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1장. 나에게 없는 것

by Jamie




엄지발가락 아래에 있는 커다란 뼈 아래쪽에 염증이 생긴 것 같았다. 그곳을 구부릴 수 없으니 절뚝이는 걸음걸이가 됐다. 그 상태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운동을 하러 갔다. 운동 시작 전 컨디션을 물어보는 선생님에게 발이 좀 아프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느 곳이 어떻게 아픈지를 들은 선생님이 잠시 고민한 후 할 수 있는 다른 운동으로 대체해 보자고 했다. 발이 아픈데 하체운동이 가능할까. 중량을 들고 하는 런지를 하체운동의 메인으로 하던 때였다. 뒤에서 버티는 쪽 발의 발가락을 구부릴 수 없으니 스플릿 스쿼트로 바꾸어 하기로 했다. 스플릿 스쿼트는 한 쪽 다리를 뒤쪽 벤치에 무릎을 구부려서 올려놓고 앞쪽 다리로 버티면서 하는 운동이다. 고관절을 접어(힙힌지) 엉덩이 자극을 느끼며 운동하면 하체의 뒷부분을 많이 단련시킬 수 있다. 한 발로 하는 레그프레스도 발의 위치와 자세를 조정하여 다리 뒤를 주로 단련하는 런지를 대체할 수 있었다.

통증이 꽤 심한데도 금방 병원에 가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가 겪는 고통을 지켜보고 난 뒤라 이 정도는 피부에 긁힌 상처만큼 사소한 통증 같았다. 조금의 불편을 겪는 것이 마음은 더 편한 것 같기도 했다. 발을 치료하러 간 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치료 첫날에 발에다 주사를 꽂으며 사흘 만에 나을 거라고 했다. 발에 주사를 두 번 맞고 약도 먹고 했지만 금방 나을 것 같지 않았다. 선생님은 운동 때마다 컨디션, 특히 발이 어떤지를 확인했다. 아픈 곳은 호전이 없거나 더 아프거나를 반복했다. 생각보다 오래가네요? 선생님이 걱정했다. 네, 한 1년쯤 갈 것 같은 느낌이에요. 잦은 부상의 경험에서 오는 감이었다.


발이 아픈 것은 하체운동뿐 아니라 상체운동과 유산소 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두 발로 버티고 바벨을 들어야 하는 등운동인 데드리프트할 때도 무게를 발바닥으로 버텨야 하므로 무리가 갔다. 걷기나 달리기할 수도 없게 됐다. 운동 때마다 발의 통증을 살피며 무게를 낮추거나 발을 쓰지 않아도 되는 종목으로 대체했다. 이렇게 번거롭고 효율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예전의 나라면 운동을 중단하거나 나을 때까지 쉬지 않았을까? 다쳐도 운동은 할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것보다 조금 가볍게, 할 수 없는 것은 다른 것으로 바꿔서 했다. 원래 할 수 있는 것만큼 빨리 늘지 않아도 조금씩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며 운동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하고 있는 나 자신이 조금 좋기도 했다. 앞에서 했던 많은 운동을 멈추게 했던 것은 어쩌면 핑계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함에 처음의 설렘이 무뎌지고 지금의 모습에서 더 빨리 좋아지고 싶은 마음이 들 때쯤 나는 새 장비를 샀고, 마침 부상이나 어떤 상황이 찾아왔던 게 아닐까. 징크스를, 쉽게 약해지고 싫증내는 마음을 이겨내고 싶었다. 불편하고 모자란 것을 안고도 계속 나아가고 싶었다.


운동을 가지 않는 날이었다. 오전 내내 집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휴대전화를 열었는데 오전에 선생님이 보낸 메시지가 와 있었다. 비트즙이 염증에 좋아서 운동선수들도 챙겨서 먹으니 한번 먹어보라고 했다. 비트즙 선물이 도착해 있었다. 절뚝이면서도 운동하러 오는 회원에 대한 응원이었다. 냉장고에 우유를 꺼내러 가는 길에 선물과 함께 온 카드를 열었다. 카드 속 문구에 가던 걸음이 멈췄고 마음이 동요했다.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응원 카드의 선택 문구 중 하나로 곰처럼 생긴 사자가 엄지를 치켜들고 해주는 말이었다. 잘했다, 잘하고 있다, 잘될 거라는 ‘잘’에는 앞으로 더욱 잘하길 바라는 기대가 담겨있다. 충분히 잘하고 있다, 는 ‘충분히’에 힘이 실린다. 충분한 것은 더 애쓸 필요가 없는 상태이다. 더 채우지 않아도 되고, 더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 지금 내 상태 그대로도 괜찮은 상태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입증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 내 마음에 있는 충분한 것을 동력으로 성장 자체를 즐기며 노력할 수 있다. 내 안에 없는 것을 끌어모으는 것은 힘들지만 안에서 샘물처럼 솟는 것을 쓰기는 쉽다. ‘충분하다’는 나에게 없었다. 듣기를 원하면서도 나조차도 해주지 않던 말이었다. 나는 나에게 충분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나.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애쓰느라 소진되기를 반복했다. 충분하다는 말 안에 머물고 싶었다. 그 안에 머물자 충분한 나의 것을 가지고 무언가 해볼 힘이 생겼다.


걸어가고 있던 길이 점점 좁아지다가 커다란 돌문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 앞에 서서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찾던 중 힌트가 적힌 카드를 받은 것 같았다. 나를 막고 있는 돌덩이를 넘어서고, 밀려오는 물살에도 완고한 염증에도 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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