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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smiths Aug 02. 2017

명망, 도덕심 그리고 몰락 (3)

실력없는 명망과 인자함은 웃음거리가 될 뿐

덕도 역량도 없는 주제에...

송양공은 강대국 초나라와 제나라를 이용하여 제후국을 불러모아 일단 맹주가 되고, 그 뒤 제후국들을 이용해 초나라와 제나라를 복속시킬 생각이었다.

전편에 이야기한 바대로, 송양공은 제효공, 초성왕을 불러 새로운 회맹의 추진을 논의했고, 초와 제 역시 그 회맹에 다시 참석하기로 약속한 바가 있다.


한편, 초나라 성왕은 힘도 실력도 없는 송양공이 맹주인 척 행동하는 것이 여간 아니꼽지 않았지만, 다시 천하 제후들과의 회맹에 응하기로 했다. 초나라는 남쪽 오랑캐였지만 세력이 급성장하여 한동지역을 모두 제패하고 점차 중원으로 세력을 뻗어가려는 정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초성왕은 송나라가 주최하는 이번 회맹을 통하여, 중원국들에게 초나라의 위엄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초나라 대부 성득신이 계책을 말한다.

"송후는 명예만 쫓을 뿐 실속이 없고, 남을 잘 믿고 꾀가 없습니다. 이번 회맹은 병거와 무기를 두고 참석하기로 했으니 반대로 군사를 매복해뒀다가 그를 친다면 곧바로 송후를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윤 자문은 반대의 의견을 내어놓는다.

"회에 참석한다고 해놓고 송후를 사로잡는다면 천하는 우리 초나라의 신의없는 나라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천하 제후들을 복속시킬 수 있겠습니까?"

성득신이 말하길

"송후는 패자 역할 하는데 신나서, 필경 모든 제후들을 거만하게 대할 것입니다. 그러면 제후들이 송후에게 아니꼬운 생각이 절로 들 것입니다. 이 때, 우리가 송후를 잡아 위엄을 보이고, 그 후에 관대하게 그를 석망하는 인덕을 보이면, 송후의 무능도 알리게 되고, 제후국들은 우리 초나라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작은 신의 때문에 큰 기회를 잃는다면 이는 올바른 전략이 아닙니다."

자문과 초성왕은 성득신의 심모원려에 고개를 끄덕인다.


마침내 약속한 가을이 왔다.

송양공은 맹주가 된 것인 마냥 신이나서 우 땅에 맹단을 쌓고 여러 물자를 아끼지 않고 정성껏 준비했다.

송양공이 우 땅으로 출발하기 전에 목이가 다시 간한다.

"초는 강력하고 신의가 없습니다. 만일을 대비하여 병거를 거느리고 가십시오."

"과인이 제후국들을 모아놓고 의상의 회(제환공이 진행했던 회로 모두 무장없이 참석했다)를 재현하며 천하태평을 추구하겠다고 약속한 마당에 내가 스스로 병거를 끌고 가는 것은 신의에 어긋나는 일이오."

그러자 목이는 차선책으로 양공은 그냥 행차하고 본인이 3마장 밖에 병거 300승을 거느리고 대기해 있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그대가 병거를 사용하는 것이 과인이 쓰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오. 행여 그러지 마시오"



춘추시대도



회맹의 기일이 되자, 초楚, 진陳, 채蔡, 허許, 조曺, 정鄭 여섯나라 군후가 도착했다. 제효공은 지난날 불쾌한 일을 당했다고 하여 오지 않았고, 노魯나라 희공도 초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았으므로 오지 않았다. 송양공은 각 군후들을 환영하고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초성왕과 신하를 보았지만 병거를 타고 온 사람은 없었다. 초가 자신을 속이지 않은 것에 흡족해했다.


태사太史(제사를 주관하는 벼슬)가 택일하여 드디어 회맹 당일이 되었다.

송양공이 먼저 나가서 기다렸고, 진목공, 채장공, 정문공, 허희공, 조공공이 차례로 회장에 들어왔다. 나중에야 초성왕이 왔다.

