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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smiths Oct 11. 2016

사츠마(薩摩藩)의 과감한 승부수,
역사를 바꾸다 (3)

안전한 길을 포기하고 원수와 손을 잡다.

사이고(西鄕)는 오지 않았다.

제1차 죠슈정벌 이후, 죠슈 내부에서는 두번째 정변이 일어났다. 

1차 죠슈정벌 때에는, 죠슈로 몰려드는 막부군에 겁을 먹고, 번 내부의 공무합체파들이 정변을 일으켜 번내 존왕양이파들를 체포하여 막부측에 건네주며 항복을 간청하였었다.   

그러나, 다카스키 신사쿠, 가츠라 고고로桂小五郞(훗날의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등 숨어 있던 죠슈의 존왕양이파들이 다시 몰려나와 쿠테타를 통해서 죠슈번의 정권을 재장악한다. 그리고 존왕양이파가 다시 주도하는 죠슈번은 제1차 죠슈정벌의 항복조건을 이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막부와의 결전을 절치부심 벼르고 있었다. 결국 막부는 제2차 죠슈정벌을 결심한다.


한편, 그 무렵 도사번土佐藩의 낭인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와 나카오카 신타로中岡慎太郎는 죠슈와 사츠마를 분주히 오갔다. 이들은 가장 강력한 두 번인 사츠마와 죠슈가 동맹을 맺어야만 막부를 타도하고 새로운 일본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서로 견원지간인 사츠마와 죠슈를 한자리에 불러오기까지 사카모토 료마의 공이 컸고 당시로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회동을 두사람이 성사시켰다. 사카모토 료마는 사츠마와 죠슈를 대표하는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와 가츠가 고고로의 회동을 약속받는다. 회합의 장소는, 혼슈와 큐슈가 맞닿아있는 곳, 죠슈의 국경이자 일본 최대의 해협관문, 시모노세키에서 만나는 것으로 결정이 내려졌다.  


약속한 날이 되었다.

사츠마의 사이고 다카모리는 마침내 시모노세키를 향해 배를 출발시켰다. 동시에 죠슈의 가츠라 고고로는 시모노세키에서 사이고 다카모리를 기다린다. 사카모토 료마 역시 사이고의 등장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 시대의 약속이란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사이고는 오지 않았다. 얼마 후 사이고 다카모리가 교토에 있다는 소식이 가츠라와 사카모토에게 들렸다. 

'역시 사츠마를 신용할 수 없는 것인가?' 가츠라는 분을 삼켰고, 회담이 결렬될 위기에 처했다. 사카모토는 가츠라를 진정시킨 뒤, 황급히 사이고를 만나러 교토로 향한다. 교토에 도착한 사카모토 료마는 사이고 다카모리를 만나 다시 설득한다.


사실 사이고가 교토로 향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사츠마와 죠슈가 비밀리에 접촉한다는 이야기가 막부측에 흘러들어갔기 때문이다. 사이고는 막부측의 눈을 피해서 시모노세키가 아니라 교토로 향한 것이다. 자칫하면 역적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사이고는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었다. 막부의 눈을 피하기 위해 죠슈와의 회동을 문서로 남기지 않은 것도 그러한 사이고의 신중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협의를 문서화하지 않았기 죠슈로서는 사츠마가 나타나지 않자 더더욱 불안했고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사츠마로서는 충분히 갈등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죠슈와의 동맹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하는 고민도 스스로 정리되기 전에, 막부가 사츠마의 반역(반역자 죠슈와 손을 잡는 것)을 눈치를 챈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삿쵸동맹을 체결한 문서에 료마가 붉은 글씨로 보증을 배서하였다.


한편, 다시한번 사츠마와 죠슈의 회동을 주선하는 사카모토에게 가츠라는 한가지 제안을 한다. 만약 사츠마가 진실된 마음으로 동맹의 의지가 있다면, 사츠마는 증기선 한척과 미니에 총 1만정을 구매해 죠슈에 전달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죠슈는 막부의 제2차 죠슈정벌을 대비하는 중이었지만, 막부측이 내린 무역금지령으로 서양식 신식무기를 구입할 수가 없었다. 

