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근육이 준 자유
날씨가 추워지면서 관절들이 삐걱삐걱했다. 운동을 할 때 어깨나 무릎에서 뼈소리가 나기도 하고 왼쪽 골반은 걸을 때 아프기도 했다. 오른쪽 발을 다치고 난 후 왼쪽에 힘을 많이 주고 지냈나보다. 주말 개인운동으로 하체 운동을 가볍게 하고 오기로 했다. 스쿼트는 무게를 많이 하지 않고 힘들만 하면 그만했고, 골반통 때문에 레그프레스에는 원판을 달지 않고 했다. 무게가 가벼우니 평소보다 횟수를 늘려서 했다. 무게를 올리는 것도 좋지만 같은 무게를 더 힘들게 다루는 것도 운동의 한 방식이다. 숫자보다 내 눈으로 보는 변화, 내 몸이 느끼는 에너지를 중요하게 관찰하고 내 몸을 기준으로 운동을 설정하려는 마음가짐을 자주 되새긴다.
80대의 보디빌더 할아버지가 유명한 인터뷰 프로그램에 나왔다.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신 할아버지는 60대에 퇴직 후 보디빌딩을 시작했다. 시니어 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둔 이후 지금까지 계속 크고 작은 대회에 도전하며 현역 선수로 활동 중이라고 했다. 헬스장은 일부러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곳으로 정해서 걸어다니고 걸을 땐 다리에 모래 주머니를 차고 다니신다. 처음에 운동을 시작할 때는 가족과 친구들 모두 나이를 생각하라며 말렸다고 한다. 그때 말리던 친구들은 지금 이 세상에 없거나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는 연륜 있는 우스갯 소리도 하셨다. 요즘에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로 자신의 몸 상태에 맞추어 전에 비해 운동량을 줄여서 하신다고 했다. 운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충분히 쉬는데 휴식이 운동의 일부라고 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아내가 병환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 일이 있었다. 재활을 해야 할 때도 아내에게 운동을 하도록 도와 지금은 할머니가 의사가 말한 것보다 훨씬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방송에 나오면서도 민소매 티를 입고 근육을 과시하셨는데 감기에라도 걸리시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다. 감기에 걸려도 약을 드시지 않고 자연적으로 극복해 낸다고 하셨다. 내 몸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면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남에게도 도움 주며 살아갈 수 있는 노년이 멋있어 보였다. 할아버지가 남과 비교하며 시작이 늦었다고 도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모습이셨을까. 어차피 최고가 될 수 없다고 포기했다면 지금과 어떻게 달랐을까.
아이 유치원 졸업 발표회 때였다. 우리 아이는 <캔디>라는 음악에 맞춰 댄스를 한다고 했다. 유치원 오후반 선생님은 경력이 많은 선생님이셨다. 아이를 데리러 간 어느 날 유치원 현관에서 만난 선생님이 은밀하게 나를 옆으로 부르셨다. 요지는 현이가 동작이 계속 반박자 늦다, 근데 아주 열심히는 하기 때문에 자신감을 구지 꺾지 않고 고쳐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당일에 엄마가 보면서 괜찮겠느냐 하는 거였다. 나는 괜찮았다. 그날 저녁 아이에게 댄스 연습이 어떻게 돼 가는지 물었다. 아이는 자신만만하게 아주 잘 되고 있다고 하며 댄스의 일부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친구 누구는 자꾸 틀린다고도 했다. 그래, 그렇구나. 자신의 상황을 모르는 아이는 전혀 괴로움이 없었다. 발표회 당일이 되고 한껏 귀엽게 꾸민 아이들이 무대로 올라왔다. 선생님 말씀대로 아이는 정말 열심히 동작을 했고 좋은 무대를 만들겠다는 열정이 얼굴과 몸짓에 보였다. 그 모습이 자체로 귀여웠고 보는 사람도 흥에 겨워 몸을 움직이게 했다. 박자감이 좀 늦으면 어떤가. 무대 위의 댄서도 무대 아래 관객에게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선생님의 연륜에서 묻어나오는 지혜에 감사했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쌓인 지혜, 개별적으로 아이들을 파악하며 어느 정도까지 지도를 할지 정하는 기준 덕분에 아이가 자연스럽게 성장했다. 아이는 그날 무대를 내려오며 잘 해냈다는 기쁨에 가득 차 있었다. 평소에도 아이는 기분이 좋을 때면 무반주로도 신나게 춤을 춘다. 춤 추는 것을 좋아하니 춤으로 밥벌이를 할 수도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댄스에 대한 좋은 마음과 자신감을 심었으니 반박자를 극복하고 댄스전문가가 되어 활약하게 될지도. 그게 아니라 계속 반박자 느리게 춤을 즐기는 사람이 될지도. 무엇이든 자신의 속도에 맞게 즐겁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주말에 쉬고 월요일에 선생님을 만났다. 아침마다 관절이 삐걱댄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빈 바로 먼저 스쿼트를 시키며 관절 안 좋은데 없는지 확인했다. 왼쪽 무릎, 골반이 아직 불편하다고 했더니 빈 바로 한 번 더 몸을 풀자고 했다. 몸풀기는 정말 몸 푸는 효과가 있어서 한 세트 더 하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불편감이 없었다. 서서히 무게를 올렸다. 30kg을 어깨에 지고 앉았다가 밀고 올라오는 순간에 바로 힘차게 올라오지 못하고 '끙'을 한 번 해야 했다. 내 몸무게 정도는 끙 없이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조급하다고 무거운 것을 금방 들 수 있게 되지는 않는다. 운동량이 쌓이고 근육의 밀도가 높아지면 그런 순간은 어느새 내 앞에 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