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삶의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가을이 왔다. 문득 기자로 일한 지 몇 년이 흘렸다는 걸 생각하게 됐다. 비대하게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적다고도 할 수 없는 시간이 흘렀다. 기자로 일하고 있지만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기자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원하던 방향이 잘 되지 않았고,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걸 업으로 삼고 싶어 알아보다 덜컥 기자로 일하게 됐다. 솔직히 앞으로는 잘 모르겠다. 기자로 계속 일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겠지.
살면서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특히 직업적인 부분에서는 더더욱. 농부로 살아가는 아버지 또한 살면서 단 한 번도 농부를 꿈꾸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고, 그게 마침 나무를 키우고 농사를 짓는 일이었던 거다.
농사를 지으며 아버지는 행복할까? 그런 순간도 있겠지만 짐작하건대 농사보다는 가족에게서 더 큰 행복을 얻었을 거다. 나 또한 기자로 일하며 큰 동기나 행복을 얻는 편은 아니다. 장점도 있지만 이 일은 대체로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라는 단점이 있다. 불특정 다수에게 보이고, 무수한 낯선 얼굴을 만나는 건 보통 썩 유쾌하지는 않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왜 이 일을 지속하냐면,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몇몇 단점을 차치하고, 일의 업무 강도는 괜찮은 편이다. 적어도 아버지의 하루에 비하면 나는 매우 쉽게 돈을 벌고 있다. 당장 그만두고 더 좋은 조건의 일을 구하기도 어렵다. 가진 재주가 그렇게 다채롭지 않다. 그러니 매달 월세나 공과금을 내고,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직업을 유지하는 게 좋다.
이렇게 살아간다면 나는 직업을 통해 어떤 원대한 꿈도 이룰 수 없을 거다. 인류사에 족적을 남긴다거나,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거나 하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을 거다. 퇴근길에 본 쭉 뻗은 언덕을 따라 늘어선 수많은 가로등 가운데 하나로 빛나고 있는 삶에 가깝다. 그나마 가진 실낱같은 빛을 꺼트리지 않으며 살아가는 삶.
그렇다면 나는 왜 살아가고 있을까? 내가 살아가는 이유란 무엇일까? 나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는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저 우연히 태어나버렸기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을 따름인 거다. 개미에게 탄생의 이유를 묻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태어나버렸고, 사고나 질병이 없다면 우리는 꽤 오랜 세월을 살아가야 한다. 한두 해를 살아가는 곤충이나 동물이 하지 않는 삶의 의미에 대해 우리가 고민하는 이유다. 고민 없이 살아가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꽤 길다.
나는 적어도 아버지에게는 삶의 이유를 물어보지 않는다. 어딘가 그게 좀 두렵다. 아버지의 삶이 평탄하지 않은 삶이었던 만큼 꽤 어두운 구석까지 안다고 생각하는 삶에 대해 놀랄 만큼 까마득한 어두운 바닥을 보게 될까 봐 일 수도 있고, 혹여 아버지 나름의 이유에 지나치게 신경 쓰게 되는 게 싫어서일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꽤 오래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갈까에 대해 고민해보고 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 답이 직업보다는 사람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꽤 확고하지만,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게 많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직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진지하게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고 믿는다. 죽임 이후의 공허함에 대해 두려워하기도 하고, 사는 게 버거워 산다는 일 자체를 그만둘까 고민해보기도 한다. 나도 사는 일이 유쾌하지 않을 때는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더 살아가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없다. 이유는 늘 같았다. 나는 내일이 궁금하다. 내일을 살아가 보고 싶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에 대해 기대감을 가져보고 싶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다 주말에 대한 기대도 해본다. 유원지에 간다거나 하는 그런 특별한 걸 생각하는 건 아니고, 공원을 산책한다거나 날씨 좋은 날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음료를 홀짝이는 상상 같은 걸 한다. 그러면서 한 두 글자 적어보기도 하고.
별 건 아니지만, 그럼 살아가는 게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 내일은 살아보고 싶다. 내일을 살지 못하는 건 아쉽다. 어쩌면 나는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삶의 의미는 잘 모르겠다. 위대한 삶에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안다. 오히려 삶의 의미는 그보다 폭풍에 지쳤을 때 돌아갈 수 있는 사랑에 가깝게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랑이 없다면? 그럼에도 내일을 살아봐야 할 거다. 내일이 없는 건 오늘이 아무리 힘들어도 아쉽다.
가끔 책을 읽으면 우연하게도 사랑받는 작가가 되는 상상도 해본다. 물론 그럴 일은 거의 없을 거다. 내일도 아마 나는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갈 거다. 사람을 만나고 마감을 하고, 이런저런 회의를 하다 해가 지면 퇴근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거다. 별 다를 거 없고, 그렇게 재밌지도 않다. 그래도 나쁜 하루는 아닌 것 같다. 간간히 사이사이 괴로운 일이 가시처럼 박히는 만큼 행복한 일들이 꽤 생길 수도 있고.
오늘은 참 두서없는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많이 솔직한 글이다. 쓰다 보니 하루가 거의 다 갔다. 자고 일어나면 또 하루를 살아볼 생각이다. 여전히 삶의 의미는 모르겠다. 하지만 삶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스팔트 사이의 개미, 가로수 가지의 이름 모를 새, 옆 건물 앞을 청소하는 백발노인과 지하철의 무수한 사람들... 내일도 무수한 생명이 하루를 살아간다. 나는 그 틈바구니에 섞여 하루 또 살아가 본다.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산다는 건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