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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호기 Apr 06. 2020

n번방의 운영자들, 그들은 누구인가?

PD수첩 <악의 끝판, n번방> 제작기

운영자 b


  좁은 골목을 지나자 허름한 철문이 보였다. 그리고 그 허름한 철문 뒤로는 아주 오래된 주택이 있었다. 보통은 조용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하지만, b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부로 일반 주택을 어렵게 빌렸다. 잘 열리지도 않는 철문을 밀고 들어서자 5층까지 뻗어있는 계단이 나타났다. 영화에서나 봤던 그런 나선형의 낡은 계단이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짧은 한숨과 함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캐주얼한 후드티를 입은 b가 높은 계단의 끝을 올려다봤다. 그가 어떤 상태인지 슬쩍 파악해보려 했지만 콧등까지 올려 쓴 마스크 탓에 그가 어떤 심정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발을 내딛는 한 칸 한 칸마다 복잡한 생각들이 교차했다. 어떤 식으로 인터뷰를 시작해야 할지. 어떤 표정으로 무엇을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어떤 계획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처럼 복잡한 심정이 드는 인터뷰도 흔치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편이 맞는가? 아닌가?' 하는 그런 걱정도 들었다. 자칫 b의 증언이 거짓일 가능성, 그리고 우리의 취재 내용이 역으로 유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사실 b가 왜 우리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는지 조차도 궁금했다. 어쨌든 b와 나는 가쁜 숨을 몰아내며 아주 작고 조용한 옥탑방으로 들어섰다.

 

  b는 텔레그램에서 음란물 공유방을 운영했던 운영자 중 한 명이었다


  b는 몇 달 전 경찰에 체포됐다. 텔레그램에서 불법 음란물을 거래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했던 모든 일들을 반성하고 언론과 경찰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고 했다. 이것이 우리의 인터뷰 요청에 응한 이유였다. 실제로 그는 텔레그램 방에 잠입해 많은 증거들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경찰은 이 단서로 다른 운영자들을 속속 검거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인터뷰이었다. 텔레그램 내부의 생태계를 얘기해줄 수 있는 유일한 증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다음 약속 장소로 이동하기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1시간 남짓뿐이었다. 중요한 질문부터 서둘러 던져야 했다.


어떻게 그 방에 들어간 거예요?


  b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평소 자주 찾던 유명 커뮤니티에서 '어떤 링크'를 발견하게 됐고, 그 링크는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무심코 야한 동영상을 볼 수 있다는 소개에 이끌려 링크를 클릭했던 b. 그 '링크'의 끝에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존재했다. 그곳에는 수많은 여성들의 나체 사진과 영상들이 공유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단순히 '노출이 심한 사진'과 '야한 동영상'을 공유하는 채팅방이 아니었다. 흘러 흘러 그가 도착한 곳은 바로 '텔레그램 n번방'이었다.

  

 인분을 먹게 하거나 친동생과 구강성교를 하도록 강요하기도 했어요

  

  n번방의 실상은 뉴스로 접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참혹했다. 그리고 n번방에서 일어난 일들은 이게 정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n번방의 운영자는 이용자들 사이에서 '신'이라 불리던 '갓갓'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여성 피해자들을 협박해 자신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옷을 모두 벗게 하거나 자위행위를 하게 했고, 또 이보다 더 심한 가학적인 행위를 담은 영상을 찍어 전송하게 만들었다.


  이 끔찍한 '미션'은 갈수록 잔혹해졌다. 어느 피해자는 자신의 몸에 칼로 '노예'라는 글자를 새겨야 했고, 또 어떤 피해자는 화장실 바닥에 앉아 변기 물로 세수를 하거나 자신의 소변을 마셔야 하는 끔찍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이런 행위를 인증하듯 직접 영상에 담아야 했고, 곧 이 영상은 운영자 갓갓에 의해 유포됐다.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런 잔혹한 일들을 시키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또 이런 수모를 당하게 된 피해자들은 어쩌다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갓갓'은 SNS에 자신의 신체 사진을 올리는 여성들에 접근해 그들의 신상정보를 해킹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는 피해자들에게 '어느 사이트에 당신의 사진과 신상 정보가 도용당하고 있는 것 같으니 확인해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물론 이 메시지에는 해킹을 위한 링크가 포함되어 있었고 이 링크를 클릭하면 어느 SNS의 로그인 페이지와 똑같은 모양의 페이지가 나오게끔 설계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거짓 문자에 당황한 피해자가 자신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순간, 이 계정 정보를 받아내는 '피싱'이었다. 그다음부터는 아주 간단했다. 피해자의 실제 SNS 계정에 로그인한 뒤 피해자의 사진과 모든 정보를 캐내는 것이다. 이렇게 '갓갓'은 피해자의 아주 사적인 정보까지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피해자에게 사이버 수사대나 경찰, 변호사 등을 사칭하며 연락을 했다. 당신은 지금 온라인 상에서 이러저러한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조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니 신분증과 사진을 보내라는 식이었다. 피해자는 깜빡 속을 수밖에 없었다. '갓갓'이 정말 경찰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니는 학교와 자신의 이름 그리고 부모님 번호까지. 피해자들은 갓갓의 요구를 조금씩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요구는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신분증 사진을 확보한 갓갓은 피해자들의 가슴 사진이나 신체 노출 사진을 요구했다. 그리고 자신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모든 정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다수의 피해자들은 미성년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사진이나 일탈 행위들이 주변에 유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갓갓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갓갓은 딱 1주일이라고 했다. 1주일만 자신의 말대로 움직이면 모든 정보를 지워준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n번방의 시작이었다.