맹단에는 좌우 계단이 있는데, 우측 계단은 빈객들이 올라가는 곳이고, 좌측 계단은 주최측이 올라가는 법이다. 군후들은 일제히 기립하고 계단을 밟고 맹단으로 올라가야하는데, 감히 먼저 올라가질 못 하고, 초성왕에게 양보했다. 초성왕이 오른쪽 계단을 오르고, 그 뒤를 성득신, 투발이라는 두 장수가 바짝 붙어서 올라갔다. 그리고나서야 다른 제후들도 자신들의 신하를 거느리고 올라갔다. 그리고 좌측 계단은 주최자 송양공과 목이가 올라갔다.


이제 희생(제물)의 피를 찍어 입술에 바르고, 하늘에 맹세하고, 서명한 뒤, 맹주를 추대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송양공은 초성왕만 바라보았다. 초성왕이 모든 제후들에게 송양공을 맹주로 추대하자는 말을 할 차례였다. 초성왕은 송양공이 애타게 기다리는 걸 알면서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각국 군주들은 서로를 쳐다만 볼 뿐 감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송양공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오늘 대회를 연 것은 과인이, 패자 제환공이 남기고 간 업적을 계승하여 주왕周王을 높이고 천하를 태평하게 하기 위함이오. 다른 군후들은 이를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다른 군후들이 분위기를 살피며 눈치를 보는 사이, 마침내 초성왕이 말했다.

"참 좋은 말씀이외다. 그럼 누가 맹주가 되는 것이 좋겠소?"

송양공은 당혹감을 숨기며 대답한다.

"공이 있으면 공로로 따지고, 공로가 없으면 벼슬로 따지면 되오. 그렇게 하는데 누가 불평하겠소." 송양공은 유일하게 공작국이었으므로 벼슬로는 가장 높았다. 이를 초성왕이 모를 리 없었다.

초왕이 기다렸다는 듯이

"과인이 왕이라고 칭한 지도 오래요. 송후는 상공上公에 있으나 왕과 견줄 순 없지 않겠소? 그럼 과인이 왕으로서 맹주가 되어야겠소." 라고 말한 뒤 제일 윗자리로 가서 섰다.

송양공의 마음 속에는 당혹스러움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때 공자 목이가 송양공의 소매를 잡아 당겼다. 이 굴욕을 참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송양공은 자기가 이미 맹주가 된 걸로 자부하고 있다가 일이 틀어지고 보니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양공이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과인은 조상의 공로로 상공의 벼슬에 있으므로 천자도 과인을 대할 때 빈객의 예의로 맞이하십니다. 군후는 주 왕실에서 내린 벼슬을 맘대로 버리고 (주왕은 초왕에게 자작을 하사한 적이 있다. 자작은 공작, 후작, 백작보다 아래다.) 왕이라 자칭하고 있으니, 가짜 왕이 진짜 상공을 이긴다고 할 수 없지요."

"그래요? 그대 말처럼 과인이 가짜 왕이라면, 그대는 왜 과인을 이곳까지 오라고 청하였소?"

"그대가 여기온 것은 지난 날, 녹상에서 서로 의논하고 정한 것이지, 과인이 청한 것은 아니오."

여기까지 듣고 있던 초나라 신하 성득신이 큰 소리로 외치며 이야기한다.

"그럼, 오늘 여기 모인 제후들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제후들은 우리 초나라 때문에 여기 모인 것이오, 송나라 때문이오?"

각 제후들은 초의 위세에 눌러 복종하는 터라 일제히 말했다.

"우리는 초나라 분부를 받고 오지 않을 수 없었오."

이에 초성왕은 크게 웃으며 말한다.

"하하하하, 또 무슨 할 말이 있거든 송후는 말해보시오."

송양공은 다른 제후들마저 자신을 지지해주지도 못하고, 상황이 거꾸로 돌아감을 느끼자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이 때, 초장 성득신과 투발이 옷을 벗어버리자 갑옷이 드러났다. 그들이 신호를 보내자 초나라 신하들이 모두 군사들로 변해 맹회장을 둘러쌓다. 다른 군주들도 이러한 모습을 보고 벌벌 떨었다.

초성왕이 다섯 군후들 앞에서 송양공을 꾸짖었다.

