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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Jan 06. 2020

병상에서 부르는 노래

내 남자 이야기(46)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어느 날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않겠지요

서로가 헤어지면 서로가 그리워서 울 테니까요.


TV에서 방송하는 '가요무대'를 시청하며 흘러간 옛 노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따라 불렀다. 웬만한 50년대부터 70년대 노래를 다 알고 있는 나로서는 가요무대를 애청하는 것도 모자라 나오는 대로 따라 부르는 것이 아내 눈에는 마냥 신기한 듯하다.


아버지가 즐겨 불렀던 18번, '사랑은 눈물의 씨앗' 그리고 다음 앵콜 송이 '홍도야 울지 마라'. 나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와 함께 방을 쓰며 할아버지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를 늘 듣고 살았다. 그래서 동요보다는 성인가요가 더 머릿속에 기억이 확실했다. 그것도 아버지의 18번이 나의 애창곡이기도 했다.




기억의 단편/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나는 전학을 하게 되었다. 음악시간이 되어 선생님은 낯설어하는 전학생인 나를 반 아이들과 친하게 하고자 신고식처럼 노래를 불러보라고 제안을 했다. 아이들은 모두가 책상을 두드리며 좋아했다. 나는 숫기 없는 아이였다. 얼굴이 빨개지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를 아이들은 등을 떠밀어 앞으로 나가게 했다. 그리고 누군가 음악책에 있는 노래 말고 다른 노래를 불러달라고 소리를 쳤다.


나는 속으로 그 녀석을 향해 말을 했다

'나쁜 놈'


나는 잠시 고민하다 목소리를 내어 노래를 했다.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던 그 노래, 나의 애창곡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싸 해지면서 선생님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게셨다. 나는 그것도 모른 채 눈까지 감고 2절까지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70명이 앉은 교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야.. 저거 무슨 노래니?"

"눈물의 씨앗이 무슨 뜻이야?"

"쟤... 좀 이상한 거 아니야?"

"오~ 사랑? ㅋㅋㅋ 사랑 이래.."


여학생 남학생 할 것 없이 모두 한 마디씩 화살을 날렸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더니 나에게 물었다.

"너 이런 나쁜 노래, 누구한테 배웠니?"


'아니... 노래를 시킬 때는 언제고.... 이게 뭐냐.. 다.. 저 나쁜 놈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는 1년 내내 할아버지라고 불렸다.



병상에서 부르는 노래 /


아버지가 병상에 계신지 3달이 넘어가면서 모든 가족은 지쳐가고 있었다. 나 역시 다시 일어나실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서서히 식어갔다. 침상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팔과 다리는 굳어지기 시작했고 어깨와 허리, 엉덩이는 매일 씻기고 마사지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살결이 약해져 상처가 쉽게 생겼다. 욕창의 전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나는 답답한 마음을 안고 병원 앞 포장마차에서 어묵 한 꼬치에 쓴 소주를 마셨다. IMF 타격으로 정리된 사업은 전망이 없었고 아버지의 병세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저 눈앞이 캄캄한 암흑 같은 길고 긴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라도 마음을 털어내고 다시 병실로 향했다.


살며시 보호자 침상에 누우려는데 잠드셨던 아버지가 눈을 떴다. 나는 갑자기 건강하셨던 예전의 아버지 모습이 생각나 나무토막 같이 굳어가는 왼손을 잡고 귓가에 조그만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

나는 한 소절을 다 부르고 나서 앵콜을 외쳤다.

'앵콜~ 앵콜~"

그리고 다시 노래를 이어갔다.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너 혼자 지키려는 순정의 눈물

홍도야~ 우지 마라 오빠가 있다. 아내의 나갈 길을 너는 지켜라"


아버지의 18번 눈물의 씨앗을 이어 앵콜송 홍도야 울지 마라를 불렀다. 아버지의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 왜 울어요... 아빠... 빨리 일어나서 꼭 이 노래 다시 한번 불러주세요.."


볼을 타고 흐르는 아버지의 눈물을 닦으며 나는 그렇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을 잡고 침대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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