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미생물이 굶어 죽게 생겼다

by 동그라미

우리집 미생물이 굶어 죽게 생겼다.


와하하하


냉동고를 열어본 친구는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칸칸이 빼곡하게 들어선 1L짜리 음식물 쓰레기봉투 때문이다. 남편의 병적인 위생관념 덕분에 사계절 내내 냉장고는 음식물 쓰레기봉투로 채워져 있다. 실온에 두면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다며 꽁꽁 얼리는 것이 차라리 위생적이라는 주장이다. 그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냉동고 한 칸은 무조건 ‘그녀석’ 차지가 되었다.


마침 한동안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음식물 쓰레기봉투 세 개가 나란히 줄을 맞추어 놓였던 터. 친구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깔깔대고 소리 내어 웃는다.


야! 냉동고에 있어야 할 것들은 없고 쓰레기봉투만 있냐!!


사실, 우리집 냉장고는 가난하다. 텅 빈 냉동고에는 그날따라 덩그러니 ‘그녀석들’만 놓였더랬다. 둘만 살다 보니 건강식품이 냉장고 위 칸을 채웠고 쌀도 벌레 먹을까 봐 냉장고에 보관한다. 비좁은 냉장고에 채워진 침입자들 때문에 정작 채워져야 할 식료품은 설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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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이 시작되면서부터 마트에 나오기 시작하는 수박, 한여름 시원한 수박 한 덩이로 갈증을 비워내며 더위를 이겨내는 최고의 과일. 그런데 우리집에는 발을 들이지 못한 지 꽤 오래다. 왜냐구? 부피가 큰 수박껍질로 생기는 음식물 쓰레기 때문이다.


어느 땐가 수박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 냉장고에 시원하게 넣어둔 수박의 달달함이 무척 땡겼다. 마트에서 수박 한 덩이를 집어 카트에 넣고 돌아다녔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수박이 카트에서 사라진 것.


안돼! 음식물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와! 먹고 싶으면 친정에 가서 먹고 와! (헐.....)


수박도 맘대로 못 먹는 신세라니. 가련 타 못해 서럽다. 결국은 친정까지 가서 먹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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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까탈스럽게 음식물 쓰레기와 전쟁을 하던 우리집에 음식물처리기가 생겼다. 매번 생기는 음식물 쓰레기를 싱크대 거름망에 넣고 뚜껑을 덮어 갈아주는 방식으로, 물과 함께 음식물이 갈리고 나면 미생물에게 먹이가 되도록 관을 통해 흘러간다. 유심히 듣고 있으면 미생물이 무언가 먹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듯. 도로록 돌아가는 기계음도 가끔 들린다.


정말 간단한 기계조작은 물론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는 일상의 번거로움에서 해방되었다. 매 끼니 식사 때마다 생기는 쓰레기는 싱크대 속으로 드르륵 갈려 미생물 먹이가 된다. 그날부터 냉동고는 침입자가 나가고 있어야 할 것들로 채워졌고 음식물 쓰레기봉투도 사라졌다. 기분 좋은 변화다.


환경을 지켜내는 일에 조금이나마 동참하는 것 같아 자부심도 생기고 뿌듯하기까지 하다. 미생물의 먹이로 준다는 발상 자체가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미생물에게 먹이 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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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미생물이 굶어 죽게 생겼다.


워낙 음식을 가리지 않는 식성을 가진 데다 반찬을 많이 해서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일을 극히 싫어하는 우리는 딱 1~2가지 반찬으로 맛있게 식사를 한다. 어쩌다 맘먹고 밑반찬을 하기라도 하면 ‘왜 이렇게 반찬이 많아? 누가 다 먹어... ’라고 한 소리 듣는다. 남기는 것 없이 깨끗하게. 이미 몸에 밴 식습관은 언제나 싱크대 거름망에 넣을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다. 그렇게 사나흘 지나고 나면 불현듯 생각난다. 때로는 일주일이 되도록 음식물처리기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앗! 우리 미생물들... 벌써 사흘이나 굶겼다...


부랴부랴 냉장고를 뒤적여 오래된 반찬을 수거 처리했다. 냉장고 정리도 되고 미생물에게 먹이도 주고. 그래도 소량으로도 잘 버텨주고 있는 녀석들이 고맙고 미안하기도 하다. 요즘은 그나마 생색을 내고 있다. 제철 과일인 귤을 열심히 먹고 있는 중. 알맹이를 비워낸 귤껍질을 수시로 갈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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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탄소량으로 환산하면 885만 톤이라고 한다. 소나무 18억 그루가 흡수해야 사라지는 양이라고 하니 음식물 쓰레기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듯하다. 먹을 것이 풍부해지다 보니 음식에 대한 소중함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음식점에서도 테이블마다 버려지는 음식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 번 담은 음식은 다시 사용할 수 없기에 남은 음식들은 고스란히 쓰레기로 버려진다. 각 가정에서도 한 번 먹고 남은 음식을 두 번 상에 올리지 않는 가정도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은 음식물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먹지 않는다면 가차 없이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는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는 중이다.


아프리카에서 굶주림으로 힘들게 생명을 이어가는 어린이들을 돕자는 광고를 보면서 그 아이들에게 지금의 한국 사회 음식 문화를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누군가에게는 없어서 못 먹는 음식들인데 누군가에게는 먹다 남은 찌꺼기들이 되었다. 불공평하다. 그들을 후원하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적어도 미안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너무 풍요로운 식탁 대신 검소한 식탁을 선택하면 어떨까. 너무 많은 양으로 음식을 남기는 대신 먹을 만큼만 식사를 하면 어떨까. 지구촌이라는 작은 마을에 살면서 함께 나누지는 못해도 남아서 버리는 일은 멈춰야 하지 않을까.


우리집 미생물이 굶어도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생활습관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오늘도 김치통을 씻으면서 빨간 양념으로 먹이를 대신했다. 가끔씩 내려주는 먹이에 오히려 호강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 내가 누릴 수 있는 풍요로움에 감사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지구 반대편의 해맑은 눈망울에 미안하지 않도록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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