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 때문에 사실, 아픈 것도 아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2020년 12월 9일 수요일, 수술을 하루 앞두고 입원했다. 병실이 부족해 소아병동에 입원했다. 아이들을 위해 그려 넣은 뽀로로 캐릭터. 무겁고 칙칙한 병실을 그나마 활기차게 만드는 귀여운 그림이다. 지난번 입원 때와는 달리 창가 쪽으로 침대를 배정받았다. 기분이 좋다. 창가로부터 전해오는 밝은 기운이 그나마 병원의 아픈 기운을 상쇄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글을 쓴 덕분에 블로그에 올릴 글과 리뷰들이 차곡차곡 저장됐다. 예약을 하고 제시간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 블로그에 리뷰를 쓰면서 부쩍 개인적으로 체험을 원하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서조차 거절하는 습관이 잘 안 돼 있는 나, 아니, 욕심 많은 나는 메일이 오는 족족 리뷰를 신청한 까닭에 조금 빠듯하고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가끔 여유가 찾아오는 날이면 시간이 남는 것을 견디지 못해 다시 배고픈 하이에나처럼 일을 찾아 이것저것 리뷰 신청을 하고 있다. 못된 습관이다. 일 중독증에 걸린 것 같다. 그래서 강제 휴업당했다. 병원에 ‘꼼짝 마‘ 신세가 된 것. 앞으로 퇴원까지 약 3일 동안 허공을 바라보며 멀뚱거리거나 아니면 읽고 있는 책을 마무리해야겠다. 아니지. 노트북이 있으니까 못다 한 책 리뷰를 쓰거나, 영화를 봐야겠다. 여기서도 역시 못된 습관이 튀어나온다. 리뷰라니... 책을 읽고 글을 쓰겠다는 욕심이 또 발동했다. 못살아... 언제쯤 일 중독에서 빠져나올래?
그날도 오후 2시가 돼서야 책상에서 일어났다. 필요한 것을 챙겨 가방을 쌌다. 3일 동안 씻지 못할 걸 생각해 온 몸을 박박 문질렀다. 잠자리가 불편한 게 싫어 죽부인 베개와 폭신한 담요까지 챙기다 보니 한 짐이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가상한지 그저 웃기만 했다.
벌써 두 번째 입원, 남편과 한 번도 떨어져 지내본 적이 없었는데 올 해는 남편으로부터 떨어져 보라는 ‘신의 뜻대로' 그렇게 병실에서 보낸다. 남편에게는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처음 입원했을 때 악성종양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던 때보다는 한결 마음 편하게 병실로 향했다. 남편은 이것저것 자상하게 챙겨주면서 나의 곁을 지키며 무료하고 힘들 텐데도 내색 한 번 하지 않는다. 그런 남편이 옆에 있어 든든하다 못해 내내 즐거운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든다. 나에게 병원이란 휴식 공간 같다. 아픈 사람이 오는 게 아니라, 물혹이라는 핑계를 들어 쉬러 오는 느낌. 남편과 좀 더 색다른 공간에서 서로의 온정을 확인하는 이색 데이트하는 느낌.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이 웃긴다. 그래도 사실이니까. 아마 남편이 알게 된다면 이렇게 이야기하겠지..
“넌, 언제 콩깍지가 벗겨질래? 이제 그만 괴롭혀. 이것아!”
그러면서도 싫지 않은 웃음으로 털털대며 웃을 것 같다. 여하튼 강제 휴식시간이다.
