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헬스라는 명상
빌런은 영화·소설 등에서 주인공과 대립하는 악당 캐릭터를 의미하지만, 일상에서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신조어가 됐다. 빌런이란 말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을 때 빌런이라는 용어를 가장 처음 듣게 된 것은 헬스장에 다니는 친구에게서였다. 덤벨을 사용하고 제자리에 두지 않고, 기구를 혼자 독차지 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기구 의자에 땀을 흠뻑 묻혀놓고 그냥 가는 등의 행동은 사소하지만, 같은 공간과 물건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감과 불쾌감을 안겨준다. 우리 헬스장에는 흔히 말하는 헬스장 빌런이 없다. 워낙 운동에 진심인 사람들이 오는 데다 선생님들이 잘 보살피는 곳이라 불편하거나 불쾌할 일 없이 운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일상 빌런 총량의 법칙을 지켜주기라도 하려는 듯 헬스장 가는 주차장에서 유쾌하지 않은 일들이 이어졌다.
헬스장에는 주차장이 없어서 근처 공영 주차장에 자주 차를 댔는데 그곳은 공간이 좁고 주차 경쟁도 있었다. 아침에 주차장에 도착하고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오른쪽에 차 한 대가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여자가 내 차 안을 보더니 창문을 두드렸다. 창문을 내렸다. 차 좀 똑바로 대주세요. 짜증이 섞인 채 거침없이 나오는 말이었다. 여자의 차는 내 차보다 컸고, 뒷좌석에는 카시트에 어린 아기가 타고 있었다. 아이도 내려야 하고 유모차도 내려야 하는데 문 열 공간이 좁으니 짜증이 나는 것 같았다. 우리 아이 어릴 적 혼자 차 태워 다닐 때의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웃으며 네, 라고 대답하니 여자가 조금은 머쓱한 듯 뒤로 물러났다. 차를 빼며 거울로 보니 내 차의 오른쪽 바퀴가 주차선에 닿아 있었다. 차를 왼쪽으로 붙여주었다. 대신 나는 문틈에 끼여서 게걸음으로 겨우 내려야 했다.
또 다른 날, 주차 후에 차에서 바로 내리지 않고 앉아 있었다. 차가 쿵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옆 차의 운전자가 문콕이 아니라 문쿵을 하고는 조금 당황해하며 내 차 문을 살펴보는 듯하더니 급히 어디론가 가버렸다. 차 안에 내가 앉아 있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어린 아들에게도 차에서 내릴 때 조심히 문을 열도록 하거나, 좁은 곳에서는 내가 열어준다. 혼자서 내리는 성인이 너무나 부주의하게 남의 물건을 상하게 하는 것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내려서 부르면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망설이는 사이에 사라졌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지. 마음이 바빴나 보다. 허비할 시간과 감정이 아까워서 잊어버리자고 생각했다. 나의 실수도 피해자에 의해서 그렇게 흘려보내졌던 기억을 떠올렸다. 내 차에는 선명한 문쿵 자국이 남았다.
금요일 아침이었다. 가뿐한 마음으로 주차장에 들어섰다. 내 뒤로 차 두 대가 따라오고 있었고, 주차 자리가 한 곳 남아있었다. 그 한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왼쪽으로 꺾었다가 오른쪽 후진으로 들어가야 했다. 운전 연수 코스로는 T자 형태의 코스라고 할까. 왼쪽으로 꺾은 뒤 오른쪽으로 후진하려고 보니 바로 뒤에 있던 차가 내 옆으로 작은 T를 그리며 잽싸게 그 자리에 들어가 주차했다. 갈 곳 잃은 내 차는 이중주차를 하거나 주차장을 나가서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 저 사람 너무 얌체 같은 거 아니야. 얌체를 다시 나오게 하고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불쾌함은 표현하고 싶었다. 창문을 내리고 얼굴을 내밀었다. 각도가 나오지 않아 그 차 운전자를 볼 수가 없었다. 아예 차에서 내려 그 차를 향해 섰다. 크고 무섭게 생긴 아저씨들만 차에서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적에게 몸집을 부풀리는 고양이처럼 가슴을 올리고 어깨를 뒤로 폈다. 어깨가 펴지니 눈에도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마침 아주 세 보이게 위아래로 검은색 옷도 입고 있었다. 그 차의 창문이 내려왔다. 남자가 얼굴을 내밀며 물었다. 여기 대실 거예요? 네, 제가 댈 거예요. 생각보다 순순한 질문에 김이 좀 빠졌다. 남자는 차를 빼고 다른 곳에 이중주차를 했고 나는 그 자리에 주차를 해서 늦지 않게 운동에 갈 수 있었다. 헬스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승리의 기쁨을 누려야 할지, 내가 좀 심했던 건지 자기 검열이 이어졌다. 가슴 운동을 하는 날이었다. 가슴 운동은 안 그래도 자세 잡고 힘주는 게 잘 안 되는데 집중이 안 됐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자기검열 엔진을 돌리면서 귀중한 헬스명상 시간을 뺏기고 있었다. 생각을 털어버리고 레슬링 심판이 승자의 손을 들어주듯 내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남과 갈등하기보다 나를 설득하거나 달래는 편히 간편하므로 나는 주로 쉬운 방법을 택했다. 기운 빼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부당한 일에 입을 다물었다. 그 방법이 나를 상처 받지 않도록 지켜주기도 했지만, 나를 존중하지 않는 선택이기도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거짓말이 쌓이면서 화살은 솔직하지 못한 나에게로 향하게 됐다. 넘어갈 수 있을 때와 대응해야 할 때, 그 사이에서 나를 해치지 않는 적정 점에 서는 것이 건강한 마음이 아닐까. 나의 감정과 행동을 선택하는 힘,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찾기 위해 당분간 전투력 상승에 힘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