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대림동 여경 편 제작기
가짜 뉴스를 체크하는 프로그램은 제작하기가 참 쉽지 않다. 이미 가짜 뉴스라는 사실이 밝혀진 뉴스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고, 반대로 아직 가짜 뉴스로 밝혀지지 않은 뉴스는 이 뉴스가 가짜라는 사실을 밝혀내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뉴스'를 봤을 때 이 뉴스가 '가짜 뉴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기까지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가짜 뉴스들은 매우 그럴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떤 뉴스가 가짜 뉴스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온다면 일단 팩트 체크에 들어간다. 결과는 반드시 둘 중 하나다. 문제가 없거나, 가짜 뉴스이거나. 만약 그 뉴스가 가짜 뉴스였다면 나에게는 정말 반가운(?) 일이다. 이 가짜 뉴스를 아이템으로 해서 괜찮은 방송 한 편을 제작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뉴스가 제대로 된 기사였다면 이제 난리가 나는 것이다. 새로운 가짜 뉴스를 찾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니... 참고로 방송 날짜는 다가오기만 하지 멀어지지는 않는다.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는 이 시대에 넘쳐나는 가짜 뉴스를 파헤치고,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탄생한 시즌제 프로그램이다. MC로는 과감하게 배우 김지훈 씨를 섭외했다. 기존의 시사 프로그램들(<PD수첩>류)과는 뭐라도 달라 보이고 싶어서였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딱딱한 스튜디오와 검은 정장을 버리고 편안한 가정집과 캐주얼한 스타일을 선택했다. 이렇게 조금은 새로워진 환경에서 MC는 시청자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눈을 마주치기도 한다. 무엇보다 시청자들과 똑같은 시점에서 가짜 뉴스를 추적해 나간다. 시청자들을 가르치려는 듯한 기존의 시사 프로그램들과는 다른 톤을 유지하고자 했다.
시즌 2 방송을 앞두고, 이번에도 눈에 불을 켜고 아이템을 찾고 있었다. 많은 아이템 후보들이 있었지만 '이거다!' 싶은 아이템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의미 있는 가짜 뉴스 체크도 중요하지만 화제성도 신경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대림동 여경 사건' 뉴스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설전을 벌이고 있기도 했고, 며칠 사이 수 백 건의 기사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으니 아무래도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난리 었다. 특히 '여경'은 힘이 약하다. 도움이 안 된다. 뽑을 필요가 없다 등등. 여경 전체를 향한 비난의 시선이 짙어 보였다.
대림동 여경 사건은 지난 5월 '대림동'에서 주취자 2명이 남자 경찰관에게 욕을 하며 뺨을 때린 사건이다. 하지만 주취자 제압 과정에서 함께 출동했던 여자 경찰이 남자 시민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사실이 추후 공개되면서 여경 전체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림동 여경 뉴스를 선뜻 아이템으로 잡기는 쉽지 않았다. 고백하건대 '젠더 갈등' 양상을 보이는 아이템은 선택하기가 매우 부담스럽다. 잘 만들기도 어려울뿐더러, 아무래도 명확한 해답이 존재하는 아이템은 아니다 보니 여기저기서 혹독한 비판이 쏟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림동 여경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이 사건은 경찰의 공권력 문제나 현장 대응력에 대한 논의를 떠나 여성과 남성의 싸움으로 번져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식으로 다룬다 해도 갈등만 더 부추길 것 같았다. 하물며 <페이크>는 가짜 뉴스를 다루는 프로그램인데, 이 사건에 대체 무슨 가짜 뉴스가 있겠나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눈에 밟히는 아이템들이 종종 있다. 잘 안 풀릴 것 같지만 그럼에도 꼭 해봐야 할 것 같은 강한 끌림이 있는 아이템들. 보통 그런 아이템들은 엄청난 좌절을 맛보게 되지 않는 한 끝까지 붙들어보게 된다(그러면서 매일 후회를 하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 말하길 '해서 후회하는 것보다 하지 않아서 하는 후회가 더 고통스럽다'라고 했다. '대림동 여경 사건'도 왠지 그런 느낌이 드는 아이템이었다. 그래서 일단은 해당 사건에 대해 물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대림 지구대'를 향했다.
우리 아니에요 신구로예요! 대림동 아니에요
네??
당황스러웠다. '대림동 여경 사건'이 대림동이 아니라 '구로동'에서 있었던 사건이라니. 일단 제목부터 잘못된 가짜 뉴스였다. 할 말을 잃은 내 앞에서 대림 지구대 관계자도 황당하다는 표정을 가득 지었다. 그러면서 그는 지구대로 항의 전화가 빗발치는 터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대림 지구대 측에서 '대림동' 여경 사건이라고 보도한 언론사에 직접 정정 요청을 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기사는 여전히 ‘대림동 여경’으로 나오고 있다.
