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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smiths Aug 01. 2017

명망, 도덕심 그리고 몰락 (2)

실력없는 명망과 인자함은 웃음거리가 될 뿐.

위선

송나라는 중원의 중견국이지만 그렇다고 제나라만큼 압도적으로 크지도 않았고 강력한 힘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송양공은 제환공이 했던 것처럼 회맹을 소집하기로 마음먹었으나, 다른 나라들이 얼마나 따라줄지 스스로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당대에 패자가 될 수 있는 나라로는 제, 진晉, 진秦, 초楚 정도였지만, 제나라는 어린 효공이 이제 막 왕위에 올랐고(송양공이 후견하여 왕위에 앉혔다), 진晉나라는 내부문제(후계자문제)로 혼란스러웠다. 진秦나라는 너무 서쪽 변방에 치우쳐있어서 중원무대에 관여가 적었고 출신을 따지자면 원래 중원국이 아니었다. 초나라는 남쪽 오랑캐국南蠻이기 때문에 중원의 맹주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송나라의 국력을 고려할 때, 모든 제후국들을 소집하기 위해서는 획책이 필요했다. 우선 약소국들을 먼저 복속시키고, 중소국들이 모여서 연합을 형성하면, 제, 초, 진, 진 등의 강대국들도 동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송양공은 그 전략을 실행한다.

송양공은 조曺나라 땅에서 회를 소집하기로 하고, 주변의 소국인 조曺, 주邾, 등鄧, 증鄫을 먼저 소집했다. 소국들은 내키지 않았지만 이웃 중견국인 송나라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간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에 참석하기로 했다. 

일단 다들 모이기로 했지만 울며겨자먹기식 소집이다 보니, 열심히 모일 리가 없었다. 우선, 등나라 영제가 늦게 도착하였다. 그러자, 송양공은 자신의 권위가 손상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등나라 영제를 별관에 가두어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증나라 군주는 그제서야 부리나케 회맹에 참석하였지만, 이틀이나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송양공은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송양공은 자신이 너무 인자하기만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인이 처음으로 동맹을 제의하는데, 증 같은 조그만 나라가 기일을 어기고 늦게 왔다. 그 죄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어찌 우리 송나라의 위엄을 천하에 세울 수 있으리오."

송양공은 증나라 군주를 처분하려고 했다.


이 때, 대부 공자 탕이 아뢴다.

"지난날 제환공은 제후의 맹주로서 남북의 여러 오랑캐들을 정벌하였지만, 동이東夷만은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주공께서는 제환공이 하지못했던 동이를 굴복시킨다면, 천하에 위엄을 떨칠 수 있습니다. 그 동이를 굴복시키는데 증나라 임금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동이사람들은 수수睢水의 수신水神을 숭배하며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냅니다. 주공께서는 그 수신에게 증나라 임금을 희생으로 바치십시오. 그러면 동이사람들이 주공을 숭상하게 되고, 더구나 제후를 죽여서 제사의 희생으로 삼으니 천하에 누가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그 연후에 동이의 힘을 빌려 모든 제후를 정복하면 패업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공자 목이가 황망해하며 이야기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오! 자고로 조그만 일에는 큰 짐승을 잡지도 않는다고 하는데, 하물며 사람을 잡아서 제사를 지낸다니 만부당합니다. 제사란 복을 벌기 위해서인데 사람을 죽여서 제사를 지낸다면, 하늘이 도울 리가 만무합니다. 또한, 수수의 신은 오랑캐가 모시는 신인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오랑캐의 신을 섬긴다면, 중원에서 그 누가 복종하겠습니까. 제환공이 천하의 패권을 잡고 30년간 맹주로 있었던 것은, 위급한 자를 구해주고 덕을 배풀어서 입니다. 주공은 겨우 첫 회맹를 개최하고 대뜸 제후를 죽여서 오랑캐 귀신에게 아첨한다면, 천하의 제후들은 주공을 두려워하지만, 절대 복종하진 않을 겁니다."


