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근육의 쓸모
아이의 여름방학에 친구 재인이네 모자와 우리 모자 넷이서 여행을 갔다. 아이는 태어나서 첫 해외여행이었고 나도 신혼여행 이후 첫 해외여행이었다. 다섯 시간 비행, 아이와 함께 하는 4박 5일의 여행을 떠나며 설레임도 있었지만 안전과 체력에 대한 걱정도 들었다.
첫날부터 코피를 쏟은 아이가 첫 해외여행의 힘든 일정을 잘 소화해 주는 것이 고맙고 대견했다. 마지막 날까지 무사히 일정을 소화하고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왔다. 티켓을 끊고 마지막으로 공항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서 버거와 감자튀김 세트를 샀다. 배불리 먹은 아이는 기분 좋게 벤치에 누웠다. 비행기 시간까지는 1시간 정도 남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잠에 빠져드는 아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공항 에어컨이 너무 세서 내 옷을 덮어주고 편히 자도록 했다. 비행기 시간이 됐다. 탑승 위치가 바뀌어서 좀 걸어가야 했다. 눈을 감은 채로 거의 울다시피 하며 걸어간 아이가 탑승구 앞에서 다시 누웠다. 비행기를 탈 시간이 됐다. 다시 깨울 자신이 없었다. 깨워서 그 짜증을 다 받아내느니 힘을 쓰기로 했다. 아이 가방과 내 가방을 양쪽 어깨에 하나씩 멨다. 탑승권과 여권은 청바지 뒷주머니에 꽂았다. 누운 아이를 의자 등받이에 기대에 앉혔다. 앉아서 자는 아이 앞에 등을 대고 쭈구리고 않아 아이 양쪽 팔을 어깨에 둘렀다. 바벨스쿼트 자세 준비가 됐다. 아이 몸무게는 28킬로다. 허리가 다치지 않게 복압을 주고, 엉덩이와 허벅지에 힘을 주며 일어났다. 맞은편 벤치에 앉아 있던 연륜있어 보이는 커플이 나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었다. 그 중 여자 분이 말했다. 엄마네. ‘엄마가 아니고 근육이에요.’ 아이를 업고 탑승구 앞에 가서 왼손으로 아이 엉덩이를 받치고 오른손으로 뒷주머니의 탑승권과 여권을 꺼냈다. 허리를 구부린채 탑승권 검사를 받고 나서 다시 두 손으로 아이 엉덩이를 받치고 비행기까지 걸었다. 자리를 찾아 아이를 등에서 내려놓았다.
아이와의 첫 해외여행에서 걱정했던 것은 안전과 체력 말고도 하나 더 있었다. 오래 앉아 있는 것이었다. 비행기와 버스에 오래 앉아 버텨야 할 허리가 걱정됐다. 걱정과 달리 내 허리는 여행 내내, 아이를 업고 스쿼트를 하고, 비행시간을 보내고도 아프지 않았다. 여행의 일정을 모두 소화하면서도 즐거운 나의 체력도 신선했지만 아프지 않은 허리를 발견하는 것도 기뻤다.
2016년 어느 주말 아침 눈을 떴는데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며칠 전부터 오른쪽 등허리가 욱신거리고 아팠는데 별 조치 없이 생활했다. 전날 좀 걸어다니고 훨씬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화장실조차 갈 수 없을 만큼 허리 통증이 심했다. 당황스럽고 무서워서 119에 전화를 걸었다. 들것에 실려 구급차에 타고 척추전문병원에 도착했다. 이동식 침대에 누운 채로 검사까지 긴급하게 이루어졌다. 검사가 끝나고 누운 채로 진료실에 들어가 담당의에게 요추 5번과 6번 사이 디스크돌출이라는 소견을 들었다. 바로 시술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입원실로 이동했다. 화장실에 갈 수 없어 소변줄을 꽂고 누웠다.
