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인 거절

갱년기 부부, 그들의 사는 이야기(01)

by 동그라미

삑! 삑!

국민카드 승인 거절. 한도 초과


삑! 삑!

삼성 카드 승인 거절. 한도 초과


연거푸 세 번에 걸쳐 카드 한도 초과 메시지가 뜬 후에야 마지막 카드에서 정상 결제됐다는 안내를 받았다.


휴... 다행이다.


오늘 하루 주유소에서만 1500만 원을 결제했다. 밀린 외상값이 1억에 가까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오늘은 양반이다. 한 달 30일 가운데 각종 결제일과 직원들 월급을 주는 날까지 합하면 꼬박 20일 동안 돈과 사투를 벌인다. 거래처에서는 수금을 제 때 해 주기는 커녕 2~3달이 지나서야 찔끔찔끔 간보기 식의 결제를 하는 통에 소상공인의 주머니는 날로 가난해지고 있다. 더욱이 결제일이 하루라도 밀리면 득달같이 청구 전화를 하는 카드사의 협박성 엄포에 남편은 흰머리가 늘고 팔자 주름이 깊어진다.




에잇. 이러다 대한민국을 떠나든지...


어느 날인가. 소주 한 잔을 단숨에 털어 넣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사 오더니 김치찌개가 든 냄비를 통째 식탁에 올려놓고 안주삼아 먹으며 툭 내뱉은 말. 그 안에는 온갖 고민과 상념들이 한가득 들었다. 또르륵! 잔에 채워지는 맑은 소주를 한 입에 털어 넣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나도 한 모금 털어 넣었다.


달다. 왠지 모르지만 달다. 눈물이 날 것처럼 달다.

그날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남편은 쓴 소주를, 나는 단 소주를 들이켰다.


많은 말들을 주고받았다. 힘든 내색 없이 지금까지 허허거리던 얼굴에는 웃음기 없는 맨얼굴이 드러났다. 건설경기가 좋았던 때를 떠올리며 노동자 천국이 되어버린 지금의 현실과 견주어 하루라도 빨리 업종을 정리하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지옥 같은 마음의 덫에서 해방받고 싶다며. 그러나 현실은 이마저도 우리에게 여유를 허락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버텨보자구. 이 대한민국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남편이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우리 밥 먹으러 갈까?

한시름 돌린 남편은 그제야 마음의 여유가 생긴 모양이다. 좀 전 내가 보았던 남편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 자락이 하나 더 늘었다.


벌써 15년 차에 들어선 펌프카 사업. 건설경기 불황에 자금난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고 있다는 말이 남편에게 딱 맞는 표현이다. 오늘도 주유소 결제 때문에 카드를 긁었지만 한도 초과라니. 망신살로 인사를 대신하고 주유소 문을 나섰다. 그나마 원금의 30%를 까고 겨우 한 달을 버틸 구실을 얻었다. 다음 달은 또 어떻게 넘어갈까,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한 남편의 얼굴을 슬쩍 곁눈질하고선 시속 200km의 속도로 그의 기분을 전환할 소재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의 허탈한 마음을 위로해 줄 말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이럴 때는 맞장구라도 잘 쳐줘야지.

와~! 그래! 마침 배고팠는데,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어때?


남편은 그저 엷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부부란 말없이 곁에서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힘을 불어넣어주는 존재다. 함께 한 세월만큼 서로의 눈빛만 봐도 어떤 기분인지를 아는 사이. 그래서 굳이 위로의 말이 필요 없는 사이. 때로는 침묵이 어떤 말보다 가치를 갖는다.


차를 몰고 가는 동안 나는 조용히 그의 옆자리에서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다음에는 한도 초과되지 않고 한 번에 긁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