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근육이 준 자유
헬스장의 공간이 크지 않아 같은 시간대에 오는 사람들의 운동스타일을 대강 알게 됐다. 운동을 아주 세게 하는 40대로 보이는 남자분이 하나 있었다. 아침 시간에 저렇게 운동을 하고 이후 일과를 할 수 있을까 싶은 정도로 운동을 했는데 나의 우려와 상관없이 샤워 후 헬스장을 나설 때면 아주 가뿐한 모습으로 떠나곤 했다. 벤치에서 덤벨체스트프레스 하는데 대각선 가까이에서 운동을 하던 그 사람이 오늘도 아주 지친 모습으로 앉아 쉬고 있었다. 그 사람 앞에 아버지 모습이 겹쳤다. 아버지가 떠나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뜬금없이 아무한테 아버지 모습이 겹치곤 했다. 아버지는 연세에 비해 몸이 탄탄한 근육질에 배도 나오지 않았다. 암 진단 받기 전 이상하게 힘이 없다는 말씀을 하시기 전까지 꾸준히 운동을 하셨다. 건강관리와 어느 정도의 자기 만족도 있었겠지만 지금 돌아보니 아버지의 운동에는 어떤 필사적 느낌이 있었다. 힘든 운동을 해내고 나면 이후에는 사는 일이 가뿐해 지기라도 했을까. 그 속을 이제는 알 길이 없지만 어깨에 올려진 삶에 비하면 덤벨 무게쯤이야 못 들어올리랴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거울 앞에 서서 운동하던 아버지 표정은 괴롭기보다는 즐거웠던 것 같기도 하다. 생각이 더 가기 전에 쉬는 시간이 끝났다. 나도 다시 덤벨을 들어 올렸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친 목소리였지만 마침 전화 잘했다는 반가운 기색이었다. 심난한 일들에 겹쳐 요즘 딸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드시는가 보다. 엄마가 결혼한 시절은 남아선호가 심했다. 엄마는 딸을 셋 낳고 시집살이와 마음고생이 심하셨다. 게다가 그때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를 정부가 내세우던 시절이라 아이를 셋 키우는 것에 대한 혜택도 전혀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다고 회상하셨다. 그런데도 엄마는 평생 딸 셋 낳은 것을 제일 잘했다고 말해오셨다. 그런 엄마가 나 자식 하나만 낳을 걸, 하고 후회를 하셨다. 나이 칠십에 이제 와서 자식 낳은 거 후회하냐, 이래서 인생 끝까지 살아봐야 안다며 웃으니 엄마도 웃으신다. 이어지던 대화를 마무리하며 엄마가 어르신들의 단골멘트를 하셨다. 내가 남으면 얼마나 남았겠냐. 엄마,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지. 손주 보러도 자주 오시고. 나는 오래 살고 싶어. 사는 거 힘들기도 하고 이꼴저꼴 보기도 해야 하지만 그것 자체가 사는 재미인 것 같아.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 나왔고 그 말이 곧 내 생각이 됐다. 그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어려운 인생을 인정하고, 그것에 힘들어하는 나 자신도 인정하고, 마주하고 이기기도, 안고 가기도, 그러다 주저앉아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 아픔도 슬픔도 그 결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도 내가 선택하겠다는 기백. 나를 나로서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의지. 이런 것들이 마음 속에 작은 점을 찍었다.
전화를 끊고 거실에 있는 어항을 들여다봤다. 어항 안에 있는 각 생명들의 특징을 관찰하고 한 어항에 사는 물고기들끼리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어 어항 앞에 있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보게 된다. 어항 속에 작은 우주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지지고 볶고 사랑하며 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마치 조물주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면서 착한 놈도 조금 못된 놈도 귀여워 보이고 그들의 생존방식을 응원하게 된다.
아들은 키우고 싶은 것이 아주 많다. 아이가 뭔가를 집에서 키우자고 할 때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우리 세 식구 생명 유지하기도 힘들다고 거절한다. 그래도 매번 거절할 수 없어서 여러 생명이 우리 집을 거쳐 갔다. 할아버지가 키우시는 배추에 살던 달팽이는 몇 마리 데려와 키우다가 보내주었고, 복숭아나무에 붙어 있던 장수풍뎅이 몇 마리도 우리집을 거쳐 갔다. 알로 왔던 배추흰나비는 나비가 되어 날아갔고, 집에서 키우던 토마토가 열매도 맺어보지 못하고 시들어 죽었다는 나의 판정을 들은 날은 서글프게 울었다. 그리고 최근 키우고 싶다고 한 것이 물고기다. 열대어 구피의 치어를 일곱 마리 분양 받아 아들에게 밥 주는 것을 전담시켰지만 어느새 내가 밥도 주고 물도 갈아주며 키우고 있었다. 키우고 보살피다 보니 정이 가고 사랑스러웠다. 어항을 큰 것으로 바꾸며 물고기들을 옮기고 수초를 넣어주었다. 물 온도를 맞추기 위해 히터도 달고 여과기도 달아주었다. 열대어의 특성에 맞게 온도와 환경을 맞춰주자 종족 번식을 하기 시작했다. 새끼 구피들이 태어난 날 아침 우리 집 세 식구는 새끼들을 건져내어 다른 곳으로 옮겨주느라 바빴다. 새끼들이 귀여웠고 출산한 어미도 장했다. 새 생명들이 태어난 것이 기뻐서 우리 가족이 어항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잘 자라주어 우리 가족의 기쁨이 되었다. 매일 자라고 있는 아이는 스스로 성장하는 데에도 힘이 많이 들 것인데, 다른 생명들을 키우려는 마음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궁금했었다. 아이 안에 있는 넘치는 사랑이 만드는 힘일까.
친한 동생 영지를 만났다. 서로 근황을 전하다 엄마랑 대화한 얘기를 하며 웃었다. 그리고 전에 하지 않던 생각을 하는 내가 좀 변한 거 같다고 말했다. 언니는 계속 성장하는 거 같아요. 영지는 나의 좋은 점만 찾아서 말해주는 칭찬봇이다. 그걸 알면서 들어도 기분이 좋게 하는 것이 영지의 능력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성장하며 존재한다. 성장 욕구는 삶의 원동력이지만, 성장에는 성장통도 따른다. 알에서 깨고 나와야, 허물에서 벗어나야, 손에 있던 것을 놓고 새로운 것을 잡아야 자라고 변화한다. 깨고, 벗고, 놓는 것은 아프고 두렵다. 그러니 아프고 두렵고 고민하고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겪는 것들이 나의 성장과정이라고 생각하니 나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나를 향한 인정과 사랑의 시선이 나를 다음 단계의 욕구로 나아가게 했다. 나를 키우고 싶어졌다. 관심주고 돌보며 자라나게 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