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편 제작기
이재록 목사가 K에게 꺼내 든 말은 '에덴동산'이었다. 몇 번이고 귀를 의심했지만 정말 '에덴동산'이었다. 그러니까 이재록 목사는 K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K에게 옷을 모두 벗으라고 했다. K는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고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K에게 이재록 목사는 계속해서 옷을 모두 벗으라고 했다. 이유는 이재록 목사가 살고 있는 이 집이 바로 '에덴동산' 이기 때문이라는 것. 에덴동산에서는 모두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물욕으로 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했다.
K는 약 20년 전 이재록 목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피해자였다.
약 20년 전. 이재록 목사는 평소 자신을 믿고 잘 따르던 K를 집으로 초대했다. K는 마음속 깊이 존경하던 담당 목사의 부름이 처음에는 고맙고 반갑기도 했다. 하지만 목사가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는 것에 당황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 목사는 K에게 성경 이야기나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고, 곧 K는 그의 집으로 향하게 됐다. K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옷들 중 가장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이 목사에게 개인적으로 헌금하기 위해(이른바 '예물 심기') 평소에 모아두었던 적금까지 모두 털어서 봉투에 정성스럽게 담았다.
이재록 목사는 그런 K의 옷을 벗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만의 '에덴동산'에서 자기도 스스로 옷을 벗었다. 정말 믿기 어렵겠지만 두 사람은 그렇게 아담과 이브가 되었다. K는 부끄러웠지만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상황에 온 몸이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 목사는 그런 K에게 과거 자신이 만났던 여인과 너무 닮았다고 말하며 미소를 가득 지었다. 그리고는 K의 몸 위로 자신의 몸을 덮었다. K는 이렇게 자신이 가장 존경하던 목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K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조차 제대로 인식할 수 없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고백하건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K의 주장은 매우 구체적이었고, 몇 가지 증거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의심할 수 없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이 곳에 차마 옮겨 적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증언들. 차라리 K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길 바라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지금도 교회에 남아있는 아이들이 진실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K가 우리 카메라 앞에 나설 의무는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성폭행당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K가 용기를 냈던 이유는 오직 하나. 아직도 교회에 남아 있는 다수의 피해자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더 큰 피해를 막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K는 인터뷰 내내 눈물을 가두지 못했다. 자신의 젊음을 모두 바쳤던 교회에서 느낀 치욕스러운 배신감. 그리고 자신의 신앙과 인생 전체를 스스로 부정하게 된 현실에 대한 막막함. 그러면서도 수 십 년 동안 몸 담았던 교회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간혹 미소도 지어 보였다. K에게 만민교회는 그런 곳이었다.
우리가 K를 만나게 된 것은 약간의 우연과 큰 불운의 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만나고자 했던 사람은 20년 전에 <PD수첩>과 인터뷰를 했던 피해자 J. 20년 전에 방송되지 못했던 '삭제된 15분'에 대한 내용을 다시 취재해보기 위해서였다.
이번 방송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이 '삭제된 15분'에 대한 것이었는데, 지금이라도 삭제된 부분을 다시 방송해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계획도 그랬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그 유명한 15분을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는 것. 그렇게 되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만민교회의 충격적인 일들이 사실은 20년 전에도 문제가 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릴 수 있고, 이 목사의 충격적인 범죄를 다시 제대로 조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우리의 첫 번 째 목표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당연히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라 생각했던 그 15분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이유는 이랬다. MBC가 여의도 사옥에서 상암 사옥으로 이전할 당시, 보관하고 있던 테이프와 촬영 본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한 달 가까이 테이프를 찾아다녔으나 끝내 찾지 못했고, 결국 20년 전에 삭제된 내용에 대해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첫 번째 쓴 좌절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20년 전 <PD수첩> 제작진과 인터뷰를 했던 J를 찾게 되었다.
J에게 다시 접촉하는 것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먼저 연락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명백한 '2차 가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교인들을 통해 J에게 증언할 의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다시 만나주실 것을 부탁하는 문자를 보냈다. 20년 전 피해 사실과 현재의 범죄 사실을 연결시키고자 했던 이번 방송에 그녀의 증언은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J는 우리의 요청에 응할 수 없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J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거대한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리고 J는
20년 전 제대로 방송되지 못했던 <PD수첩>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너무나도 당당한 가해자에 비해 피해자는 평생을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현실. 그리고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너무나도 큰 대가를 혼자 감당해야만 하는 현실. 성폭력 피해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많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죄송한 마음도 컸다. 20년 전에 제대로 다하지 못했던 방송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이었다. 이번 방송을 정말 제대로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런 우리 앞에 K가 나타났다. 처음 만나는 낯선 제작진들을 향해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었던 K. 약속 장소였던 카페의 입구까지 차분히 걸어 올라오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K는 <PD수첩> 제작진이 성폭력 피해자들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 끝에 용기를 냈다. 또 K는 동생 같고 조카 같은 교회의 자매들이 자신과 똑같은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 K의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진 충격적인 증언들. 3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아주 작은 소리도 내기 어려울 만큼 모두가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K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재록 목사는 이미 20년 전부터 여신도들을 성폭행한 것이다. 그리고 언론에 알려진 J뿐만 아니라 다수의 피해자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말 그럴까. 서울시 한 복판의 교회에서, 더군다나 약 15만 명의 신도가 다니는 대형 교회에서 이것이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K의 증언을 무조건 사실로 단정 지을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보다 객관적인 취재를 위해 추가 증언이 필요했다. 그리고 K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이재록 목사에게 절대복종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와 배경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최근 '그루밍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인 이해도가 높아지기는 했지만 K가 겪은 충격적인 성폭행은 그루밍 성범죄의 개념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또한 시청자들 역시 K의 증언을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만민교회가 더욱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 이 글은 직접 인터뷰한 피해자들의 증언과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글 싣는 순서>
0. 징역 16년 확정 판결을 받은 어느 목사의 이야기
1. 목사의 성폭행 그리고 피해자 A
2. 벌거벗은 목사와 에덴동산
3. 탈만민
4. 기적을 행하는 목자님
5. 몸에 닿기만 해도 살이 빠진다는 기적의 물
6. 기적의 물, 무안단물
7. 무안단물의 비밀
8. 내 너의 병을 낫게 하리라
9. 예물심기
10. 피해자 A, B, C
11. 다시, 방송금지 가처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