지구대를 나서며 '대림동 여경' 사건을, 아니 ‘구로동 여자 경찰 사건’을 꼭 다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팩트체크를 해볼 부분이 더 많을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구로동과 대림동은 엄연히 다른 지역 아닌가. 물론 요즘 같이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에 이 정도 오류가 무슨 대수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림동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나 편견을 생각해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실제 유튜브에는 이번 사건이 '대림동'에서 일어났다는 점을 크게 조명하는 영상들이 많았다. 대림동은 워낙 위험한 동네라 많은 사람들이 칼을 가지고 다니는데, 여기서 '대림동 여경'이 취객을 제대로 제압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함께 출동했던 남자 경찰이 칼에 맞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여경이 취객에 밀려나는 장면에 대림동이라는 가짜 정보와 편견이 더해지면서 '여경의 무능함'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국민의 입장에서는 경찰이 취객에 밀려나는 모습이나, 시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이 다소 못마땅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보다 강력한 경찰의 모습'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니 주취자 대응 방식을 더욱 강력하게 개선해야 한다는 국민의 요구는 합당한 일일 수 있다. 반대로 경찰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요구에 응답할 의무가 있다. 국민이 불안을 느끼는 점은 어떤 부분인지, 또 공권력과 현장 대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개선이 필요할지 논의하고 개선해야 할 분명한 책임도 있다.
하지만 '대림동 여경 논란'의 본질은 여기서 많이 벗어나고 있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여경'의 자질을 비난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여자’이기 때문에 혹은 ‘여자’인 그 경찰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 특히 ‘여자’ 경찰이 ‘남자’ 시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분노가 극에 달했다. 그리고 이 분노의 화살은 대림동을 넘어 대한민국 여자 경찰 전체를 향하고 있었다. 심지어 ‘여경 채용을 폐지하자’는 국민 청원까지 올라온 상황. 그렇다면 '대림동 여경'. 아니 '구로동 경찰'의 제압 과정에는 정말 그럴만한 문제가 있었을까?
논란의 중심에는 바로 여자 경찰의 '도움 요청'과 '수갑'이 있었다. 그러니까 '여자 경찰이 남자 시민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도 모자라 수갑까지 채워달라고 했다'는 부분이 문제가 됐다. 정말 사실일까? 제압 과정이 모두 담긴 원본 영상을 확인해봤다. 영상의 중반부에는 분명 여자 경찰이 다소 거칠게 남자 시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이 부분이 바로 시민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뒷부분. 영상의 중간부터 화면이 블랙으로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후로는 현장의 소리만 들렸다.
남자 : 채워요?
여자 : 예 채우세요 빨리 채우세요 빨리 채우세요
어두운 화면에서는 다급한 상황이 느껴졌고 어떤 남성이 '채워요?'라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어떤 여성이 채우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채워요?'라고 물어본 목소리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였을까? 앞뒤 상황을 바탕으로 추측해보면, 아무래도 여자 경찰의 부탁을 받은 남자 시민일 확률이 높아 보였다. 정말 여자 경찰은 시민에게 수갑까지 대신 채워달라고 요구했던 것일까? 관련 내용을 보도했던 뉴스를 확인해봤다.
SBS의 보도 내용과 MBC의 보도 내용을 확인해 보니 각각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자막이 달려 있었다(KBS는 해당 부분을 삭제해버리는 바람에 더 큰 갈등을 유발했다). 우선 SBS에 따르면 수갑을 채우냐고 되물었던 사람은 역시 '남자 시민'이었다. 그리고 수갑을 채워달라고 대답한 사람은 '여자 경찰'이었다. 추측했던 그대로였다. 반면 MBC 보도는 내용이 조금 달랐다. MBC에서는 남자 시민이 아니라 '교통경찰'이라는 존재가 새롭게 등장했다. 즉, 지원 요청을 받고 합류한 교통경찰이 주취자 제압을 도왔고 또 수갑 채우는 과정을 도왔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뒷부분이 달랐다. 여자 경찰이 아니라 바로 ‘여자 시민’이 경찰들에게 수갑을 빨리 채우라고 얘기했다는 것이었다.
분명 여자 경찰이 도움을 요청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도움을 받은 대상이 동료 경찰이냐 일반 시민이냐는 차이가 있다. 보다 효과적인 제압을 위해 동료 경찰들끼리 도움을 주고받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SBS 보도에 따르면 여자 경찰은 경찰의 상징과도 같은 수갑을 시민에게 넘겼다. 이는 분명 아쉬움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장면이다. 또 MBC 보도에 따르면 경찰이 시민에게 수갑을 채울지 말지를 물어보는 수동적인 태도를 보인다. 뿐만 아니라 여자 경찰은 제압 과정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 역시 강력한 경찰의 모습을 바라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매우 실망스러울 수 있다.