"너에겐 6가지 죄가 있다. 첫째, 상중인 제나라를 맘대로 쳐서 그 나라 임금을 폐하고 새 임금을 세웠다.(제나라 후계자문제 개입). 둘째, 등나라 임금이 늦게 왔다는 이유로 감금하고 모욕을 주었다. 셋째, 증나라 임금을 죽여서 잡귀에게 제사를 지냈다. 넷째, 조나라가 인사도 없이 돌아갔기로서니 본인의 부덕함을 탓하지 않고 조나라를 공격했다. 다섯째, 망해가는 나라를 거느리고도 덕도, 역량도 없는 주제에 분수도 모르고 천하 패권을 잡으려 날 뛴 것과 여섯째, 과인에게 제후들이 모이게 해달라고 뻔뻔스럽게 청하고도 스스로 제일 날난 체 뽐내며 겸양할 줄 몰랐다는 점이다. 과인이 이제 송나라 수양성을 짓밟아 제나라와 증나라의 원한을 풀어줄 생각이다."

초성왕은 그날부터 10여일 동안 군후들과 날마다 잔치를 배풀며 즐겼다. 그 열흘 동안 송양공은 입이 있으나 말을 할 수 없었고 깎아놓은 나무토막처럼 있으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인의를 중시한 송양공


그 뒤의 이야기는 좀 빠르게 전개하겠다.

송양공을 감금한 초나라는 송나라를 짓밟았다. 황급히 탈출한 목이가 송양공을 대신해 나라를 지켰지만, 역부족이었다. 송양공을 죽이겠다고 협박하였지만 송나라는 목이를 중심으로 뭉쳐서 대항했다. 초성왕은 쓸모없어진 송양공을 죽이려하자, 송양공이 증나라 임금을 팽살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냐며 성득신이 말리자, 덕분에 송양공은 목숨을 부지했다. 


한편 정나라는 초나라의 무력시위로 파토가 난 회맹을 다시 제안하며, 초성왕을 맹주로 모시자고 제안하며 아부했다. 이 후에 다른 사건으로 맹회에 참석하게 된 노나라 희공은 초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았던 터라 당당히 말했다.

"천하의 맹주가 되어 패업을 이루려면, 덕과 신의가 있어야 복종하오. 그런데, 초성왕은 병거와 무기로 송후를 함부로 감금했으니, 위세는 대단하나 초성왕의 덕망을 의심케하오. 만약 관대하게 송후를 석방해준다면, 초나라와 동맹을 맺고 맹주에 오르는 것에 반대하지 않겠소."

노희공의 말에 다른 제후들도 일제히 찬성한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송양공은 풀려났고 초성왕을 맹주로 추대하는 대회가 열렸다. 

초성왕이 단위에 올라 맹주가 되자 송양공은 부끄럽고 분하기도 해서 몹시 우울했다. 


송양공은 천하패권을 잡으려다가 도리어 초에 붙들려가서 모욕을 당하며 원한이 쌓였다. 그런데,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라고 하던가? 정문공이 다른 제후들을 선동하여, 초성왕을 맹주로 추대하는 것에 더욱 분노했다. 송양공은 정나라에게 앙금이 쌓였다.



이상주의자의 말로末路

주양왕 14년 봄, 정문공은 초나라까지 가서 초성왕에게 조례했다. 가뜩이나 눈에 거슬린 정나라의 지나친 아부행동에 송양공은 분노했다. 

"이 간사한 놈을 그냥 둘 수 없다!" 송양공은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를 치기로 한다.

"정나라는 초나라와 매우 가깝습니다. 우리가 정나라를 치면 초나라가 구원하러 오게 될 것이고, 그러면 초의 대군을 상대해야합니다. 그러니 덕을 쌓고 훗날을 기다리심이 옳은 줄로 압니다." 목이가 이번에도 간언했으나, 송양공은 듣지 않았다.


송나라가 정나라를 치자 초나라는 정을 구하기 위해 송나라로 쳐들어왔다.

"초나라는 그저 정나라를 구하기 위해 왔습니다. 우리가 정을 놓아두고 화평을 청하면 초는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공손고가 아뢰자,

"지난날 제환공은 군사를 일으켜가며 초를 쳤는데, 내가 초가 처들어 오는데도 싸우지 않는다면 내 어찌 제환공의 패업을 계승하리오."라며 송양공은 초나라와의 일전을 불사한다.

"우리는 초군보다 군사도, 무기도, 인력도 열세입니다. 무엇을 믿고 초에 대적하려 하십니까?" 공손고는 걱정이 되어 물었다.

"초군은 무기와 군사가 우리보다 많을지 모르지만 인의가 부족하다. 과인은 다른 것은 열세지만 인의가 있음이라. 옛날 주무왕도 3천명으로 은나라 억만 대중을 이긴 것은 인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덕이 있는 임금으로서 무도한 신하를 피한다는 것은, 타인은 몰라도 과인은 죽으면 죽었지 살아있는 한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이리하여 초와 송은 대회전을 벌이게 된다.



