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캐가 되고 싶어

3장. 근육의 쓸모

by Jamie




가을 환절기가 되면 신체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진다. 최근 몇 개월 그 어느 때보다 운동을 열심히 했으니 그냥 지나가려나 기대했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감기로 가을을 맞이했다. 운동도 안 가고 골골하며 집에 있던 삼일 차에 기영이의 전화가 왔다. 강철부대 여군편이 재미있다고 보라고 추천했다. 보다보면 기운이 날거라고 했다. 강철부대는 밀리터리 서바이벌 예능이다. 주어진 미션을 치르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부대가 최고의 강철부대가 된다. 참가 부대는 6개로 육군, 해군, 해병대, 707, 특전사, 특수임무대가 있고, 부대별 인원은 4명이다. 참가 부대별로 구호가 다르다. 707 부대의 구호는 행동으로 논리를 대변하고, 결과로서 과정을 입증한다, 이다. 한치의 변명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멋지고 날카로웠다. 특수임무대(특임대)의 살아 방패, 죽어 충성은 순수하고도 비장하게 들렸다. 저들의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과는 완전히 달라보였다. 본 대결에 앞서 6개의 부대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부대 사이의 신경전과 탐색전, 설전이 오가며 긴장감이 높아졌고 보는 사람의 기대감도 높아졌다. 각자 자기 부대가 우승할 거라는 확신을 보였다. 겸손보다는 자신감을 보이는 것이 경쟁에 임할 때 더 유리한 자세인가보다. 저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호기심이 생겼다.

외줄오르기, 참호격투, 기동타격 경기들을 하나씩 치러나갔다. 힘든 경기를 치르면서 참가자들의 성격이 드러났다. 각자가 가진 캐릭터가 다 다르면서도 매력이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해병대 대원 중에 모든 사람의 눈에 띄는 캐릭터가 하나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체격이 좋은데 실제 힘도 셌고 속도도 빠르고 지구력도 높았다. 저 정도의 여자 힘캐(힘 쎈 캐릭터)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얕은 물이 있는 경기장에서 상대 팀을 경기장 밖으로 끌어내면 이기는 경기인 참호격투경기에서 통나무, 코끼리, 멧돼지 같은 힘 좋은 것들은 다 별명으로 얻었다. 망치로 석벽을 뚫고 남들이 고군분투하며 여는 철창문을 한 번의 발차기로 넘겼다. 무거운 군장도 웃으며 들고 이동하면서 대원들의 사기를 돋우는 역할까지 했다. 부대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저 사람에게 웬만한 일은 어려울 게 없겠다 싶었다.

풀린 눈으로 누워서 시청하다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보는 내가 다 긴장이 돼서 누워서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잠시 경기의 긴장감이 느슨해진 틈에 밥을 챙겨 먹고 청소도 했다. 여군들의 강인함과 넘치는 파이팅이 화면 밖으로 나와 나에게도 전해졌다. 극한의 힘듦을 이겨내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덩달이 전투적인 자세가 됐다. 아직 기력이 다 회복되지 않았지만 내일은 운동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강철부대W의 에피소드가 나올 때마다 하나씩 챙겨 봤다. 내 운동의 목표는 좋은 체력이었는데 힘이 세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에게 힘이 세지고 싶다고 하니 여자들은 근육이 탄탄한 몸까지는 바래도 힘이 세지고 싶다고는 잘 안 한다고 했다. 어려운 일에 도움 청하고 도움 받으며 사는 것이 세상살이지만 내 힘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많으면 사는게 편하고 자신감도 있을 것 같다.

운동하고 집에 와서 밥통에 한 그릇 남은 밥을 먹었다. 저녁에 가족이 먹을 밥을 짓고 나니 쌀통도 텅 비었다. 스마트폰으로 온라인마켓에 접속했다. 몇 킬로를 주문해야 하나. 지금껏 4킬로를 주로 사서 먹었다. 보관이 쉽다는 건 표면적인 이유이고 가볍기 때문이다. 10킬로를 사면 용량 대비 가격이 더 싸다. 현명한 소비를 하는 경제인이라면 10킬로나 20킬로를 사야겠지만 무거운 쌀가마니를 들면서 힘을 빼고 싶지 않았다. 이번엔 10kg 쌀 한 가마니를 주문했다.

다음 날 아침, 쌀이 도착했다. 아침 운동을 다녀와 가마니를 쳐다보며 고민했다. 바가지로 퍼서 옮겨 담을까. 방금 전 헬스장에서 들고 운동한 덤벨 무게를 생각하니 고민이 짧게 끝났다. 가마니를 들어 올려 쌀통에 부었다. 쌀이 쌀통에 들어갈수록 가마니가 가벼워지고 오래 걸리지 않아 쌀을 쌀통에 담는 일이 끝났다. 가뿐한 마음으로 새 쌀로 밥을 짓고 점심도 맛있게 먹었다. 운동의 효과를 밥 짓는 데서 찾았다.

힘쓰는 일에서 유독 자신이 없는 일이 유리병 뚜껑 열기다. 토마토파스타가 먹고 싶어 토마토소스 유리병을 열어야 하는데 열지 못해 결국 다른 것을 먹어야 했다. 아이가 유자차를 먹고 싶다고 했다. 유자차 뚜껑을 못 열어서 마실 수 없었다. 운동을 배우는 초반에 상체 운동을 하면서 중간에 자주 쉬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전완근과 손가락 힘이 약했기 때문이다. 어깨운동인 사이드레터럴레이즈를 하는데 전완근이 아파서 쉬어야 했고, 등운동인 랫풀다운을 하는데도 그랬다. 데드리프트를 하는데 바를 잡고 더 버틸 수가 없어서 바를 내려놓기도 했다. 지금은 내가 다루는 무게에서는 전완근이 힘들어서 중단하는 일은 없다. 팔 힘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유리병뚜껑을 열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열리지 않았다. 다음 날 선생님에게 가서 전완근은 어떻게 세질 수 있는지 물었다. 어려워 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해보니 몇 개 하지도 않았는데 힘들었다. 팔 운동을 하는데 승모도 뻐근했다. 역시 직접 해보지 않고 남이 하는 것을 보고 쉽다고 여기면 안 되는 거다. 굵고 단단한 전완근이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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