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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13. 2019

결벽증, 불면증 환자였던 나의 일기

내 남자 이야기(13)

(남편은 젊은 날에 비해 덜하지만 불면증과 결벽증이 있습니다. 덕분에 깔끔하게 살아가고는 있죠~^^ 젊은 날, 치기 어린 행동으로 일을 그르칠 뻔한 행동도 많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기억에도 그런 일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마터면 남편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그런 이야기 )


역대급 태풍 링링이 북상하는 날, 전국은 아침부터 링링 소식을 전하느라 비상이 걸렸다. 하늘은 태풍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낮고 무겁게 구름이 내려앉았다. 바람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는 것을 나무가 흔들리는 것으로도 충분히 짐작하게 했다. 마당에 있는 정자가 지붕이 천막이어서 혹시 바람에 피해가 생길 것 같아 오전 내내 나사를 조이고 천막을 단단히 묶는 작업을 했다.


"이눔의 마누라... 좀 나와서 도와주지... 집에서 꼼짝을 안 하네!  으이그... "


오후가 되어 서해에 착륙한 태풍의 영향은 멀리 떨어져 있는 파주까지 거센 바람으로 할퀴고 지나갔다. 오후 2시 57분경 마당에 놓여있던 정자가 뒤집어지면서 붕~ 공중을 한 바퀴 돌아 문 앞으로 떨어졌다. 다행히도 다른 곳에는 전혀 피해가 없었다. 그렇게 무겁던 정자만 날아가 박살이 났다. 그날 오후 2차 피해를 우려해 집사람과 나는 4시간 동안 철재들과 나무들을 해체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내가 나사를 돌리는 동안 무겁더라도 기둥을 잘 받치고 서 있어!! 역시 울 마누라는 힘 쓸데가 제일 멋있쪄!!! "


나는 마누라를 잘 다루는 편이다. 병 주고 약 주고... ㅋㅋ 거기에 무거운 기동을 받치고 서서 나름 열심히 도우려는 자세... 칭찬해 주기로 했다.


태풍이 지나가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람과 빗속에서 혼자 나사를 돌리고 마누라는 기를 쓰고 기둥을 받치고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인생 처음으로 가족 많은 집이 부러워졌다.


"아들놈 하나라도 있다면.... (어딘가에서 장성해서 찾아올 놈 없나?? 그러면 마누라에게 맞아 죽겠지??)"


대충 찌그러진 정자를 해체하고 추위를 이기려고 막걸리 몇 잔을 마셨다. 그래도 오한이 온다. 일찍 잠에 들었다. 

© WikiImages, 출처 Pixabay


나는 25년여 동안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많이 자는 날에는 서너 시간, 그도 선잠을 자서 벌레 기어가는 소리까지 들린다. 예전에는 만취 상태로 뻗어서 자도 벌레 기어가는 소리에 잠을 깨 기어코 벌레 시체를 확인하고서야 잠을 잤다. 전기 매트를 깔고 누웠을 때는 전기 흐르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다. 그러한 나의 예민한 잠자리 때문에 아내와 나는 각방을 쓴 지 벌써 십수 년째다. 이제는 서로가 너무 익숙한 존재... 한 지붕 두 가족...


게다가 나는 결벽증도 심했다. 지금은 그나마 함께하는 여인 덕분에 수더분해진 편이지만 결혼 전까지만 해도 거울을 보는 횟수가 하루에도 수십 번, 손 씻는 것도 수십 번, 이마에 머리카락 한 올만 내려와도 스트레스를 받아 무스와 스프레이가 남아나지 않았다. 볼펜 한 자루라도 내가 놓아둔 자리에 있지 않으면 금새 알아차리는. 나는 그렇게 힘들게 스스로를 괴롭히면서 살았던 것 같다.


"나의 결벽증을 완화시킨... 너.... 마누라의 머리카락.... 이제는 포기다... 나 조차도... ㅋㅋㅋ"

 

© EliasSch, 출처 Pixabay


그렇게 잠이 들고 5시간 정도를 개운하게 꿀잠을 잤다. 지난번, 종로에서 사주를 본 후로 잠자는 방향을 북쪽으로 바꾼 것뿐인데 편안하게 잠을 자는 것 같다. 아무래도 심리가 편안해진 탓도 있겠지만 나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 줄 수 있다는 말에 가급적 실천하려고 한다. 나름 나에게는 적합한 상담이었다.


이미 잠에서 깨어 TV 리모컨을 들고 여기저기 채널을 돌렸다. 나는 장기가 하나 있는데 바로 '주의 산만'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 통지서에 담임선생의 한마디는 언제나 동일했다. '주의 산만'.... 나는 그래서 주의산만이 정말 칭찬인 줄로 알았던 때가 있었다. 2002년 월드컵 4강 때도 중간중간 다른 채널을 돌려서 보는 사람들에게 원성을 사기도 했다.


그날도 여지없이 주의 산만한 나는 이것저것 돌리다가 영화 '복면달호'를 보게 되었다. 복면달호의 주인공의 삶을 보면서 왠지 나의 젊은 시절, 즉흥적이고 어렸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충동대로 행동하지만 그 행동으로 인해 후회하게 되는 일들이 있다. 젊었기에 그때는 용서가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삶을 알기에 더욱 조심해야 하는 일들이 나에게는 그림자처럼 내 삶의 어두운 부분으로 따라다닌다. 

치기 어린 나의 젊은 시절, 영화와는 전혀 다른 나의 어리석었던 행동들... 그 이야기를 꺼내 보려 한다. 

(젊은 날, 하마터면 우리는 못 만날 운명이었을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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