반면, 사츠마는 서양상인들이 많이 머무르는 교역지역이었으므로 구입이 자유로웠다. 이런 죠슈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죠슈는 사츠마를 신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가츠라의 주장이었다. 그 대신 죠슈는 사츠마에게 군량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했다. 사츠마는 교토에 장기 주둔하는 사츠마군을 위해, 군량이 대거 필요했다.  

사츠마는 잠시 고민한다. 최신무기를 원수인 죠슈에게 안겨준다는 것은, 즉, 이전까지의 정적 죠슈를 강력하게 하는 것은, 그 이웃인 사츠마 자신의 안보에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죠슈는 얼마전까지도 아니 지금까지도 사츠마의 적인과 동시에 천하의 적이 아닌가. 

그러나 결국, 사츠마는 제2차 죠슈정벌을 위한 무기 구매라는 명목으로 막부의 눈을 피해 무기를 대량 구매하고, 죠슈에게 전달한다. 그 운반은 사카모토 료마의 가메야사 사츄亀山社中가 진행했다. 그리하여 해당 교역이 성사가 되었고, 마침내 사이고와 가츠라는 교토에서 두번째 회동을 하기로 한다.  


이번에는 사이고가 자신의 심복 구로다 키요타카黒田清隆를 죠슈번으로 보내 가츠라 고고로를 교토로 안내해 오게 한다. 해가 바뀌어 1866년 1월, 드디어 가츠라 고고로는 교토의 사츠마 번저에서 사이고 다카모리를 만난다. 그러나, 막상 만났지만 양측은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다. 양측 모두, 자존심이 강하고 오랫동안 원한이 깊은지라, 12일 동안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가츠라는 더이상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다시 죠슈로 내려가겠다고 통보했다. 그 때서야 비로소 사이고는 가츠라와 대화를 시작한다. 이리하여 마침내 사츠마와 죠슈 간의 동맹이 맺어지게 된 것이다. 그것이 일본의 역사를 뒤바꾼 사츠마-죠슈의 동맹, 삿쵸동맹의 시작이었다. 어제의 원수가 이제 천하대사를 함께 도모하는 파트너가 되었다. 그 동맹을 도사번의 하급무사이자 일개 낭인인 사카모토 료마가 배서(보증)한다. (이 중대한 동맹을 어째서 일개 낭인무사가 보증하게 한 것인가는 여전히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사츠마의 결단, 일본을 바꾸다.

샷쵸동맹이 맺어지고 나서는 두 웅번은 대정봉환大政奉還을 이루어고 결국 천황이 이끄는 메이지 시대를 열었다. 그리하여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고 일본을 아시아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일본은 청나라와 러시아를 연거푸 격파하고, 만주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사츠마가 죠슈와 손을 잡고 막부타도로 돌아선 것은, 사츠마가 일본을 바꾸겠다는 혁명적 자세라기 보다는, 힘을 바탕으로 한, 이익이나 생존을 쫓은 것이라고 봐야할 것이겠지만, 보장된 웅번의 길을 포기하고 역적의 위험을 각오한 결단과 추진력을 높이 세워야할 것이다.


그런데, 사츠마의 판단은 옳았을까?

사츠마는 죠슈와 힘을 합쳐, 250여년의 도쿠가와 막부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냈고 사츠마는 살아남아 번영을 누렸다. 메이지 유신을 주도, 번벌정치藩閥政治를 구축하여 사츠마와 죠슈번이 돌아가면서 정권을 장악하고 일본을 지배하였다.  

반면, 사츠마번은 점점 죠슈번출신 인물들에게 밀려나게 된다. 그렇다면 사츠마는 막부가 죠슈를 멸망시키고 나서 천하를 장악했다면 어떠했을까? 사츠마는 2차 죠슈정벌을 기다리고 난 뒤에 움직였어야했을까? 그럼 사츠마는 죠슈없이도 대정봉환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아니면 막부가 스스로 쓰러질 때까지 기다렸다면 사츠마가 주도하는 시대가 열렸을까? 재미삼아 생각해보는 역사의 가정일 뿐이다. 

(끝)


1편:https://brunch.co.kr/@goldsmiths/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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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https://brunch.co.kr/@goldsmiths/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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