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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경 Sep 02. 2020

남학생이 당구 300치면 무조건 사귀어라

62년생 박미경 이야기

나이로는 81학번이지만 미대 입시 실패 후 많은 방황을 했던 나는 83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하였다. 그저 점수에 맞춰 들어간 학과였지만 과의 남녀 성비가 반반이었고 왠지 순댕이들이 많아서 내성적인 나도 금방 적응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대학의 전통이 워낙 술을 많이 마시는 데다가 끈끈한 정, 화합 같은 것을 중요시 여기는 학교여서 어쨌든 신입생들이 적응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에는 신입생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선배들이 우스운 얘기를 해서 분위기를 살려주었다. 총학생회장은 "여학생들은 남학생이 당구 300 친다 하면 무조건 사귀어라"라고 하면서, 그건 당구 300칠만큼 머리가 좋고, 당구 300에 투자한 비용을 지불할만한 경제력이 있고, 그런데도 잘리지 않고 학교를 다니는 능력을 증명하기 때문이라고 해서 모두를 웃겼다.


또 신입생들을 대운동장에 몰아넣고 축제나 학교대항 운동경기 때 부르는 응원가를 가르쳐 주었는데, 율동을 따라 하다 보면 옆 사람과 친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어서 신입생들로서는 어찌되었든 저절로 적응이 되는 시스템이었다.


과의 신입생 환영회는 거의 모든 과들이 전통적으로 막걸리를 마시도록 강요당하는 것이었다. 우리 과의 신입생 환영회도 강당에 신입생부터 졸업반까지 모두 모였는데, 내가 강당에 들어서면서 본 것은 수북이 쌓인 냉면사발과 푸대자루 같은 데에 들어있는 다수의 막걸리 푸대였다.


신입생들은 대여섯 명씩 한 줄로 강당 무대에 올라가서 신고식을 치러야 했는데, 선배들이 막걸리 찬가를 부르는 동안 냉면사발에 부어진 막걸리를 입을 안 떼고 단숨에 마셔야 했다. 만약 노래 중에 막걸리 사발에서 입을 떼면 다시 한 사발이 추가되었다.


술을 처음 마셔보는 아이들도 있었고 막걸리를 못 마시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런 사정은 봐주지 않았다. 어떤 아이는 술을 다 마시자마자 그대로 입으로 분수처럼 뿜어내기도 했는데, 그건 일부러 내뱉는 행위가 아니라 비위가 약하여 먹자마자 게워내는 생리현상이었다.


선배들은 이 대학에 들어오는 날, 너희들의 주량의 기준을 없애주는 게 선배들의 할 일이라고 했고, 신입생 환영회 날은 모두 집에 못 갈거라 했다. 그날 나도 술을 마시다가 필름이 끊어졌고 여관방에서 동급생 여학생들과 함께 잠이 들었다. 다음날 학교 주변은 막걸리 냄새와 토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렇게 나의 대학생활은 술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러나 대학생활이 낭만으로 가득 찬 것은 절대 아니었다. 내가 입학할 당시에는 일명 "짭새"라 불리는 사복경찰들이 교내에 상주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교내에서 그들과 운동권 학생들과의 추격전이 벌어졌다. 교내의 시위를 주도하거나 전단지를 뿌리거나 수배되어 있던 학생들을 잡는 추격전이었다.


잡히면 일명 "닭장차"라 불리는, 철망으로 창문이 둘러진 경찰버스에 실려갔는데, 그 과정이 매우 살벌했고 그런 장면을 목격하는 것은 무섭고 우울한 일이었다. 그런데 짭새들은 그런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잔디밭 같은데 누워서 여학생들을 향해 욕도 하고 성희롱도 했으며, 그래서 학생들과 많은 트러블이 생기기도 했다.



학교 안팎으로 거의 매일 집회와 시위가 있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최루탄이 터졌다. 사실 대학을 다니면서 제대로 공부에 몰입할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공부를 아예 내팽개칠 수도 없었다.


학생들은 대충 세 부류로 나뉘었다. 운동권, 학구파, 회색분자. 학구파들은 욕을 먹어가면서도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시위가 있는 날은 운동권 학생들에게 대놓고 욕을 먹었다. 회색분자들은 나 같은 부류였는데, 마음은 운동권인데 폭력이 두려워 몸을 사리는 쪽이었다.


학교의 주도권은 운동권들이 잡고 있었다. 그들은 사랑받고 존경받았다. 심지어 로맨스의 대상이었다. 그 당시의 이상형은 운동권이면서 카리스마 있지만 후배들에게는 친절한 선배였다. 노래까지 잘하면 더 바랄 게 없었다. 돈이 많거나 좋은 차를 끌고 다니거나 명품을 휘감고 다니는 학생들은 (별로 있지도 않았지만) 배척받는 분위기였다. 운동권 중 일부는 몹시 보수적이어서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고 꾸미고 다니는 여학생들을 보면 대놓고 창피를 주고 욕을 해댔다.  


그 당시 인기 좋은 여학생은 운동권, 똑똑함, 꾸미지 않음, 바지 입음, 성격 좋음, 친절함, 술 잘 마심, 대충 이런 조건의 여학생이었다. 예쁘고 꾸미고 화장하고 치마 입고 학구파인 여학생보다 인기가 좋았다. 꾸미고 화장하고 공부 잘하는 여학생을 좋아하는 것은 죄악시되는 분위기였달까. 물론 인기 좋은 남학생의 경우도 동일했다.


학생들은 많은 비율로 서클활동을 했다. 서클활동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대학생활을 즐기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학과보다 서클활동이 학내의 중심적인 활동이었고 개별 관계의 밀착도도 높았다.


학생회관에는 여러 서클룸이 있었는데, 역시 가장 큰 서클은 운동권 서클들이었고 서클을 중심으로 운동권 활동이 돌아가고 있었다. 맑스니 사회문제니 경제문제니 등등의 이름이 들어간 서클, 탈춤 등의 연희패 서클, 무슨무슨 문화 등의 운동권 서클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는데, 여타 운동권이 아니라고 핍박받는 서클들, 부르주아 서클이라고 비난받는 서클들과의 갈등도 많았다.


그러나 밤이 오면 환하게 불이 켜진 학생회관 서클룸 여기저기서 웃음소리, 기타 소리, 노랫소리가 들려왔고, 낮의 그 살벌한 분위기와는 달리 한없이 낭만적인 풍경이 연출되면서 매일 이러한 극과 극의 낮과 밤이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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