가 가장 인간다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MBC의 경영진은 정작 인권을 무참히 침해하고 또 무시했다. 그들은 언론인이라기보다는 기회주의자이며 아마추어 정치인에 가깝다. 인간실격이다.


  지난 수년간 MBC가 이렇게 처참히 망가지고 또 인간다움을 상실했던 이유는 '그래도 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사람들만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권력의 맛을 본 사람들은 후배들에게 서슬 퍼런 부정을 휘둘렀다. 합당한 이유도 없이 마음에 안 드는 PD, 기자들을 먼 곳으로 보내버렸고 해고했다. 법치를 운운하며 불법을 자행했다. 또 그들은 모든 책임을 MBC 최전방에 서있는 후배들과 제작진들에게 돌렸다. 그러는 사이 MBC는 모두에게 외면받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새겼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됐기 때문이었다.


영화 <공범자들> 중. 대답 없는 김장겸 MBC 사장


  지금 MBC는 싸우고 있다. MBC 입사 이전부터 수년간 이어져온 싸움을 함부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지금 MBC의 결단은 최소한의 인간다움조차 상실한 경영진에 대한 거부이며, MBC의 건강한 발전은 안중에도 없는 자들에 대한 저항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좌파 노조의 방송 장악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일부 언론들은 새 정부의 언론 길들이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발맞춘 MBC 경영진은 외부세력을 운운하며 위기와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언론 탄압에 동조한 정치세력에 동정을 호소하며 또다시 왜곡된 정보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묻고 싶다 지난 수년간 MBC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MBC 로비에 다시 선 박성제, 박성호, 최승호 선배

  

  부당 전보 때문에 지난 수년간 타 부서로 유배당했던 선배들 그리고 이유 없이 해고당한 선배들이 다시 MBC 로비에 섰다. 선배들은 어쩌면 인생의 황금기 그리고 언론인으로서의 전성기를 비인간적인 경영진에 그리고 같이 일하던 그들의 선배들에게 빼앗겼다. 선배들이 꿈꿔왔던 일들 그리고 제일 잘할 수 있는 일들을 정작 잘했다는 이유로 할 수 없게 되었다. 또 언론인으로서 그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기에 정작 언론인 명함을 반납해야 했다. 그런 선배들이 또 울었다. 그간의 서러움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다. 치욕의 계절을 숱하게 보내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가랑이 사이를 기어서라도 이기고 싶었다고 했다.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선, 후배들이 또다시 애꿎은 천장만 올려다봤다.


  영화 <공범자들>은 MBC와 언론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짜 언론인들의 이야기, 진짜 사람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다. <공범자들>은 MBC의 싸움이 정치적 다툼이나 언론 재장악이 아닌, 언론사로서 최소한의 조건을 되찾기 위한 싸움임을 증명하는 근거다. 그리고 최소한의 인간다움도 상실한 사람들이 어떻게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목격이다. <공범자들>은 대한민국을 망친 언론 적폐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부조리한 시스템에 대한 기록이다.


20만 관객 돌파를 앞둔 영화 <공범자들>

  

  영화 <공범자들>은 국정농단 사태를 방조해 나라를 혼란에 빠트린 책임이 있는 공영방송 MBC의 자백이며, 지난 수년간 숱한 진실들을 외면해온 경영진들의 낯 뜨거운 실체다. 그리고 MBC가 왜 지금 싸우고 있는지, 왜 싸워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유이며 앞으로 MBC가 두껍게 써 내려가야 할 반성문의 첫 페이지다.


 그리고 재미있다.



  

  세월호 3주기 방송 후. MBC에서 세월호 아이템을 다루는 것이 얼마나 어떻게 어려운지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디에든 어떻게든 이야기하지 않으면 참기 어려울 것 같아 며칠 고민 끝에 글을 보냈습니다.


  고민에 비해 그리고 치욕스러운 현실에 비해 글은 껍데기 뿐이었습니다. 솔직히 다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부끄럽게도 이름조차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런 부끄러운 날들이 숱하게 지나갔고 또 지나고 있습니다.


 http://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928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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