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를 더한 하루

3장. 근육의 쓸모

by Jamie



수요일엔 등운동을 한다. 첫 종목으로 데드리프트를 했다. 지난번 선생님이 내려갈 때 무릎을 좀 구부려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해봤다. 자세도 편하고 운동도 더 많이 됐다. 일어설 때 하체에 힘을 주고 일어나야 한다. 상체 운동이지만 하체의 힘도 따라줘야지 더 효과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다. 자리를 이동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바벨로우를 이어서 했다. 원판을 다 빼고 빈 바 20킬로를 들었다. 60킬로를 들었던 직후라 너무 가볍게 느껴졌다. 상체를 숙이고 자신 있게 자세를 잡았다. 자세를 잡았으니 그 상태에서 팔꿈치만 접었다 폈다 하면 되는데 팔꿈치가 내 마음같이 올라오지 않는다. 참 간단해 보이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답답하다. 롱풀로 옮겼다. 평소에 잡던 것과 다른 와이드 그립으로 바꿔 했다. 와이드그립을 하면 내로우그립 보다 여러 근육을 쓸 수 있기 때문에 힘을 쓰기가 더 수월하지만 그립 잡는 방식 때문에 손목이나 전완근이 내로우보다 힘들 수 있다. 25킬로에도 전완근은 무사했다. 힘이 늘었나보다. 마지막은 정말 무게가 늘지 않는 종목 랫풀다운이다. 그래도 처음 운동하던 때를 생각하면 25킬로를 15회 하는 건 많은 발전이다. 마지막에 힘이 빠져 거의 힘을 주지 않고 당겼는데도 바가 내려오는 순간들이 있었다. 선생님의 도움이었지만, 성취감은 내 것인 것으로 한다.

운동을 마치고 근처 마트로 향했다. 장 볼 것이 있는 날은 마트에 주차해 놓고 운동을 갔다가 마치면 장을 보고 집으로 온다. 운동 갈 때랑 다르게 운동을 마치고 마트로 가는 길에는 걷는 발걸음과 등허리에 힘이 느껴졌다. 바른자세로 걷는 기분이 좋다. 어떤 근육이 중요하지 않을까만은 바른자세를 잡는데 등근육은 정말 중요해 보인다.

마트 문을 들어서면 가장 앞에 보이는 곳이 과일야채 코너다. 입구의 작은 장바구니를 끌고 과일 쪽을 향해 걸어가는데 가까이 배추 코너에서 한 여자어르신이 뭔가 말씀하셨다. 방향을 보니 나한테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배추가 너무 싸서. 어르신의 한 손이 배추 더미 위에 올라가 있고 한 손은 본인이 집에서 끌고 온 장바구니에 올라가 있다. 배추가 싸다는 말과 양 손의 위치만 보고도 어르신이 뭘 원하시는지 알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갔다. 배추가 너무 싸. 6,800원이다. 이거 여기 옮겨드릴까요? 묻는 말에 대답하는 대신 다시 한 번 배추가 너무 싼데 무겁다고 말씀하셨다. 김장하시게요? 아니 너무 싸서 그냥 사다놓으려고. 커다란 배추 세 개가 한 망에 들어있었다. 들어보니 커다란 크기에 비해 무게는 영 가벼웠다. 가뿐하게 들린다. 어구, 이게 무거우셨어요? 더 넣어드릴까요? 한 망을 더 넣어드릴까 하고 보니 어르신이 끌고 오신 개인 장바구니가 이미 거의 다 차서 공간이 여의치 않아 보였다. 고민하는 듯 별 말씀 없으신 어르신에게 돌아서서 내 장을 보며 점점 어르신과 멀어지고 있었다.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어르신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나를 보고 계셨으니 나한테 하시는 말씀이다. 아까보다 목소리만 더 높아지셨다. 배추가 너무 싸서. 결심이 서신 모양이다. 다시 가서 한 개를 더 올려드렸다. 장바구니가 작아 잘 안 들어가서 최대한 떨어지지 않게 끼워 드렸다. 이렇게 많은 배추를 누구한테 요리해 주시려고 그러나. 아휴, 딸 같다. 고마워. 이제야 만족하신 어르신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고마움을 표현하시곤 장바구니를 끌고 계산하러 가셨다. 계산하러 가서도 배추가 너무 싸다는 말씀을 하셨다. 저걸 끌고 어디까지 가시려나. 집에 가면 집 안까지 들어다 줄 사람은 있을까. 6,800원짜리 배추가 오늘 다 나갈 것 같지 않은데 내일 또 오셔서 사시라고 할 걸 그랬다.

어르신은 연세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나보다 키와 체격이 크셨고 얼굴과 몸이 정정해 보이셨다. 무거워 보이는 것을 아예 들어볼 시도조차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어쩌면 본인의 허리를 아끼겠다는 의지와 화려한 언변(?)에 나는 이용당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면 좀 어떤가. 어르신의 귀여운 응석을 받아 줄 힘이 나에게 있는 걸. 자세를 바로 잡고 배꼽에 잠깐 힘주고 움직이면 해결되는 일이다. 이제 나는 힘 세고 파릇한 젊은이들보다 배추가 무거운 어르신에 더 가까운 나이가 됐다. 그래도 아직은 귀여운 어르신을 도울 수 있으니 쓸모를 하나 더 한 하루다.

장본 바구니를 끌고 계산대에 갔다. 회원번호를 누르니 안녕하세요, VIP회원님, 하고 기계가 인사해 준다. 주차 때문에 마트를 자주 이용하다 보니 실적이 쌓였나 보다. 운동 덕분에 마트에서 VIP도 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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