입원한 날 자정부터 금식을 했다. 다음날 있을 오른쪽 나팔관 제거와 난소 혹 제거 그리고 그 옆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물혹까지 제거하려면 금식으로 속을 비워 놓아야 한다. 처음, 무릎 종양 수술을 앞두고 내내 속으로 ‘난 괜찮아, 아무 일 없어. 더 건강해진 모습으로 퇴원할 거야’ 주문을 외웠는데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태평천하다. 입원도 한 번 경험하고 나니, 그마저도 익숙해진 탓인가 보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병실 커튼이 항상 쳐진 상태로 각자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차라리 그게 편하다. 서로 안면을 트고 인사하는 것보다 그냥 개인적인 공간에서 편안하게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르신들은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해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이쪽에서 묻지 않아도 자신의 살아온 인생을 줄줄줄 수도꼭지 틀어놓은 듯 이야기한다. 그래서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아도 마냥 고개를 끄덕여주는 모양새가 피곤하다.
다음날, 맞은편 침대를 차지한 중년 여성은 아침 일찍 수술실로 들어갔다. 같은 주치의에게 수술을 받는데 그날따라 수술 대기 환자가 4명이나 된다. 나는 가장 마지막으로 수술실로 향했다. 오전으로 예상한 수술은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수술실로 들어갔다.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휠체어에 앉아 안내원의 인도에 수술방으로 향하는 기분이란. 떨리냐고? 천만에. 누군가 나를 에스코트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고 환자로 대우받는 느낌이 좋았다. 휠체어에 앉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경험을 또 언제 해 보겠어... 이 느낌, 처음 수술로 향할 때는 아예 침대 누워서 내려갔는데... 그보다 훨씬 안정적이라 편했다.
수술방은 여전히 낯설다. 그래도 처음보다 익숙한 때문에 차가운 수술대의 느낌을 음미하려 했다. 산부인과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심장박동기와 왼쪽 팔에 꽂혀있는 바늘을 통해 수액을 확인했다. 주치의 선생님도 미리 들어와 이것저것 체크하며 수술 경과를 한 번 더 설명해주며 안심을 시켜주었다. ‘네! 감사합니다!’ 씩씩하게 대답하고 곧이어 마취제가 들어왔다. 나는 마취제를 마시며 다짐했다.
꼭 깨어있어 볼 테다. 하나, 둘, 셋....
“환자분! 정신 드세요? 환자분!!, 이름이 뭐죠?”
“***”
입에서 뭔가 쑤욱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간호사의 질문에 이름을 댔다. 여기가 어디지? 난, 어디? 벌써 수술이 끝난 거야? 분명 하나 둘 셋까지 셌는데...
컥컥! 목에 넣었던 호흡기를 뺀 것을 알아채고나니 목이 컬컬하고 쉰소리가 났다. 목구멍이 스크래치가 난 듯하다. 잠시 주의사항을 듣고 난 후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썼다. 졸음이 쏟아지는 탓에 자꾸 눈을 감으려 하자 간호사들이 졸지 말라며 이름을 불러댔다.
그래. 정신 차리자. 수술이 금세 끝났네. 시간이... 오후 3시 30분을 넘고 있구나.
내려갈 때와는 달리 수술실로 올라갈 때는 침상에 누워서 이동했다. 병실도 일반 6인실로 이동했다. 제법 피를 쏟아냈는지 수술복은 피가 묻어있었지만 그래 대수롭지 않았다. 원래 그런 거니까. 그래도 수술 중 수혈까지는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전혀 성별도 모르고 특성도 모르는 남의 피를 받는 것보다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다. 밥을 먹어도 되겠지? 배가 무척 고팠지만 그날 저녁 11시가 돼서야 늦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나의 철칙. 아플수록 밥은 잘 먹어야 한다. 그래야 밥심으로 빨리 건강해지고 회복될 수 있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평소보다 더 맛있게 남김없이 잘 먹는다. 요즘 병원 밥은 정말 맛있다. 나만 그런가? 다들 밥을 남기긴 하던데.... 남편과 나눠 먹는 병원밥은 언제나 푸짐하다. 주변에서 손을 대지 않은 밥을 덜어주기도 하고 입맛이 없는 환자들이 남편에게 먹으라고 권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진수성찬으로 병원 밥을 먹고 나면 퇴원할 때는 몸무게가 1~2kg 늘어있다. 여하튼, 병을 빨리 털고 일어나려면 밥을 잘 먹어야 한다.
