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성 고혈압

by 동그라미

저항성 고혈압


고혈압 약을 처방받기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녀오는 날

오늘따라 혼자만 병원에 보내는 게 미안해진다.

내가 병원에 갈 때는 언제나 동행하며 빠진 것 없도록 챙겨주는 남편은 정작 자신이 병원에 갈 때는 늘 혼자 다녀온다.


병원에 가기 싫어 그렇게 발버둥 치는 나를 기어코 정형외과 검사를 받게 하던 날, 무릎 위 고관절에 거대세포 종양이 발견되었다. 그 뒤로 끊임없이 병원에 들락날락 거리는 나를 언제나 케어해주며 동행하는 남편.


그러나 정작 자신이 병원에 갈 때는 늘 혼자 다녀온다. 그런 남편에게 오늘은 더 미안하다. 아직 추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는 모습이 그렇고, 식사를 못하고 나가는 발걸음이 그렇다. 적어도 내게는.


병원에서 고혈압 처방이 잘 듣지 않은 ‘저항성 고혈압’ 진단이 나왔다. 매번 실험적으로 신약을 처방받고 있지만 떨어지지 않는 혈압은 남편만큼이나 ‘똥고집’인가 보다. 그래도 의사 선생님은 어떻게든 남편에게 실험정신(?)을 발휘하고 싶은지 또 새로운 신약으로 처방했다. 이번에는 말 좀 들을라나? 자꾸 센 놈만 상대하다 보니 혈압도 자꾸 세지나 보다.


매일 혈압을 재고 기록한다. 묵묵하게 입을 다물고 혈압을 재는 모습을 볼 때면 왠지 더 말을 걸고 싶어 진다.

뭐해? 혈압 재? 오늘은 컨디션 어때? 화장실은 다녀왔어?


부처님 표정으로 앉았던 남편이 퍼붓는 질문에 열이 살짝 올라오는 듯. 나는 그 표정이 재밌다. 혈압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260/ 130 헐!! 증기관을 통해 뜨거운 수증기가 폭발하려는 찰나, 나는 냉큼 3층으로 도망쳤다. 아마 열을 가라앉히고 다시 혈압을 재고 있겠지.


남편은 요즘 따라 성품이 많이 누그러졌다. 화내는 일도 거의 없고 나의 실수에도 허허 웃어넘기는 대인배적 기질을 보인다. 나이가 들긴 했나 보다. 화가 날 때면 눈에서 올라오던 노란 불빛이 사라지고 고집쟁이였던 남편의 성품이 부드러워졌다. 그만큼 고혈압도 그만 저항을 버렸으면 좋겠다. 제발, 똥고집에서 말 잘 듣는 순한 양이 되어다오! 그래야 백세 시대를 함께 버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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