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게재, <나이팅게일> 영화평
무질서의 시대였다. 힘이 곧 정의였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소유물이 되고 팔려나가고 강간당하며 죽임을 당해도 문제 삼지 않았다. 1852년, 지금은 대자연이 숨 쉬는 관광지로 알려진 호주 태즈메이니아 이야기다.
당시까지만 해도 호주엔 원주민이 있었다. 1788년 호주 초대 총독으로 임명된 영국 장교 아서 필립이 죄수 759명과 그의 선단을 이끌고 도착했을 당시, 호주엔 최대 75만명으로 추산되는 원주민이 살았다.
무려 4만년 이상 호주에서 살아온 애버리진(Aborigine)은 영국인과 함께 들어온 전염병과 성병, 탄압으로 거의 절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는다. 특히 태즈메이니아 지역 애버리진은 사실상 멸종했다.
1852년은 영국이 호주를 식민지로 선포한지 82년, 정착한 지 64년째 되던 해다. 영국의 식민지배가 안정화되고 애버리진은 영국 지배체제에 종속된 지 오래다. 영국인이 호주에 발을 디디기 이전을 기억하는 애버리진은 남아있지 않다.
나를 짓밟고 남편과 아이를 죽인 자
<나이팅게일>은 이 시기 태즈메이니아에서 벌어진 비극에서 시작한다. 아일랜드 출신 클레어(아이슬링 프란쵸시 분)는 영국군 중위 호킨스(샘 클라플린 분)에게 매인 신세다. 호주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려면 그가 내주는 통행증이 필요한데 호킨스가 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클레어는 아일랜드 출신 죄수다. 죄수들은 다른 식민지로 보내는 영국 정책에 따라 호주로 보내졌다. 독립전쟁 이전이라면 미국으로 보내졌겠으나 독립을 선언한 미국은 영국 죄수를 받길 거부했다.
형기를 마친 클레어는 역시 아일랜드 죄수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둘 사이엔 어린 딸까지 생겼다. 불행은 일순간 다가왔다. 호킨스가 강제로 클레어를 취하고 통행증을 내주는 것도 거부한 것이다.
남편이 호킨스를 찾아 통행증을 요구한 바로 그날 밤에 사달이 난다. 호킨스는 다른 장교와 병사를 데리고 클레어의 오두막에 들이닥친다. 그날 밤 클레어는 남편이 보는 앞에서 강간을 당한다. 남편과 아이는 끝내 목숨을 잃는다.
아이 잃은 어머니와 터전 잃은 애버리진
이후 클레어의 복수를 위한 여정이 이어진다. 클레어는 총 한 자루를 매고 남편이 남긴 유일한 유산인 말 베키 위에 올라탄다. 북부로 떠난 호킨스 뒤를 쫓기 위해서다. 길잡이로 애버리진 빌리(베이컬리 거넴바르 분)를 앞세운다.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여기부터다. 죄수 출신이자 아일랜드인으로 기댈 곳 없어 보이던 클레어가 빌리에겐 더없이 매서운 상관이 되는 것이다. 별다른 이유 없이 빌리에게 총구를 겨누고 사나운 말도 서슴지 않는다.
여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사건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애버리진은 보이는 족족 죽거나 맞거나 강간당한다. 쇠로 된 수갑을 차고서 길을 내는 공사에 동원된다. 죄수출신일 게 분명한 백인 감시자는 장총을 들고 곁에 서 이야기나 할 뿐이다.
그저 지나가다 잡혔다는 애버리진들은 단지 떠들었다는 이유로 총을 맞는다. 아이와 함께 숲을 지나던 여성은 수레에 묶여 성노리개가 된다. 어린 아이는 숲에 홀로 남겨진다.
애버리진은 무참히 짓밟힌다. "여긴 원래 우리 땅이야"라는 빌리의 부르짖음도, 다른 이들의 저항도 몇 발 총성에 잠잠해진다. 영국인들은 아일랜드인들을, 백인들은 다시 애버리진을 학대한다.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선을 긋고 깔아뭉갠다.
인간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가
영화의 승부수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무법천지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일랜드 죄수 출신 여성은 애버리진이 느끼는 위협과 공포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클레어 앞에 펼쳐진 애버리진의 현실은 남편과 아이를 잃은 그녀의 고통과 견줘도 결코 못하지 않다.
제니퍼 켄트 감독은 호주에서 있었던 폭력을 꺼내 이 시대 관객 앞에 적나라하게 펼쳐든다. 이 땅이 이런 잔인함 위에 세워졌다고, 모두에게 마땅한 책임이 있다고 부르짖는다.
켄트는 한 발 나아가 그럼에도 어디서 인간성을 찾을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클레어와 빌리 사이에 피어나는 유대와 빌리를 식탁 위로 끌어올린 사내로부터, 인간다움이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조명하려 한다. 그 시도가 성공적이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시도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다고 적는다.
호주에서 일어난 비극은 스페인의 중미와 남미 원주민 학살, 미국의 북미 원주민 학살 못지 않은 피해를 일으켰다. 특히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이나 북미의 아메리카 원주민과 달리 조직적 저항을 하지 못한 탓에 최소한의 조약도 맺지 못하고 일방적인 학살을 당했다.
현재 호주에 사는 애버리진은 18세기 이전 인구수에도 미치지 못한다. 태즈메이니아 등 일부 지역 부족은 아예 씨가 말라버렸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용기
호주에선 애버리진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19세기 말부터 1972년까지 이뤄진 원주민 개화정책은 현실정치에서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당시 호주 정부는 애버리진 아이들을 부모와 강제로 떼어내 백인 가정으로 입양시켜 길렀다. 이른바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다.
1990년대부터 이들에 대한 국가적 사죄 요구가 일기 시작했고 케빈 러드 행정부가 2008년 2월 처음으로 공식사과를 했다.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도 이뤄져 일부 승소판결을 받기도 했다.
2006년 태즈메이니아를 시작으로, 2015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2017년 뉴사우스웨일즈 주가 각각 배상금을 책정해 도둑맞은 세대 피해자들에게 보상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호주 연방정부는 여전히 충분한 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애버리진에 대한 사과와 별개로 금전적 보상을 하는 데는 반대여론이 더 높게 나오는 형편이다. 텅 빈 해변에 도착해 비명처럼 내지른 빌리의 외침을 바라본 호주인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가 나는 몹시 궁금하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