그렇게 병실에 있는 동안 어떤 사연으로 병실에 입원했는지 각자의 사연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10월에 병원에 들어와 12월 중순이 넘도록 입원한 암환자 여성은 항상 비니를 쓰고 있거나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는데 방사선 치료 때문에 다 빠져버린 머리를 가리기 위해서다. 깊은 밤이 되도록 고통에 시달리며 자리에 쉽게 눕지 못하고 앉아서 밤을 지새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고통은 밤이 되면 더욱 무겁게 내려와 혼자서 안간힘으로 버티며 싸워야 하는 존재였다. 화장실을 드나들며 불이 꺼진 병실을 지날 때마다 침상에 앉아 고개를 숙인 모습에서 그녀의 고통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병실 환자들과 정겹게 이야기하고 바로 옆자리에 있는 나에게도 살뜰한 인사를 건네며 인정을 베풀었다. 아프다고 간호사들을 귀찮게 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고통을 참으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길 좋아했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날 퇴원했다. 통원치료를 위해 오빠 집으로 들어간다며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해맑은 웃음을 보여주었다.
그래, 나도 3일 만이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최고인데, 얼마나 집이 그리웠을까. 부디, 건강하게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래요...
그러나 그날 아침은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오른쪽 침상에 계셨던 할머니가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다급하게 중환자실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수발을 들던 할아버지는 간호사들의 다급한 움직임에 무언가 느낌이 들었는지 자녀들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으로 호출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마지막 임종을 준비하려는 듯했다.
수술을 하고 병실을 옮기던 날, 할아버지는 유난히 큰 목소리로 할머니 옆에서 간호를 하고 계셨다. 병실의 다른 환자는 물론, 간병인들까지도 일일이 챙기며 인사를 하는 할아버지. 어디 가나 그런 분이 한 명씩은 있나 보다 생각했다. 좀처럼 조용해지지 않는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다소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할머니를 보살피는 지극정성에 마음 한편이 짠하기도 하고 따뜻해져 오기도 했다. 우리 부부가 나이 들면 꼭 저렇겠지? 가끔은 할아버지의 큰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욕설에 소리도 못 내고 웃기도 했다.
“ 이 할망구야, 내 말 들어! 이 약을 먹어야 빨리 낫지. 빨리 나서 집에 가자.”
“ 내 말 잘 들으면 빨리 낫고 안 들으면 빨리 죽는 거야. 아~ 입 벌려, 입 벌리라구!”
“썅! 너 왜 그래! 맞을래? 으규 으규.... 아... 옳지 옳지. 잘했어. 진작 말 들었더라면 화도 안 내지.”
약을 삼키지 못해 입에 머금고 있는 할머니가 안타까우셨는지 억지스럽게 먹이려 애를 쓰는 할아버지. 그 가운데서 화가 치밀어 올라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욕설에 당황하셨는지 잠시 침묵으로 무마하셨다. 그렇게 식사 때마다, 약을 먹일 때마다 전쟁을 치르고 계셨지만 병상에 누워있는 아내가 하루속히 완쾌돼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어느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계셨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이틀째, 할머니는 누운 채로 계속 용변을 보셨다. 의식이 없는 듯. 항문은 힘없이 자꾸만 용변을 내보내고 있었다. 나는 참다못해 밖으로 피신해 있다가 약 30분이 지난 후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용변을 해결하지 못한 채 진행 중이었다.
윽! 정말 참기 힘들다. 이건 또 뭠미.... 정말 병실 하나 제대로 들어왔네, 그려...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남편에게 참다못해 전화를 했다. 남편은 카톡을 통해 이미 한 차례 상황을 보고 받은 상태여서 지금의 이 상황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짚어 주었다.
