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근육이 준 자유
나보다 훨씬 이전에 헬스를 시작한 친구가 종종 헬스를 해보라고 권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었다. 친구가 헬스를 하면 내 모습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찾아서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보여준 사진 속 모습은 내 상상 속의 이상적인 몸과 격차가 있었다. 근육이 불끈했고 “튼튼”해 보였다. 당시 내 미적 지향에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 사진 옆에 있는 늘씬한 몸을 가진 여자가 좋아보였다. 늘씬하고 말라보이는 몸. 그런데 친구는 한사코 처음 사진의 여자가 나와 더 가깝다고 했다. 그러니 내가 헬스를 시작할 리 없었다.
타고나기를 하체가 튼튼한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 체형이다. 엄마를 닮아 그렇다고 말하면 엄마는 항상 그게 나이 들어서 얼마나 좋은데, 엄마한테 고마운 줄 알아라, 하셨다. 엉덩이가 작아 보였으면 하는 마음에 차라리 허리가 굵어지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하늘은 허리가 굵어지는 소원은 머지않은 미래에 쉽게 들어주셨다. 막상 소원이 이루어지고 나니 소원은 함부로 비는 게 아니었다. 다시 허리를 되찾고 싶었지만, 허리는 호락호락하게 돌아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교실 창가에 서서 친구와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여름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친구가 내 팔을 보고 굵다고 했다. 그리 좋은 뉘앙스로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팔은 가느다란 것이 예쁜 것이라는 걸 그때 처음 미의 기준으로 삼게 됐다. 외모에 대해 처음으로 친구에게 평가를 받은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놀이터에서 같이 뛰어놀던 친구가 내 다리를 보고 굵다고 했다. 외모에 관심이 없고 미적 기준이 전혀 서 있지 않았던 나에게는 또래의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것 자체가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 일이 기억에 남는 일로 다가왔던 건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나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시작하던 시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외모에 대한 평가를 받은 경험은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특히 자아상을 형성하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그리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잘나면 잘난대로 못나면 못난대로 타인의 평가에 갇혀 자신의 모습을 타인의 눈으로 바라보고 평가에 갇혀 행동하게 된다. 어른들이 쉽게 아이들을 보고 얼굴, 체형, 키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볼 때면 그리 달갑지 않다.
헬스를 하면서 선생님에게 내가 힘이 센 편이라는 말과 어깨가 강점이라는 말을 들었다. 강점인 어깨를 살려 어깨 운동을 더 강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여자도 남자와 근육은 같기 때문에 특별히 약하게 운동을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전혀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여자에게도 어깨가 강점인 것은 장점이라는 게 좋았다. 그것도 어쩌면 외모에 대한 평가일 수 있을텐데 강점이라는 표현이 어쩐지 다른 평가와 다르게 들렸다. 그러고 보니 힘이 센 건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결혼 전 혼자서 살 때 나는 여러 번 이사를 다니며 가구를 집 안에서 요리조리 옮겨야 할 일이 많았다. 그걸 그리 어렵다 느끼지 않고 했다. 결혼 후에는 집이 커지면서 가구들도 크고 무거워졌다. 집의 구조를 바꾸는 것을 좋아하는데 남편은 늦게 오거나, 내가 자꾸 구조 바꾸는 걸 달갑지 않아 했다. 기다리고 눈치보느니 혼자 살 때 경험을 살려 침대며 책장, 소파 같은 것들을 이방 저방으로 옮겼다. 요령이 좋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힘이 센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버터를 좋아하게 됐다. 올 여름 베트남 다낭에 갔을 때 먹은 빵과 버터와 커피의 맛에 반해 돌아 오는 날까지 아쉽지 않게 열심히 먹었다. 그 모습을 인상 깊게 본 친구 재인이가 맛있는 버터를 몇 가지 추천해 주었다. 알려주는 대로 몇 가지 주문했다. 도착한 버터를 따뜻하게 구운 식빵 사이에 끼워 먹었다. 버터에서 꽃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음식은 역시 고칼로리가 맛있다. 오죽하면 버터를 넣어 먹는 커피를 날아오는 총알도 막는 고칼로리라는 뜻으로 방탄이라고 부를까. 사랑은 장애물을 극복하게 한다. 사랑하게 되니 칼로리라는 장애물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사랑하면 알고 싶어진다고 천연버터에 대해 알고 싶어 정보를 검색했다. 정보가 넘쳐나는 바다에 천연버터의 장점에 대해 서술한 포스팅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장점 위주로 서술한 포스팅만 반복해서 봤다.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는 약간의 부작용이 나와 있었다. 그거야 뭐든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 버터를 열심히 먹으면서 주변에도 권하다 보니 드는 생각이 있었다. 버터도 좋은 것만 찾아서 보는데 내 몸에 대해서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어릴 적부터 만들어진 ‘내 몸은 약하다’는 인식과 매스컴이 만들어 놓은 여성의 몸에 대한 기준이 내 몸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게 했다. 헬스를 하면서 미의 기준이 바뀌었다. 전에 친구가 보여준 사진 속 튼튼한 여자가 아니다. 아이돌들의 가느다란 팔 다리도 아니다. 나의 아름다움의 기준은 내 몸이다. 내 여건과 능력 속에서 내 몸이 만들어 내는 가장 건강한 몸이 나의 미적 지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