이에 공자 탕이 재반박한다.

" 목이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이는 시세를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주공의 패업도모는 제환공의 패업의 방식과 다릅니다. 제환공이 천하를 통제하기까지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인 뒤에야 겨우 맹주가 되었습니다. 지금 주공은 20년을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천천히 패권을 장악하려면 덕으로서 다스려야하지만, 급하게 잡으려면 위력을 쓰는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천천히 장악할 것인가, 빠르게 장악할 것인가를 먼저 판단해야합니다! 우리가 오랑캐 풍속을 따르지 않으면 동이는 우리를 의심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제후들에게 무섭게 보이지 않으면 제후들이 우리를 만만하게 봅니다. 안으로 만만하게 보이고 밖으로 의심을 산다면 패업은 달성할 수가 없습니다. 옛날 주문왕周文王도 주왕紂王(은나라의 마지막 왕)의 머리를 베어 태백기에 걸고 천하를 제패했습니다. 큰 뜻을 이루는 방식이 이렇습니다. 하물며 증나라 같은 소국의 임금 하나 죽이기를 주저하시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누구의 말이 옳아보이는가?


제환공을 묘사한 그림. 


송양공은 결국 다른 참석 소국인 주邾나라 문공에게 명령하여 증나라 임금을 삶아 희생으로 삼게 했다.  그리고 이를 동이의 군장에게 보냈다. 

'수수의 신에게 제사를 지낼 희생으로 보낸다. 동이의 군장들도 와서 제사에 참석하여 달라.'

그러나, 동이들은 송양공이 누구인지 모를 뿐더라 갑자기 이러한 연락을 받고는 의심하여 제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한편, 증나라 임금이 팽살(삶아죽임)되자 별관에 감금되었던 등나라 임금은 자신마저 어떻게 될까 두려웠다. 그는 송양공에게 많은 뇌물을 주어 석방을 앙망했고, 마침내 풀려났다. 회맹에 참석해 있던 조나라 역시 이러한 송양공의 모습에 실망하여 인사도 없이 조나라로 수도로 돌아가버렸다. 


송양공은 패자가 된다면 인자하고 품위있는 패자가 되고 싶었다. 늘 그런 상상을 하며 천하의 패자가 되어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따라주지 않는 명성과 권력 아래에서는 인자한 사람이고 싶지만, 결국 약소국에게는 누구보다도 잔인했고, 뜻대로 되지 않자 분풀이하는 추한 모습만 보이고 말았다. 


한편, 회맹으로 모인 장소는 조나라였는데, 조나라 제후가 자신에게 인사도 없이 돌아가버리자 송양공은 분노했다.이에 송양공은 위엄을 되찾고 본떼를 보여주기 위해 조나라를 침범한다. 상경 목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송나라군대는 조나라를 칩입해 포위했으나, 조나라는 성문을 굳게 잠그고 버텼다. 송나라는 3개월이나 성을 공략했으나 승리하지 못했다.  


그 무렵, 정鄭나라가 주도하여 초, 제, 노魯, 진陳, 채蔡가 제나라 땅에서 동맹을 맺었다. 이 소식을 들은 송양공은 황급히 군사를 철수하여 본국으로 돌아갔다. 우선, 제나 노가 패권을 잡으면 송나라가 대적할 힘이 없기 때문이며, 송나라가 조나라를 이기는 것도 쉽지 않다고 판단하여 돌아갔다. 조나라는 이 때다 싶어 후환을 방지하기 위해 송나라에게 공물을 바치며 화해하였다.



송나라의 두번째 전략

송양공은 그 뒤로도 어떻게 하면 천하 제후를 맘대로 부릴 수 있는 패업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인지 밤낮으로 고민했다. 조그만 나라들도 도무지 자기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 강대한 나라들은 도리어 자신보다 초나라와 동맹을 맺어버리니 초조하고 분노가 일었다. 그러자 양공은 공자 탕을 불러 계책을 상의했다.