실제 이런 내용의 보도들이 주를 이루다 보니,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자 경찰이 남자 시민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곧 그 시민에게 수갑까지 건넨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자 경찰은 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많은 유튜버들은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여경 전체를 비난하는 신랄한 영상들을 제작해 올리고 있었다. 대부분 수갑도 혼자 못 채우는 여자 경찰은 필요 없다는 내용이었다. 또 수십만 명의 구독자들은 이들의 영상에 공감하고 함께 분노했다. 그리고 분노는 혐오로 이어지며 '여경 무용론' 으로까지 확산됐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두 뉴스는 모두 틀렸다. 이 사건이 논란이 되자 당시 지원을 나갔던 교통경찰이 모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채워요?'라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자기 자신임을 밝힌 것이다. 이 교통경찰은 그가 출동했을 때 이미 두 경찰이 취객을 완전히 제압하고 있었고, 자신은 수갑 채우는 것만 도왔다고 했다. 우리는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이 교통경찰의 목소리와 영상 속 ‘채워요?’의 음성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원본 영상에서 '채워요?'라고 묻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 교통경찰과 동일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수갑을 채우라고 대답한 사람은 시민 여성이 아니라 여자 경찰의 목소리로 밝혀졌다.
취재한 내용과 당시 112 신고 접수 센터 관계자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정리해봤다. 우선 이 사건은 대림동도 아니고 구로동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4-50대 2 명의 주취자들(일부 기사에서는 이 주취자들을 ‘노인’으로 표현하여 여자 경찰이 '술에 취한 노인도 제압 못했다'는 여론을 조성하기도 했다)이 술을 많이 마신 뒤 술값을 내지 않으며 수 시간 동안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식당 직원이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 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하룻밤 사이 구로동에서 접수되는 112 신고만 약 300건이 넘는데, 이중 이와 비슷한 주취 시비 신고가 절반도 넘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대림동 여경’ 사건으로 알려진 이런 해프닝만 하룻밤 사이 150건이 넘는다는 것이고 이 사건 또한 그 수많은 사건들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영상 속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출동했던 경찰들이 취객에게 뺨을 맞았으며, 실랑이 끝에 이들을 제압해 체포한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구로동 주취자 경찰관 폭행사건’으로 정정해야 할 것 같았다.
이렇게 명료한 사실을 두고 수많은 뉴스들이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지 못한 것이다. 지명도 틀렸고, 논란을 키웠던 경찰의 제압 과정에도 자막을 엉터리로 달았다. 심지어 전화 몇 통이나 간단한 취재만으로도 확인이 가능한 내용들이었다. 처음부터 언론이 해당 사건의 본질만, 그리고 정확한 사실만 전달했다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토록 극렬한 사회적 갈등만큼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대한민국 여자 경찰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거나, 대한민국 여자 경찰을 무조건 감싸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특히 시민에게 다소 거칠게 도움을 요청한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 비판의 여지도 있다. 그러니 여자 경찰이든 남자 경찰이든 잘못 한 부분이 있다면 응당 합당한 비판을 받거나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그 책임은 정확한 사실 위에서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사건이 지금처럼 심각한 성대결 문제로 확산될 만한 사건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젠더 갈등이 폭발하고 여경 무용론까지 나온 상황에서도, 언론은 자신들의 오류를 정정하거나 관련 문제에 대해 전혀 사과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가짜 뉴스는 마치 ‘좀비’ 같아서 쉽게 정정되거나 삭제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대림동 여경’ 뉴스는 온라인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고, 누구나 언제든 매우 쉽게 검색해서 볼 수 있다. 그러니 만약 ‘대림동 여경’ 사건에 대해 잘 몰랐던 어떤 사람이 지금 관련 기사를 검색해본다면, 아마도 ‘여경’에 대한 똑같은 편견과 불편한 시선을 갖게 되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언론은 남자 경찰을 일컬어 ‘남경’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으면서 여자 경찰은 굳이 ‘여경’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심지어 이것이 성차별적 표현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매일 쏟아내는 경찰 관련 기사에 ‘여경’이라는 단어를 포함시키고 있다. '여경'이라는 단어는 분명 클릭을 유도하는 자극적인 키워드다. 하지만 이런 표현들은 사건의 본질보다는 경찰의 성별에 더 주목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젠더 갈등을 유발한다. 그러니 이토록 뜨거워진 대한민국의 ‘여경 논란’에는 정확한 정보와 의미 있는 뉴스를 전달하지 못하고 젠더 갈등만 유발한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처럼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뉴스들이나 제목부터 잘못된 황당한 가짜 뉴스들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편견을 심어주는지, 그리고 이 편견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얼마나 단단하게 자리 잡게 되는지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경’이 등장하는 다른 기사들도 샅샅이 찾아봤다. 