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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14. 2019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돼!

내 남자 이야기 (14)

(남편의 치기 어린 객기로 인한 삶의 단편, 영화는 아니지만 평범하지 않았던 이야기라 저도 살짝 당황스럽습니다. 결벽증 불면증 환자였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언제부터였을까? 식자재 사업이 폭삭 망한 이후, 그나마 나에게 남아있던 몇 푼 안 되는 돈마저 직원들에게 퇴직금 명목으로 한 달 치 급여를 더 쥐어주었다. 그리고 인수인계 계약서에 마지막으로 도장을 찍었다. 빈털터리로 변한 내 삶은 허탈함을 견딜 수 없어 거의 매일을 술을 마셔야 했다. 


카드 깡.... 그때는 참 쉬웠다. 카드라는 것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제도적으로 안정되지 못했던 때라 무분별하게 남발되었던 시기였고 카드로 인해 사기를 많이 당하기도 했던 때였다. 일단 되는대로 현금을 마련해 직원들 퇴직금을 지급했다. 그리고 나에게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갚아야 할 빚과 국방색의 대우자동차 씨에로 한 대가 전부였다. 

   

© jonflobrant, 출처 Unsplash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그날도 아침에 정신이 들었지만 전날 마셨던 술이 덜 깬 상태였다. 부스스한 상태에서 일어나 앉아 있긴 해도 정신은 반쯤 나가 있어 창밖만 우두커니 내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답답함과 숨을 쉴 수조차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 얽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자신이 전혀 없었다. 점점 깊이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어 주저앉아버리면 못 일어날 것 같았다. 그래서 씻지도 않은 채 술 냄새가 풍기는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운전대를 잡고 올림픽대로를 향했다. 


마침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 도로는 어느 정도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한참을 지났을까... 나는 점점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파지기 시작했다. 지난 수개월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한 두통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히고서라도 그 순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설사 내 목숨이 한순간 끝난다 하더라도 당장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마 나는 당시에 심한 우울증을 겪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순간적으로 나는 앞발로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자동차는 부앙~!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속도를 냈다. 계기판의 속도는 이미 140km를 넘어섰고, 나는 그것을 보면서 한강 다리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두 손을 놔버렸다....

쾅~~~!!!!


© daunation, 출처 Unsplash


난, 잠시 정신을 잃었다. 분명히 계획대로라면 달리던 자동차는 난간을 넘어 한강으로 추락해 서서히 물 밑으로 가라앉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서서히 차오르는 차가운 물에 잠겨 수영을 전혀 못하는 나는 허우적대다 숨을 멈추어야 한다.  주위가 조용하다. 나의 의식이 조금씩 돌아오면서 머리가 어딘가에 심하게 부딪힌 듯 아파오고 가슴은 통증으로 욱신거렸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운전석에 앉아 있다. 차는 기울어져 있다.


'조금 있으면 물이 들어오고 죽어 가겠군... 잘 됐다... 이제 좀 편하게 쉴 수 있겠다....'


조용히 눈을 감고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가까이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죽은 거 아냐??"


"어떻게든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데... 올림픽 도로에서 연락할 길도 없고..."


당시에는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었던 때가 아니다. 삐삐 정도가 고작이었던 때라 도로에서 사고라도 나면 공중전화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모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되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한강물로 직진했어야 할 차는 올림픽 대로와 한강을 구분해 놓은 난간을 넘지 못하고 앞바퀴가 부딪혔다. 그 충격으로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상태에서 가슴으로 운전대를 심하게 들이받고 머리로 앞 유리를 받았다. 운전대는 부러졌고, 앞 유리는 전체가 심하게 금이 가 핏자국까지 보였다. 


'아~~ 내 피....'