공자 탕은 또 한가지 전략을 내어놓는다.

"지금 천하에 제齊, 초楚가 가장 강한 나라입니다. 제나라는 천하의 패권국이었다가 제환공 사후 이제야 겨우 안정되어 힘을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 초는 스스로 왕이라 칭하면서 점점 중원으로 힘을 뻗고 있어서 제후들이 두려워하고 있지요. 그러니 주공께선 많은 뇌물을 초나라에 보내어, 초로 하여금 제후들과 우리 송나라가 친할 수 있도록 주선해달라고 간청하십시오. 그러면 초왕은 우리 송과 다른 제후국들간에 친분이 두터워지도록 주선해줄 것입니다. 이렇게 우선 초나라의 힘을 빌려 제후들을 모으고, 그 뒤 제후의 힘을 빌려서 초를 누르면 주공은 천하의 맹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도 공자 목이가 반박한다. 

"초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힘들여가며 제후국들을 우리에게 내어주겠습니까?"

결국, 송양공은 공자 탕을 시켜 많은 뇌물을 싣고 초나라로 가게 했다.


공자 탕은 초성왕을 만나 송양공의 의견을 전했고, 초성왕은 송나라의 뜻대로 내년 봄 녹상鹿上에서 회를 가지자고 말했다. 탕은 복귀하여 양공에게 전달하자, 양공이 말했다.

"녹상이라하면 제나라 땅이구나. 그렇다면 제나라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공자 탕은 제나라로 가서 제효공을 만나 '송과 초의 회를 귀국의 녹상에서 갖고자 하오니 군후께서도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청했다. 제효공 역시 참석하기로 승낙했다.


이듬해 봄, 송양공이 녹상 땅에 먼저 도착했다. 그는 맹단을 쌓고 제효공과 초성황이 오기를 기다렸다. 제효공이 녹상에 도착하자, 송양공은 지난날에 제효공을 제나라 군위에 올려준 적이 있어서 거만한 태도를 취했다. 제효공 역시 송양공 덕분에 제나라 임금이 되었기 때문에 예를 다하고 크게 잔치를 배풀었다. 

그리고 20여일 후에 초성왕이 왔다. 초성왕을 접견할 때, 벼슬의 고하를 따져 순서를 정했다. 초성왕이 자칭 왕으로 칭하고 있지만, 주왕실로부터 받은 벼슬은 자작에 불과했다. 그래서 송양공이 가장 상석을 차지하고(공작이기 때문이다.), 제효공이 그 다음, 초성왕이 맨 끝자리를 내어줬다.


드디어 약속한 날이 되어, 그들은 함께 맹단으로 올라갔다. 송양공은 스스로 맹주를 자처하고 제일 먼저 쇠귀를 잘라 피를 받았다. 송양공은 이미 패자覇者가 된 듯이 행세할 뿐 조금도 사양하거나 겸양하는 기색이 없자, 초성왕은 아니꼬와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일단 꾹 참고 소의 피를 입술에 발라 맹세를 했다.



춘추시대 인물화


모두 맹세를 하자 송양공이 말했다. 

" 과인이 조상의 뒤를 이어 왕가의 벼슬을 받은 뒤, 비록 덕과 힘이 부족하나 맹회를 열고 천하에 이바지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열국의 생각이 다른지라 앞으로 두 군후의 위세를 빌려 천하 제후들을 과인의 우盂땅에 모아서 대규모 대회를 개최할까 합니다. 금년 가을에 천하 제후들과 동맹할 수 있는 모든 준비는 과인이 다 하겠으니, 두 군후께서는 과인을 위해 가급적 많은 나라의 제후들을 모아와주시기 바랍니다."


