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ldsmiths Jul 30. 2017

명망, 도덕심 그리고 몰락 (1)

실력없는 명망과 인자함은 웃음거리가 될 뿐.

우리는 어쩌면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명망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가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지만, 때때로 진흙탕같은 현실의 벽에 부딪쳐 포기한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 사회적 명망같은 허명을 잠시 세우려다가, 결국 손해만 본 경우도 있었을지 모른다. 어설프고 쓸데없는 도덕심으로 주저주저하다가 후회한 적이 있지 않는가?


여기 천하를 무대로 그러한 삶을 살다간 아주 유명한 사람이 있다.




인의仁義

춘추시대 송宋나라 양공讓公은 인의가 있는 군자로 이름이 높았다.

그는 송나라 후계자 계승과정에서 서자인 형(공자 목이)에게 양보했다. - 결과적으로 송양공이 후계를 이었지만- 그 일화가 전국에 퍼지면서 그는 인의로운 인물로 명성을 얻었다. 당시 춘추시대는 혼돈의 시대였다. 왕위를 위해서는 부자형제간에도 골육지쟁을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하던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그의 양보는 대단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이 일화를 통해 송나라의 양공의 명성은 천하에 퍼졌고, 그는 인仁과 의義를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송양공은 언제나 천하의 모든 명망을 받았던 제齊나라 환공桓公처럼 되고 싶어 했다. 

제환공이란 누구인가? 주周왕실에 대한 질서가 무너지고 천하가 혼란할 때, 주왕실을 대신하여 나라간 질서를 세우고 패자覇者에 오른 위대한 인물이다. 


제환공은 기원전 679년 여러 제후諸侯들을 불러모아 견(甄)에서 회맹하고 패자에 올랐다. 제후국들을 회맹하여 맹주에 오른다는 것은 사실 주나라 왕실만이 가능한 일이었으나, 주왕실이 유명무실하자 제나라가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제환공은 모든 제후국을 불러모아 회맹을 맺고 천하의 질서를 협의했다. 또 대부분의 나라들은 제환공의 부름에 복속하고 따랐다. 천하는 제환공을 우러러보며 따르고 경외했고, 제환공은 그렇게 패자에 올랐다. 이로서 제환공은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가 된다.


명목상 그는 주나라를 천자를 섬기는 일개 제후국을 군주이었지만, 그가 패자가 되었을 땐, 사실상 당대 최고 실세가 되었다. 그는 결국 주나라 왕실의 후계자문제에 개입을 한다. 그리하여 주나라 왕위계승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오는 길에 제환공은 자신의 후계자문제에 대해서도 근심을 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제환공은 사후 후계자문제로 2달이나 시신이 방치되는 변을 겪었다.) 

그는 시대의 명재상 관중管仲에게 물었다. 명재상 관중의 답변은 이러하였다. 주나라 세자가 주왕실 후계자문제를 제환공에게 부탁했듯이, 제나라 역시 가장 인의가 있고 믿을만한 제후에게 후계자 문제를 부탁해둘 것을 제안한다. 제환공과 관중은 송나라 양공이라면 인의의 군자인지라, 제나라 후계문제를 해결해줄 적임자로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제환공은 송양공을 불러 자신의 후계자문제를 후견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만큼 송양공은 천하에 인과 의로서 이름이 나있었다. 


한편, 송양공은 천하의 패자 제환공이 자신을 불러 후계자 문제를 부탁하자, 뛸 뜻이 기뻤다. 자신이 제나라 환공으로부터 뒤를 이을 인물로 인정받은 것처럼 느꼈다. 그는 이 때부터 자신이 제환공을 이어 춘추시대 패자에 오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그의 걱정대로 제환공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자, 제나라는 후계자 계승문제로 혼란을 겪는다. 송양공은 약속한대로 군대를 이끌고가 제나라 왕위계승 문제에 개입한다. 그리고 제환공이 부탁한 아들 소昭를 왕위에 올려놓게 되니 그가 제나라 효공孝公이 되었다.


춘추시대 천하분포도



명망名望

송양공은 늘 명망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제환공이 없는 이 천하에 이제 누가 그 뒤를 이을 것인가? 송양공은 바로 본인이 다음 패자가 되고 싶었다. 

그는 제나라 후계자 문제를 해결하고 효공을 직접 옹립한 사람이다. 제나라는 천하의 다른 제후국을 호령했고 그런 제나라는 자신이 좌지우지했으니 그가 사실상 패자가 되어도 되지 않겠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임 패자였던 제환공이 직접 부탁한 사람은 본인이니, 제환공이 자신을 그의 다음 패자로 인정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송양공이 이미 덕과 인자함, 의로서 이름을 떨처온 것은 분명 사실이었다. 이런 인품은 천하의 패자가 될 최대 덕목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패자가 되는 것이 인의가 숭상받을 수 있는 천하가 되게 하기 위해서라도 바람직하지않을까 생각했다. 


게다가, 송나라로 말할 것 같으면, 주왕실의 친인척 관계인 공작국이니 다른 제후국보다 위계상 높다. 그러하니 주왕실을 이어 패자가 될 명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춘추시대는 주나라를 왕실로 두고, 나머지는 공, 후, 백, 자, 남 작위별로 구분된 제후국이었다. 따라서, 힘의 질서와 함께, 공작국이냐 남작국이냐 등의 작위별 위계에 대한 인식도 동시에 존재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공작국인 송나라의 제후로서, 주왕실을 대신해, 또 제환공의 유지를 이어 천하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었다. 그러나 실상 사명감이라고 하나 명망을 쫓고자 하는 그의 허영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스스로 패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자신의 신하들을 불러모았다.

"이제 제환공을 대신하여 내가 패자가 되고자 하노라. 어찌하면 좋은가."


제나라와 달리 중견국에 불과한 송나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패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송나라는 두가지 상반된 전략을 사용하여 패자에 도전하게 된다. 


(다음편에 계속)

2편: https://brunch.co.kr/@goldsmiths/16


* 같은 춘추시대일지라도 초나라는 처음부터 스스로를 왕으로 칭했다. 당시 중원의 입장에서 왕이라 칭할 수 있는 나라는 주周나라 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제후국들이었다. 초나라는 중원의 리그에 포함되지 않은 남쪽 오랑캐국가였고, 주나라 지배권 밖의 나라였다. 그래서 초나라는 스스로 초왕으로 칭하였다. 따라서 춘추5패 중 유일하게 왕으로 불린 초나라 장왕의 예처럼 초나라 군주는 모두 왕으로 통칭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츠마(薩摩藩)의 과감한 승부수, 역사를 바꾸다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