의사가 권하는 시술은 바늘구멍 정도의 구멍을 뚫고 들어가 척추의 신경을 누르고 있는 디스크를 밀어넣는 간단한 시술이라고 했다. 디스크가 나온 정도에 비해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나의 증상이 심했기 때문에 시술을 권했다. 신경마비로 인해 대소변 조절이 안 되는 정도는 아니라 그래도 아직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을 내릴 여유가 있었다. 담당의는 회진 때마다 시술에 대한 내 의사를 물었다. 아무리 작은 구멍이라도 구멍은 구멍이라 몸에 구멍을 뚫는 것이 망설여졌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고 결정하고 싶었다. 의사와 주변인들 모두 왜 시술을 안 하느냐고 했다. 아무도 동의해 주지 않는 결정을 하고 낯선 병실에 누워 보름간의 낮과 밤을 보냈다. 의사의 말을 듣지 않는 환자에게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은 간단한 물리치료와 통증주사를 몇 번 놔 주는 일 뿐이었다. 통증주사실은 병원의 지하에 있었다. 이동식 침대에 누운 채로 이동해서 몸만 겨우 옆으로 돌려 주사를 맞았다. 옆에서 보조하던 간호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통증전문 의사선생님이 궁금했던 걸 물었다. 보통 이렇게 아프면 병원에서 권하는 대로 하는데 어째서 시술을 받지 않느냐는 거였다. 몸에 구멍을 뚫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걸 좀 해보다가 그래도 안 되면 최후에 선택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잘 생각한 거라고 했다. 의외의 대답이었지만 외롭고 무서웠던 나에겐 그 말이 동아줄이라도 되는냥 붙잡고 싶었다. 의사선생님은 자기가 놔주는 주사의 효과는 대략 3개월 정도 된다고, 약의 힘을 빌어 걷기를 하면서 허리의 힘을 키우는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퇴원을 하고 통원으로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면서 걷기 운동을 조심스럽게 지속했다. 첫 이주는 양말 신는 것조차 혼자 할 수 없었고 누워 자려고 할 때마다 기분 나쁜 방사통도 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졌고, 운동치료를 다니면서 허리 근력을 키우는 방법도 배웠다. 다음 해에 임신을 하고 만삭이 되어도 조금씩 허리가 아픈 것 말고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허리가 아팠던 이야기를 헬스선생님에게 간단히 했었다. 선생님이 허리가 괜찮은지 유독 신경을 쓰며 물어보는 종목이 데드리프트였다. 병의 전적이 있는데다 아무래도 고중량을 다루면서 허리도 굽혀야 하는 운동이다 보니 그랬다. 루마니안데드리프트의 중량이 70kg이 됐을 때 선생님이 정말 허리가 하나도 안 아픈지 물었다. 항상 허리를 염려하며 조심스럽게 운동을 했지만 통증은 없었다. 점진적으로 운동의 강도를 높이며 운동한 것이 스미듯 허리 근육을 강화했나보다. 선생님이 말했다. 허리 아팠었다고 아무도 생각 못하겠어요.
<운동하는 사피엔스(대니얼 리버먼, 왕수민 옮김, 2024, 프시케의 숲, 131면)>에서는 앉기의 해로움에 대해 얘기하면서 요통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허리 힘이 강해 피로에 더 잘 저항하는 근육들이 형성돼 있느냐가 요통을 피할 수 있는지 여부를 알려주는 가장 훌륭한 지표이다. 피로에 잘 저항하는 강한 허리를 가진 사람은 더 나은 자세를 취한 가능성도 높다.
병원에 누워있을 때 담당의는 회진 때 내 상태를 볼 때마다 고개를 갸웃했었다. 발바닥을 도구로 때려보고 나의 반응을 살피고 하면서 신경이 살아있고 상태가 심한 것 같지 않은데 왜 움직이지를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누워서 꼼짝 못 하던 나는 안 그래도 답답한데 의사까지 나를 답답하게 보니 정말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남편과 아이와 함께 집 근처 하천길을 산책할 때였다. 돌다리에 서서 놀고 있는 아이를 들어 올리려던 남편이 순간 쓰러지면서 허리를 부여잡았다. 내 기억이 떠올라 구급차를 불러야 하나 하는데 남편이 일어났다. 타고 왔던 차는 남편이 운전할 수가 없어 내가 운전하고 남편은 한참을 걸려 집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며칠을 누워서 지내더니 어느새 털고 일어나 일상생활을 했다. 나와 달리 빠르게 회복했던 남편을 보니 병원에 누웠던 당시의 내가 왜 병증에 비해 심한 증상을 보였는지 알 것 같았다. 통증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움직일 수 있었고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근육의 유무 차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