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근육의 쓸모
7살에 목욕탕 냉탕에 들어갔다가 꼬르륵 가라앉았다. 엄마와 언니들과 함께 갔는데 왜 혼자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혼자 허우적대다가 벽을 잡고 살아서 나왔는데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때수건을 들고 제 할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황당한 얼굴로 냉탕 밖에 서있던 내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가 자란 제주도는 학교 체육 시간에 수영 시험이 있었다. 수영 시험을 대비하러 아빠와 수영장에 갔던 기억이 있다. 아빠가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했지만 물이 겁나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친구들과 수영장에 놀러 간 적도 있다. 물속에서 기교에 가까운 동작을 보여주던 친구 S가 기억난다. 그 친구를 쳐다보며 물 밖에서 노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수영 시험 모두 물에 들어갔다가 그냥 나와서 기본점수만 받았다.
수영을 배우고 싶어진 건 20대 후반 여행을 다니면서부터였다. 필리핀 카모테스섬에서 머물던 숙소에는 바다와 이어진 수영장이 있었다. 탁 트인 인피니티 풀에서 몸에는 어린이용 튜브를 끼고 물에 떠서 바라보던 하늘과 바다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뜨거운 햇살 아래 공놀이를 하고, 튜브에 의지하는 신세였지만 물에 누워서 시골 밤하늘에 촘촘히 떠 있는 별을 보기도 했다. 뒤늦게 물놀이의 재미를 알게 돼 친구들이 가는 대로 스노클링, 호핑투어, 동굴수영, 래프팅 같은 것들을 하러 따라다녔다. 물에서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는 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마음도 자유로워질 것 같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수영 강습받을 곳을 찾아보니 집에서 차를 타고 1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차가 없어 버스를 타고 가기도 하고 동행하는 친구들의 차를 얻어 타고 가기도 했다. 물속에서의 자유를 위해 퇴근 이후의 시간과 가끔은 주말 시간까지 투자했지만 실력이 빨리 늘지 않았다. 여전히 물이 무서웠고, 숨이 차서 25미터 길이를 한 번에 가지 못했다. 언제나 반에서 가장 뒷자리를 맡아 선두에 선 사람과 한바퀴에서 두 바퀴 차이를 두고 따라다녔다. 중급반에서 평영을 배울 때는 어쩐 일인지 몸이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다. 선생님은 나보고 몸이 뻣뻣하다며 다음 시간에 올 땐 식초를 한 병 마시고 오라고도 했다. 그래도 물에 떠서 움직이는 내 몸이 신기할 뿐이었다. 구박은 괜찮았지만 늘지 않는 실력이 나를 지치게 했다. 추운 겨울이 되면서 물속에서의 자유로움을 얻지 못하고 수영을 그만뒀다.
그다음 해, 친구들과 네 명이 라오스에 배낭여행을 갔다. 당시 유행했던 꽃보다 청춘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라오스 편을 보고 여행을 계획했다. 루앙프라방의 꽝시폭포는 폭포와 웅덩이와 주변의 자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곳이다. 청춘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안전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는 것도 잊은 채 6개월간 배운 수영실력만 믿고 물에 들어갔다. 물이 허리까지 오는 곳까지 걸어 들어갔다. 물 깊이가 깊지 않다고 생각하고 준비해 간 물안경을 끼고 물에 몸을 띄웠다. 폭포 웅덩이에서 물안경은 무용지물이란 것을 깨닫자마자 몸을 일으켜 서려고 했다. 발이 닿지 않았다. 내 자유형 실력으론 살아 나갈 수 없을 것 같아 눈을 꼭 감은 채 뒤로 누워 발을 찼다. 살아서 밖으로 나왔다.
위험한 순간을 겪고도 여행지에서 물이 있는 곳을 만나면 수영을 시도했다. 물안경은 필수였다. 물놀이마다 물안경을 챙기고 수영하는 건 번거롭기도 하고 실용적이지도 않았다. 수영장에 갈 때마다 고개를 내밀고 수영을 할 수 있다면 물에 오래 떠서 놀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마음과 달리 고개를 빼고 수영을 해보려고 할 때 마다 몸이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아이와 함께 간 첫 해외여행지인 베트남 숙소에도 수영장이 있었다. 아이 노는 동안 얼굴 내밀고 하는 수영을 시도했는데 가라앉지 않고 앞으로 죽 나갔다. 팔다리에 붙은 근육의 힘이 수영에서도 쓸모를 발휘했나 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열심히 팔과 다리를 저었다. 열심히만 하지 않고 느긋하고 커다랗게 저었다. 아등바등할 때 보다 훨씬 멀리 나갔다. 재미가 붙어 여기서도 출발해 보고 저기서도 출발해 보고 목적지를 바꿔가며 크지 않은 수영장을 알차게 활용했다. 안 되던 것이 일순간 터득되는 기쁨을 오랜만에 느꼈다. 술래잡기 마니아인 아들은 물에서도 술래잡기를 하자고 한다. 얼굴을 내밀고 수영을 할 수 있게 되니 아이와 수영장에서 술래잡기하기도 편해졌다. 개구리헤엄을 터득한 기쁨에 끝없는 술래잡기마저 즐거웠다.
<운동하는 사피엔스>에는 운동이 습관이 되지 않아 마음이 괴로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이 나온다. 운동이 습관이 안 되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그렇게 되기 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몸을 안 움직이거나 몸이 부실해지게 진화한 적이 없다. 신체활동의 보상을 느끼고 그것을 습관화하는 적응이 이뤄지려면 먼저 몇 개월 노력 끝에 튼튼한 몸부터 만들어야 한다. 불편하고 보상도 없어서 운동 자체를 안 하게 되는 부정적 피드백 고리에서, 운동에서 점점 만족감을 느끼는 긍정적 피드백 고리로 넘어가는 일은 차츰 진행되는 더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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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목욕탕에서부터 30년쯤 걸쳐 수영을 배운 셈이다. 거의 생에 걸쳐 배웠는데 아직도 초보수준이다. 어릴 적 처음 물의 위험을 맛보고, 긴 시간 도피했다. 마음을 열어 준 것은 수영 시험도 아니고, 아빠도 아니고, 물 속에서 멋진 기술을 보여준 친구도 아니었다. 물속에서 느꼈던 재미와 호기심 때문에 물에 마음을 열었다. 그때 내 옆에는 나를 알아주는 좋은 사람들이 있었고, 마음 나누고 웃는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물에서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해 준 것이 열린 마음은 아니었다. 결국은 힘 세진 나의 팔다리였다. 한 발짝 딛도록 하는 것은 아이를 부르는 엄마의 웃는 얼굴이지만 계속 걷게 하는 것은 넘어져도 자꾸 걸으며 힘 세진 아이의 다리이다. 성공으로 가는 첫 단계는 즐기는 마음이고 두 번째는 계속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