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호기 May 19. 2020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72억

나눔의 집에 후원하셨습니까?

  내게는 완전히 낯선 두 단어의 조합이었다. '나눔의 집' 그리고 '조계종'. 그런데 이 두 단어가 제보 게시판 한 구석에 나란히 놓여있었다. 그것도 아주 어색하게 한 문장 안에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 더, '횡령'. 수많은 제보 글들 사이에서 한동안 눈길이 머물 수밖에 없었다. 클릭. 제보 내용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나눔의 집'은 영화 <허스토리> 리뷰를 쓰면서 꽤 여러 번 검색해봤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있는 곳이었다. 나눔의 집은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의 생활공간이자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운영하고 있는 곳. 제보자는 다름 아닌 이 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이었다. 글은 꽤 길었다. 그리고 그 빼곡한 문장 사이사이에서는 오랜 기간 쌓여왔을 답답함과 절실함이 느껴졌다. 또 파일도 있었는데 파일 이름은 무려 '비리 총람'이었다.  


  핵심은 이렇다. '나눔의 집'에는 매월 2억에 가까운 소중한 후원금이 들어오는데 정작 할머님들을 위해서는 사용되지 못하고 완전히 엉뚱한 곳에 쓰이고 있다는 것.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나눔의 집은 온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 곳 아닌가. 그런데 할머님들을 위해 모인 소중한 후원금들이 정작 할머님들을 위해 사용될 수 없는 상황이라니. 심지어 그렇게 고스란히 쌓여있는 후원금만 무려 70억이 넘는다고 했다. 이게 정말 말이 되는 소린가? 대체 왜?


경기도 광주 퇴촌면에 위치한 '나눔의 집'

  

  글을 끝까지 다 읽기도 전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귓속에서는 둥둥 치는 북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손끝은 점점 차가워졌다. 아주 가끔 이렇게 묘한 흥분이 되는 아이템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렇다면 그 아이템은 일단 먼저 잡고 봐야 한다. 곧바로 제보자 J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며칠 뒤 어느 카페에서 만날 수 있었다.

  

  후원금을 할머님들께 쓰지 못하신다고요?

  

  다부진 체격의 제보자 J는 또 한 명의 동료 H와 함께 나타났다. 두 사람은 어딘가 몹시 지쳐 보였지만 그만큼 단단해 보였다. 특히 H와의 만남은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이유는 H가 일본인이었기 때문이다. H는 10년 가까이 할머님들 곁을 지켰던 봉사자이자 국제팀 직원이었는데, 뒤로 짧게 동여맨 H의 머리에는 흰머리가 희끗했고 눈빛은 강렬했다.


  솔직히 나눔의 집에 일본인 직원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인지 느껴본 적 없는 복잡한 심정이 차올랐다. 입 밖으로 꺼내기 싫은 고마움이라고 해도 좋을지. 한국말로 조목조목 문제를 지적하는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도 뒤따랐다.


 “할머님들께 후원금으로 옷 한 벌, 밥 한 끼 사드리지도 못해요”

 “할머님들 병원도 못 가게 한다니까요?”


  실제 몇 달 전 사고가 있었다. 아침에 H가 인사를 드리러 할머니의 방문을 열었을 때 할머니가 피를 흘리고 계셨던 것이다. 밤 사이 침대에서 떨어지신 탓이었다. 할머니의 눈가는 퉁퉁 부어 있었고, 얼굴에는 계속해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던 상황. 놀란 직원들은 다급히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시고자 했다.


  하지만 어찌 된 것인지 시설의 사무국장과 소장은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지 못하게 했다. 당황한 직원들이 계속해서 병원에 모셔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그들은 결코 외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애타는 시간이 흘렀고, 다음 날 할머니 얼굴에 짙은 피멍이 들었을 때에야 겨우 할머니를 병원에 모실 수 있었다. 이후 직원들은 낙상 위험이 있는 침대를 안전한 것으로 교체하자고 요구했지만 이 또한 거절당했다.


  뿐만 아니라 어렵게 병원에 간다 해도 시설의 소장과 국장은 후원금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반드시 할머니 개인 돈을 쓰게 하거나, 그게 어려울 경우 직원들이 개인 돈으로 먼저 병원비를 지불한 뒤 추후에 가족들에게 연락해 그 비용을 받아내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여의치 않을 때는 직접 할머니들의 통장과 도장을 들고 은행을 찾아가 어렵게 할머니들의 돈을 꺼내오기도 했다. 심지어 20년 근무하신 간호사 선생님은 할머니들 병원비를 지불하기 위해 현금 서비스를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아니 후원금이 72억이나 쌓여있는데 대체 왜 후원금을 쓰지 않는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이자 수익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 아닌가. 할머님들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게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이들의 이야기가 결코 거짓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시설의 직원으로서 할머님들을 더 잘 모시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소중한 마음을 보내준 전 세계 후원자들에 대한 죄송함. 이들의 슬픈 얼굴에는 이 모든 것들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이 선명했다. 게다가 꽤 탄탄한 근거 자료까지 확보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정작 더 놀라운 이야기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할머니들께 뭐라도 더 해드리고 싶잖아요. 그래서 그냥 사비로 뭐 좀 사드리면 국장, 소장이 불러서 엄청 뭐라고 하죠”

“할머니들 버릇 나빠진다고...”


  시설의 운영진들이 수차례 입에 올리던 표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할머니들 버릇 나빠진다’였다. 이들은 할머니들께 이처럼 상상도 할 수 없는 무례한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오래된 바지가 자꾸 흘러내리자 할머니는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봉사자에게 고무밴드를 사다 줄 수 있겠냐고 긴히 부탁을 하셨다. 허리에 감아 바지를 붙들기 위해서였다.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봉사자는 직접 고무밴드를 사 왔고 할머니께 드렸다. 할머니는 매우 고마워하셨고 봉사자도 기분 좋게 봉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사실을 안 사무국장이 봉사자를 불렀다. 그리고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 같은 말을 내뱉었다.


다음부터는 이런 거 사 오지 마라.
할머니들 버릇 나빠진다.


  말 그대로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듣고 있는 나나 이런 이야기들을 전하는 직원들이나 한동안 말을 잇기 어려웠다. 직원들의 표정은 이제 죄송함과 부끄러움을 넘어 비통해 보이기까지 했다. 실제 이 곳의 문제는 정말 심각해 보였고, 사실 확인이 필요한 부분도 많아 보였다. 이 아이템은 막대한 후원금이 대체 어디에 쌓여있는지 그리고 왜 쌓아두기만 하는지 그 이유를 찾는 것이 핵심인 것 같았다.


그럼 대체 그 많은 후원금은 다 어디에 있는 거예요?




나눔의 집에 후원하셨습니까?


1. 위안부 피해 할머니72

2. 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 집에서 생긴 일

3. 유재석씨의 2억 1천만 원은 어디로 갔을까?

4. 큰 스님들의 은밀한 회의

5. '할머니'를 위한 시설은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n번방의 운영자들, 그들은 누구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