나는 웅성거리며 몰려드는 사람들과 도움을 주려고 차를 정차하고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차에서 내렸다. 언제 달려왔는지 렉카도 두 대가 도착해 있었다. 휘청거리며 내린 나... 점점 아픔보다는 창피함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제대로 씻지 않아 지저분한 상태에 까치들이 놀러 왔다 나간 머리 상태. 그리고 술 냄새... 살았다는 안도감보다 죽는 것조차도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에 혼잣말을 하며 여기저기 쳐다보는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 InspiredImages, 출처 Pixabay


간신히 두 다리를 땅에 지탱하고 서서 차를 바라봤다. 도로 난간을 넘지 못하고 앞바퀴가 심하게 부딪혔지만 겉으로 봐서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자동차 중심축이 두 동강 나 흔들거렸다. 트럭에 차를 싣고 정비소로 향했다. 나는 트럭 기사 옆자리에 앉아 그가 내게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괜찮으세요~? 이런 말은 쫌 그렇긴 한데요... 아까 사고 났던 자리가 코앞이 한강이거든요... 목격하신 분이 그러던데 엄청 속도를 내서 차를 몰았다고 하시던데... 뒤에서 왠지 불안해서 유심히 지켜보면서 갔다고 하더라구요... 

그 정도 속도면 난간을 넘어 한강으로 차가 추락해야 하는데 난간 앞에서 멈춘 게 운이 좋으신 거죠... 시속 100km로 달려도 그냥 한강으로  떨어지거든요.. 

어떻게 자동차 중심축이 부러질 정도로 심하게 부딪히셨는데.... 거기다 아까 보니까 안전벨트도 안 하셨던데... 다치신데도 없고 멀쩡하게 걸어 나오시는지... 보통은 그 정도 충격이면 앞 유리를 뚫고 사람이 튀어 나가거든요... 

암튼... 진짜 신기하네요.. 운이 좋으신가 봐요.."


정비소로 향하는 내내 운전기사는 내게 '운이 좋다'라는 말을 연신 꺼냈다. 운이 좋은 것일까? 아니면 더럽게 재수 없어 내 목숨조차도 맘대로 할 수 없는 운명이던가... 좋은 말로 운이라 말하며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라고 부추기고 있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달리 뭐라고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조금씩 현실감이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앞으로 감당해야 할 수리비만 걱정됐다. 다행히 대인 대물 피해가 없었지만 문제는 돈을 아껴본다고 보험을 전혀 들어놓지 않았던 것이다. 


'제기랄... 어째 되는 것이 하나도 없냐... 죽는 것도 맘대로 안되니... 그나저나 무슨 돈으로 차를 고치지? 정말 없으니까 죽어라 죽어라 하는 구만... 

몸땡이 하나는 참 건실도 하다... 어떻게 그 큰 사고에도 가슴에 멍만 들고, 머리는 혹만 생기고 마냐.. 내 스스로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그 와중에도 경찰차가 도착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하마터면 음주로도 걸릴 뻔했으니까... (애구... 절대... 음주운전은 안되지....)


가락동 1급 정비소에 도착해 한 시간이 지나고 300만 원의 견적이 나왔다. 허걱!!! 미칠 지경이었다. 할 수 없이 알고만 지내던 선배에게 손을 벌리게 됐고 이후 원금과 이자를 갚고도 10년 동안 시달리는 계기가 되었다. 


'아구... 내 팔자야~!!!(ㅋㅋㅋ)'


© skeeze, 출처 Pixabay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저 웃음만 나온다. 그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덕분에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막대한 금전적 손해였다. 나의 젊은 날은 그렇게 좌충우돌하며 몸소 삶의 희로애락을 경험했던 것 같다. 좀 더 지혜로웠다면, 아니 지혜를 배웠더라면 인생의 험난한 비바람을 다 맞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젊은 날이 좋다. 삶의 밑바닥에서 시작한 나의 운명을 거부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길이었으니까.... 


오늘은 동이 트는 아침을 바라보았다. 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아침 햇살처럼 그렇게 나는 오늘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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