그랬더니 여경과 피트니스 모델의 전투력을 비교하는 기사부터 여자 아이돌과 체력을 비교하는 기사까지 다양한 기사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시선을 사로잡는 또 하나의 기사를 보게 됐다. 바로 ‘관악구 여경’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관악구 모 초등학교 앞에서 흉기를 든 어떤 남성이 경찰들과 대치했던 난동 사건이었다. 특히 퇴교 시간 직전에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자칫 아이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던 매우 아찔한 사건이었고, 실제 제압 과정 중 경찰 한 명이 흉기에 부상을 입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더 큰 사고 없이 이 범인을 제압해 사건을 종결시켰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에도 ‘여경’이었다. 여려 명의 남자 경찰들이 이 범인과 아슬아슬하게 대치하고 있는데 함께 출동했던 여경들은 휴대폰을 만지거나, 팔짱을 끼고 멀뚱멀뚱 구경만 했다는 것이었다. 관련 기사들은 이런 논란을 다루고 있었고, 유튜브에도 ‘여경은 구경꾼’이라는 내용의 비난 영상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사건이 발생했던 동네를 취재해보니, 실제 당시 사건을 목격했던 동네 주민들이나 관련 뉴스를 접했던 사람들도 모두 해당 여경을 비난하고 있었다. 특히 팔짱을 끼고 있었다는 점에 매우 불만이 컸다. ‘왜 위험한 일은 항상 남자들이 하고, 여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때문에 여자 경찰은 뽑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곧장 관할 지구대를 찾아갔다. 이러한 분위기를 전하고, 해당 여경의 입장을 들어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에요. 이분 우리 경찰 아니에요
네??
‘팔짱 낀 여경’이 지구대 소속 여경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대림동’에 이어 또 한 번의 충격이었다. 지구대 경찰들에 따르면 안 그래도 '경찰 모자와 비슷하게 생긴 모자를 쓰고 있었던 이 분' 때문에 논란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녹색 어머니'인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정확히 누구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고 본인들도 누구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슬슬 ‘관악구 여경 뉴스’에서도 가짜 뉴스의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찰들도 이분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상황. 게다가 유일한 단서라고는 이 ‘팔짱 낀 여경’의 흐릿한 영상 캡처뿐이었다. 이럴 때 팩트 체크를 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그냥 직접 찾아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진 한 장을 들고 온 동네를 찾아다녔다. 말 그대로 김서방 찾기였다.
아무래도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사진인 데다 화질도 떨어지다 보니 ‘팔짱 낀 여경’의 주인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분의 정체를 밝힐 수만 있다면 가짜 뉴스의 심각한 문제점에 대해 확실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약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푹푹 찌던 어느 날, 이 ‘팔짱 낀 여경’의 주인공을 알고 있는 사람을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분의 정체 또한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바로 60대 남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허탈한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함께 촬영을 나갔던 스태프들과 며칠 동안 우리를 지켜봤던 동네 주민들 그리고 이 60대 남성분 모두 마찬가지 였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비난했던 무책임한 '팔짱 낀 여경'이 다름 아닌 본인들의 이웃이자 머리가 긴 남성이었다니 다들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팔짱 낀 관악구 여경 뉴스'는 순식간에 퍼져나가 단단히 뿌리내리는 가짜 뉴스의 위험성을 제대로 느끼게 해줬다. 그리고 믿고 싶은 대로 믿게 되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 편견의 실체를 보여준 웃지 못할 촌극으로 끝이 났다.
언론과 각종 미디어들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여경’이라는 성차별적 표현을 의도적으로 남발해왔다. 뿐만 아니라 사실 확인조차 되지 않은 기사들을 복제해내면서 불필요한 오해와 과도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또 많은 사람들은 이런 잘못된 뉴스들을 소재로 자극적인 콘텐츠를 생산해 냈다. 그리고 각종 SNS와 유튜브를 통해 더욱 빠르게 '여경 뉴스'를 확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왜곡'과 '과장'이 달라붙는다. 이 바닥에서는 자극적이고, 공격적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팩트는 누더기가 되고, 의미 있는 기사는 찾아볼 수도 없는 구석으로 밀려난다.
하나의 뉴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너무나도 쉬워진 세상이다. 그리고 누구나 뉴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다매체 시대다.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뉴스에 오류가 있을 때, 그 잘못을 바로잡아 사람들의 오해를 풀기까지는 수십 번의 정정 보도로도 부족하다.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대림동 여경 뉴스' 취재를 마무리하면서, 혹시 사실 관계를 바로잡거나 의미 있는 후속 보도가 나왔는지 검색해봤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기사들만 눈에 띌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