춘추시대 전쟁도


기원전 637년.

초楚나라의 대군이 홍수泓水를 건너고 있었다. 송宋나라 양공讓公과 장수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공손고를 비롯한 장수들은 이 때다 싶어, 공격명령을 내려달라고 양공에게 요청했다. 송양공은 그것을 허락치 않았다. 비록 적군일지라도 강을 건너는 병사들을 향해 공격을 감행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초나라군은 강을 다 건너서 진陣을 형성하는 중이었다. 진법을 펴기 전에 지금이라도 쳐야한다고 공손고를 비롯한 장수들이 간언했다. 그러나 송양공은 간언하는 공손고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보라, 인과 의라고 쓴 저 깃발이 보이지 않느냐. 나는 저 깃발을 두르고 나와서 결코 그와 같이 비열한 짓을 할 수 없다!"

기습같은 행위로 얻은 승리는 그의 인의(혹은 평판)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송양공은 생사를 결정하는 전쟁보다 그의 명성이 더 중요했었나 보다. 그는 전쟁에 지더라도 그의 인의만은 칭송받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객관적 전력이 우위에 있던 초나라 군대가 강을 다 건너고 마음껏 진열을 정비한 뒤에야, 송양공은 인, 의 라고 쓰인 깃발을 흔들며 초나라 진지로 쳐들어갔다. 송나라는 당대 군사강국 초나라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인, 의의 깃발은 이미 초군에 뺏기고 없었고, 그 전쟁통에 송양공은 넓적다리에 활을 맞고 병거에서 떨어졌다. 송양공은 아랫사람들에게 언제나 인자했다. 그래서 그의 문신門臣들은 목숨을 걸고 송양공을 구해서 탈출했다. 그러나, 송나라는 대패했고, 그 많은 치중과 기계는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초군에게 빼앗겨 버렸다. 송나라 군사들이 송양공의 쓸데없는 인자함을 원망했다. 그 소리는 양공의 귀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양공은 도리어 탄식한다.

"군자는 상처를 다시 다치면 참지 못하며, 머리털이 반백이 넘으면 뽑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다. 과인은 항상 인과 의로써 군사를 쓰려하거늘, 어찌 수단을 가리지 않고 적을 괴롭힐 수 있으리오."

이 소식을 들은 송나라 백성들은 하도 기가 막혀서 원망을 넘어 비웃기 시작했다.


염옹이 시로써 이를 탄식한다.

' 등, 중 두 나라 임금에겐 가혹하게 하고, 초군에게만 너그러이 대하다가

  마침내 넓적다리를 부상당하고도 웃음거리가 되었도다.

  송양공처럼 인의를 찾다가는, 도적놈과 성인聖人도 분별할 수 없으리라.'


비록 전장에서 무사히 구출되었지만, 송양공은 허벅지 부상과 부끄러움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그는 죽기직전 치를 떨며 후손들에게 유언을 남긴다.

"앞으로 송나라는 초나라와 절대 우호를 맺지말고 원수로 지내라"


세상이라는 길을 걸어갈 때는 진흙탕을 밟지 않고 걸어갈 수 없다. 그러기에 인의로만 사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인 동시에, 인의로만 움직일만큼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어쩌면 그가 추구한 인의란, 인간들이 만든 환타지이고, 송양공은 그 환타지를 쫓고 빠져살았을지 모를일이다. 그는 명망있는 제후였고, 인의를 중시했다. 그는 자신의 인자한 모습에 천하가 진심으로 인정해주고, 따라주기를 바랬다. 어설픈 도덕심. 이상주의. 현실을 모르는 순진무구한 사람. 이상을 쫓던 이상주의자의 말로는 결국 좋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나 추구하던 그의 명망은 어떻게 되었나. 세상이 그를 우러러보기는 커녕 어리석다고 손가락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의미로 '송양지인'宋讓之仁이라는 사자성어를 만들어 후세에 전달했다. 송양공은 인의의 명망가로 이름을 남기고 싶었지만, 이름을 남기긴 남겼으되,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끝).

1편: https://brunch.co.kr/@goldsmiths/7

2편: https://brunch.co.kr/@goldsmiths/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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