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다면 운동

3장. 근육의 쓸모

by Jamie




단편소설집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이기호, 2016, 마음산책> 안에는 <아내의 방>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부터 베란다를 방으로 삼아 지내던 아내가 갑자기 사라졌다. 식사를 마치고 식구들은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고, 남편은 아내가 베란다에서 베란다 유리창에 비친 티비화면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가족과 함께 있다고 생각했던 아내가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집안 어디에도 없었고, 베란다 밖으로 떨어져 있지도 않았다. 사라진 아내가 어디에 갔는지 알 수 없는 채로 이야기가 끝난다. 아내는 왜 하필 베란다에 머물렀을까. 집 밖으로 떠나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저 머무를 수도 없었던 아내가 그 둘 사이에서 찾은 해방구였을까.

우리집 싱크대 앞에는 작은 창문이 있다. 설거지하려고 서면 그 창문 앞에 서게 된다. 설거지하다가 창밖을 바라보면 이대로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침실에 누워있는 아기가 생각나면 어디에도 가버릴 수 없는 처지에 싱크대 앞에서 오도 가도 못했다. 그 시절 그런 생각은 유독 설거지거리가 쌓여있는 싱크대 앞에서 떠올랐다. 설거지만 하면 마음이 부정적으로 흐르는 것 같아 아이 낳고 1년쯤 지나 6인용 식기세척기를 한 대 샀다. 설거지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설거지에서 완전히 해방되지는 않았다. 다른 집안일도 좋은 건 아니지만 설거지를 대하는 감정과는 달랐다. 다른 집안일과 설거지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생각하니 설거지는 정적이고 조심스러워야 하는 일이고 다른 집안일은 비교적 동적이라는 거다. 나는 내 생각보다 동적이고 에너지가 높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

삶을 유지하는 기본적인 가사노동은 불가피하다. 먹고 살기 위한 장보기, 요리하기와 설거지하기, 깨끗한 환경에서 지내기 위한 각종 청소와 정리, 쓰레기 처리, 말끔한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빨래하기 등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일들이 매일 반복된다. 이것들이 인간 생활의 기반인 의식주를 유지해 주고 우리 가족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기초가 된다. 이렇게 거창한 의미를 가지고 종종 귀찮게 여겨지는 집안일 중에서 나는 먹고 사는 일이 제일 어렵다. 먹고 사는 일을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 꽤 길다는 걸 알게 된 후, 누가 한 끼 해결해 주는 일이 아주 고마운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한 끼 해결은 하루의 짐을 크게 덜어준다. 어머니의 한 끼 집밥, 밖에서 사 먹는 한 끼 외식, 맛있고 깔끔한 반찬을 제공하는 가게가 고마울 때가 많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장을 보고, 식자재를 정리하고, 씻고, 다듬고, 요리하고, 맛을 내고, 차려내고, 뒷정리하고, 설거지하고, 남은 것을 보관하거나 처리하는 대장정을 거친다. 그 모든 일을 질서 있게 해내면서도 동시에 창의성을 발휘하여 메뉴를 정하고 어떤 맛을 낼지 결정해야 한다. 그 과정의 결과물로 가족의 입맛을 만족시키지 못할 때면 슬퍼지곤 했다.

식생활의 시작은 식재료를 사는 것이다. 현명하고 건강한 소비를 위해 생각해야 할 것은 많다. 계획성 있게 소비해야 하고 계절 식재료도 자주 접하도록 해주면 좋겠다 싶다. 어떤 제품이 첨가물이 덜 들어가는지 살피기도 하고, 원산지도 본다. 가격 대비 용량은 어떤지도 따져본다면 어쩐지 더 현명한 주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마트에 더 오래 머문다. 치열한 두뇌 회전 끝에 장바구니를 보람차게 채웠다면 이제 육체를 써야 할 차례다. 장보기는 정신과 육체의 종합예술이었다. 장바구니를 바닥에 두고 물건을 계산대에 올린다. 물건을 계산대에 올려두기 위해 허리를 여러 번 굽혔다 펴야 한다. 허리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자세를 잡는다. 스쿼트 자세도 좋지만 남들이 보기에 좀 볼썽사나울 수 있으므로 스티프레그드데드리프트(이하, 스티프)를 선택한다. 스티프는 하체 뒤쪽을 단련하는 운동이다. 레그컬이 햄스트링을 수축하며 강화하는 운동이라면 스티프는 이완하며 강화하는 운동으로 두 가지를 함께 운동하면 다리 뒤쪽이 길고 단단해질 수 있다. 골반을 접은 채(힙힌지) 발의 뒤쪽에 무게를 싣고 엉덩이를 최대한 위로 올리고 허리가 구부러지지 않게 하는 것이 기본자세다. 그 상태에서 상체를 내렸다가 들었다가 하며 햄스트링과 엉덩이를 단련한다. 장바구니에 있던 물건을 계산하는 짧은 시간에 그동안 배운 운동지식이 머리를 빠르게 스친다. 장바구니에 있는 물건들을 꺼내어 계산대에 올리고 다시 장바구니로 몸을 숙이는 동작은 스티프를 적용하기에 딱 알맞다. 한 번에 두 개를 꺼내서 올려도 되는데 한 개씩만 올리면서 개수를 늘려 운동할 수도 있다. 운동 틈새 보충이라고 생각하니 뿌듯하기 이를 데 없다.

집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장 본 것을 꺼내 들었다. 오른손을 많이 쓰기 때문에 이럴 때는 의도적으로 왼손에 짐을 든다. 오른손에 들고 이동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빠르고 힘도 덜 들지만 신체의 고른 발달을 위해 효율성을 포기한다. 짐을 들 때는 팔과 어깨뿐만 아니라 광배도 개입할 수 있도록 가슴을 올리고 어깨를 내린다. 광배에 단단하게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몸이 기울지 않도록 배와 허리도 위로 뽑아 올리면서 힘을 주고 엘리베이터까지 걸어간다. 짐이 많이 무겁지 않을 땐 빨리 도착하는 엘리베이터가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집안일을 하며 틈새 운동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근육 형성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모르겠다. 나쁜 자세로 생활하고 일하며 부상을 당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 정도가 될 것이다. 그래도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틈새운동이 모여 근육도 조금씩 쌓일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설거지에서는 효과적인 운동의 맥락을 찾지 못했다. 언젠간 설거지에서 정신승리를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승리가 좋긴 하지만 독식하기 보다는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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