“아. 내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은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를 텐데 말이야. 할머니가 이미 항문이 열려있는 거야. 태변까지 다 쏟아내시는 모양인데. 임종 준비를 해야 할 상황이야. 아마 곧 돌아가실 것 같은데....”
남편의 말대로 다음날, 할머니는 자신의 생을 마감할 준비를 마치고 계셨다. 좀 더 일찍 알아차렸더라면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작별을 고할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지 않았을까. 약을 먹지 않는다고 윽박지르는 대신, 당신의 삶을 회고하며 아름다운 인사말로 대신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멀리 있는 자녀들이 함께 하며 잠시나마 의식이 있을 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을 텐데.
경험하지 않았기에 몰랐던 삶과 죽음의 경계. 할머니의 신체는 땅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며 몇 가지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혈압이 떨어지고 의식이 몽롱해지고 헛것을 보기도 한다. 그리고 태변이 물 흐르듯 쏟아져 나온다면 이제는 흙으로 돌아갈 시간이 머지않았다는 신호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함께 동고동락하며 살아오셨을 두 사람. 이제 한 사람은 남고 한 사람은 돌아간다. 꼭 나아서 집으로 가자던 할아버지의 외침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그렇게 갑작스럽게 맞이하는 이별 앞에 얼마나 힘드실까. 아마 당시에는 아무 느낌조차 들지 않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차츰 올라오는 슬픔과 아픔이 뼛속까지 깊게 스며들 것이다. 그때는 눈물이 나올까? 통곡 소리마저 숨을 죽이고 고통의 골짜기에 갇혀 어둠 속으로 잠식당할 것만 같다.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자꾸만 힘이 없이 작아지는 소리에 한동안 귀를 기울였다.
부디, 건강하시고 너무 슬퍼하지 않으시길...
병실을 나서면서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바라본다. 일일 교대하는 간호사들은 보살필 환자들의 차트를 확인하고 새벽까지 피곤함을 이기며 병실을 돌아보던 간호사들은 퇴근을 고하고 있다. 난소를 하나 제거하고 혹을 떼어낸 환자는 수술 이틀 후 멀쩡한 걸음걸이로 병실을 나서고 아직 병실에 남아 있는 환자들은 또 하루를 버티기 위해 아침 식사를 한다. 누군가 누워있던 침대는 비워지고 새로운 시트가 깔리면서 병실로 들어오는 환자의 차지가 될 것이다. 방금 전까지 함께 했던 한 사람은 가고 그 곁에 있던 한 사람은 또 삶을 살아갈 것이다.
삶은 그렇게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길 반복하며 무한한 굴레를 굴러가는 수레바퀴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을 만나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한평생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먼저 삶을 마감하는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마지막 생을 잘 마무리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한 날 한 시에 잠자듯 가는 거야. 알았지?"
"웃긴 소리 하지 마. 너 먼저 가. 한 달 뒤에 따라갈게. 그래야 너 가고 남은 뒷정리를 하지. 그리고 내 남은 뒷정리도 하고. 그러니 함께 간다는 말은 집어치워."
아무래도 한날한시에 죽는다는 건 확률이 낮을 것 같다. 매일 기도할 수도 없고. 그래도 기도하면 들어주지 않나? 아주 작은 바람이지만 생각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은 남는다. 그래서 그 남는 사람을 위해 슬픔이 깊지 않도록, 좋은 것만 생각하도록, 충분히 사랑받았다고 말할 수 있도록 그렇게 사랑하기로 하자. 갑작스러운 이별로 하지 못한 말이 남지 않도록 매일 마음껏 사랑한다고 말하자. 싫으면 싫다고, 좋으면 좋다고 마음껏 이야기하고 살자. 가슴에 담아두고 하지 못했던 말을 소주 한 잔에 실어 하나씩 흘려보내자. 언젠가 당신이 나를 떠올릴 때, 아련한 아픔보다 그 친구와 살아서 참 좋았다, 참 행복했다 미소로 떠올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