제효공은 "과인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라며 사양하며 아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다. 초성왕도 제효공에게 사양하면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제, 초 두 군후가 겸양하며 서로 주저하자(내켜하지 않자) 송양공은 대회취지를 쓴 문서를 내밀며 서명을 하자고 강요하였다. 그때, 송양공은 그 문서를 초성왕에게 먼저 내밀었다. 제효공은 자기에게 먼저 서명을 청하지 않는 송양공의 태도에 비위가 거슬렸다. 


한편, 초성왕은 문서를 훑어봤다. 그것은 과거 제환공이 개최한 의상의 회맹을 본받아, 일체 무기와 병거를 소지하지 않고 참석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일 첫줄에는 이미 송양공의 서명이 기입되어 있었다. 이를 보자 초성왕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송양공에게 말했다.

"송후께서 친히 모든 제후들에게 오라고 분부하실 것이지 왜 하필 과인에게 부탁하십니까"

"정鄭, 허許 두나라는 초의 지배를 받고 있고, 진陳, 채蔡는 제 땅에서 초와 동맹했으므로 군후의 힘을 빌려야만 그들을 부를 수 있습니다. 부디 과인을 위해 힘써주십시오."라며 송양공은 초성왕에게 재차 부탁했다.

그러자 초성왕은 제효공에게 미룬다.

"그렇다면 제후齊侯께서 먼저 서명하셔야겠습니다. 과인은 그 다음줄에 서명하겠소." 

초왕이 미루자 제효공은 냉소적으로 말한다. 

"과인은 송나라의 지배아래 있는 거나 다름없소이다. 그러므로 사양하겠습니다." 

그러자 초성왕이 '허허' 하고 웃더니 먼저 서명을 한다. 그리고 제효공에게 붓을 건네준다. 제효공은 붓을 받지 않으며 말한다. 

"초나라가 서명했는데 제나라까지 서명할 거 있겠습니까. 과인은 죽을 고비와 풍파를 다 겪고 겨우 사직을 보존했습니다. 오늘 동맹에 참가한 것만도 영광인데 어찌 이 문서까지 더럽힐 수 있겠습니까." 

제효공은 송양공이 먼저 초성왕에게 서명을 청하는 걸 보고서야 송이 초를 더 중시하고 제를 가볍게 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제효공은 아니꼬운 생각에 끝까지 서명을 하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고 송양공은 '제후(제효공)가 내 덕에 군위에 올랐으니 저렇게 겸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라고 생각하고 깊은 생각없이 문서를 그대로 거두었다. 


그 후, 세명의 군후들은 각국으로 돌아갔고, 송양공은 송나라로 돌아오자마자 자신이 이룬 외교적 성과를 자랑했다. 그리고 곧 다가올 회맹에 대해 기대감이 부풀렀다. '초나라는 오랑캐라며 믿지 말라'고 공자 목이가 말했지만,  

"목이는 너무 예민하도다. 과인의 신의로 초를 대하는데 초가 어찌 나를 속일 수 있겠느냐." 라며 의견을 물리쳤다.


한편, 초성왕도 귀국하여 녹상에서 있었던 일을 신하들에게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초나라 영윤(재상)인 자문子文이 말한다.

"송양공은 참 이상한 사람이네요. 그런데 왕께선 어찌 또 다음 회에 참석하신다고 허락하셨습니까"

초성왕은 껄껄 웃고 대답한다. 

"다 과인이 생각이 있느니라. 과인이 중원까지 패권을 차지하고자 마음을 품은지 오래다. 다만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터에, 송후가 천하제후들을 모으고 대회를 개최한다고 하니, 이건 과인에게 되려 좋은 기회이다."


과연 초성왕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송양공은 초와 제의 위엄을 이용하여 천하 제후국들을 모아놓고 맹주가 될 수 있을 것인가?


(3편에서 계속)

3편: https://brunch.co.kr/@goldsmiths/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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