 그 사람은 21세기형 디지털 연쇄살인마라고 생각해요



  '갓갓'은 어떤 사람인 것 같냐고 묻자 한참을 고민하던 b가 꺼내 든 표현이었다. b의 표현대로 그는 연쇄살인마나 다름없었다. 피해자들의 생명을 앗아가지만 않았을 뿐, 수많은 피해자들의 인격을 무참히 파괴했다. n번방은 어느 잔혹한 살인 현장 못지않았다. 아니 어쩌면 실존했던 어느 범죄 현장보다도 더욱 참혹한 공간이었을지 모른다. 이유는 수 천, 수 만 명의 목격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복을 입은 피해자들이 자신의 신체를 노출하거나, 칼로 자신의 몸에 노예라는 글자를 새기는 순간에도 침묵했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이 울며 절규하는 순간에도 어느 누구 하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피해자들을 도우려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이들은 더욱더 자극적인 미션을 요구했고, 피해자들의 사진을 이모티콘처럼 사용하며 웃고 떠들기도 했다. 각 방의 피해자들은 '암캐 노예'라 불렸다.



  취재를 하며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피해자들이 당한 잔혹한 일들도 물론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충격적이었지만, 내게 더 큰 충격은 바로 수많은 목격자들이 있었다는 것. 또 이들이 단순히 구경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적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하며 돈을 지불하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적게는 수만 원부터 수백만 원까지. 이용자들은 더 많은 피해자들을 구경하고 희롱하기 위해 기꺼이 운영자들을 후원했다. 운영자는 그런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방의 링크를 공개했다. 새로운 방은 곧 새로운 피해자, 그들의 표현대로 더 ‘고급 자료’를 의미했다. 이용자들은 그렇게 방과 방 사이를 넘나들었고, n번방은 1-8까지 번호가 붙은 8개의 방을 포함 총 10개의 방까지 확장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n번방의 ‘n’이란 지속성과 무한함을 의미하는 수식어였던 셈이다.


그냥 방을 만들고 음란물을 올리기만 하면 돼요. 그럼 사람들이 방에 좀 들어가게 해 주세요 합니다. 문화 상품권이나 치킨 교환권 같은 걸 바쳐요. 조공처럼.


  심지어 이용자들 중 일부는 직접 새로운 방의 운영자가 되기도 했다. b 또한 피해자들을 협박하거나 성착취 영상을 제작하지 않았을 뿐 유사한 형태의 음란물 공유방을 만들고 운영했었다고 했다. 금세 그의 방에도 수백 명의 이용자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은 계속해서 자극적인 영상을 요구하거나 직접 더 센 영상을 경쟁적으로 올리기도 했다. 충격적인 영상은 곧 권력이고 돈이었다. 그러니 ‘센’ 영상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 높은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조주빈의 박사방 역시 그렇게 탄생한 수많은 방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금세 이 바닥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유는 그의 영상이 '갓갓'의 성착취물 못지않게 자극적이고 가학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박사와 그의 추종자들은 그들의 성착취물을 '예술'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방에는 늘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뿐만 아니라 이용자들은 박사에게 수백만 원씩 입장료를 내거나 그의 밑에서 직원처럼 일을 하기도 했다. 그 방에서 그는 왕이나 다름없었다. 이용자들은 그의 말 끝마다 ‘아멘’이라고 하기도 했다.



  박사의 악마 같은 모습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봉사활동을 하거나 학교에서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잃기도 했다. 어떤 방송에서는 그의 어린 시절이 불우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뉴스는 온통 악마 '조주빈'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이제 악마가 체포되었으니, 홀연히 사라진 '갓갓'만 검거하면 이 모든 문제는 마무리될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텔레그램 방은 그렇게 단순하게 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자리에서 막 일어서려던 b가 우리에게 자신의 휴대폰을 보여줬다. 거기엔 그가 잠복 중인 수많은 텔레그램 방들이 있었다.


  그곳에는 아직 잡히지 않은 또 다른 '박사'들이 수두룩했다. 그리고 또 다른 '갓갓' 혹은 '박사'가 될 수 있었던 이용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활동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수많은 방에는 숨죽여 음란물을 퍼다 나르는 수천 명의 이용자들이 여전했다. 경찰이 유사 범죄를 근절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그 순간에도 이 수만 명의 이용자들은 경찰을 조롱하며 여유를 부렸다. 휴대폰을 쥔 b가 채팅방 목록을 계속해서 스크롤 다운했지만,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방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심지어 이 많은 방에서는 채팅과 파일 업로드를 알리는 알림들이 다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났다. 마치 법이 존재하지 않는 다른 세계 같았다.


  그렇게 텔레그램 방은 위축되기보다는 오히려 더 확장하고 있었다. 심지어 수많은 방들은 각자 다양한 콘셉트로 분류되며 더 단단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유명 아이돌의 얼굴에 포르노 배우의 나체를 합성해주는 방부터, 유아를 성적으로 희롱하는 영상들을 공유하는 방까지. 여전히 수많은 이용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콘셉트에 맞는 방에 너무나도 쉽게 들어갈 수 있었고, 흔적 없이 영상을 다운로드할 수 있었다. 결국 이번에 체포된 악독한 운영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성범죄 중 한 단면에 불과했던 셈이었다.


  대체 왜 이런 일들이 계속되는 것인지. 또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졌다.



PD수첩 <악의 끝판, n번방> 제작기 목차


1. n번방의 운영자들, 그들은 누구인가?

2. n번방의 세입자들,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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