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게재, <제이티 르로이> 영화평
거짓 속에도 진실이 있다. 그저 있는 정도가 아니라 때로는 거짓이 사실보다 더 진실하기도 하다. 영화와 소설도 그렇지 않은가. 스크린 위와 책장 안에 갇힌 허구의 세계일뿐이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인생을 바꿔낸다. 아름다운 일이다.
<제이티 르로이>는 진실과 경계를 오간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고, 소재가 된 이야기조차 진짜와 가짜가 뒤섞이고 어우러져 가려내기 어렵다.
우선 실화는 이렇다. 때는 2000년, 미국에서 자전적 소설 <사라Sarah>가 출판된다. 작가는 J. T. 르로이라는 소년이었다. 웨스트 버지니아 출신인 그가 매춘부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온갖 고난을 겪어낸 이야기를 제 목소리로 담은 것이다.
충격적이고 진실한 내용이 화제가 돼 소설은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위노나 라이더, 코트니 러브, 루 리드 같은 유명인들까지 공공연히 르로이에 대한 팬심을 드러낸다. 철저히 신비주의를 고수하던 르로이는 결국 미디어 앞에 제 모습을 드러낸다.
6년이 지난 2006년, <뉴욕타임스>가 특종을 보도한다. 르로이가 진짜가 아니란 사실을 밝힌 것이다. 르로이는 작가 로라 알버트가 창조한 가상의 인물이고, 현실 속에서 르로이 역할을 한 건 알버트의 시누이 사바나였다.
모두를 감쪽같이 속인 이 이야기는 소설보다 더 큰 파문을 일으켰다. 영화화되는 건 기정사실이 됐다.
가짜 속에서도 진짜가 싹튼다
로라 던이 알버트를,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사바나를 연기한다. 알버트는 가짜 인물을 창조하고, 또 다른 누구에게 그 가짜 인물을 연기하도록 한다. 사바나는 가짜 인물의 가짜 삶을 진짜로 살아가며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거듭 넘나든다.
가짜가 가짜로만 남지 못하며 문제가 생겨난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저 스스로도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르로이는 소설 속 인물로만 존재할 수 없다. 사바나의 삶도 변화한다. 르로이가 사바나의 삶에 들어와 그를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뒤바꾼다.
이 모두를 지켜보는 알버트 역시 온전할 수는 없다. 때로는 제가 만든 인물을 질투하고 두려워하며 초조해한다.
진짜가 가짜를 연기하는 순간, 새로운 진짜가 태어난다. 르로이가 움직이고 말을 하며 주변의 것들도 영향을 받는다. 영화는 던과 스튜어트 두 사람의 변화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두 인물이 느끼는 아주 작은 감상에도 커다란 관심을 할애한다. 두 배우의 내공이 유감없이 발휘돼 그대로 알버트와 사바나처럼 느껴질 정도다.
르로이는 할리우드 극작가와 만나고, 영화감독과도 친분을 쌓는다. 점차 단순한 친분을 넘어서고 르로이로서 애정하고 욕망하게 된다.
다른 이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가 겪는 미묘한 감상은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제 실제 삶보다 더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는 가짜 삶은, 그러나 매번 집으로 돌아오기 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저는 르로이처럼 글을 쓸 수 없고, 르로이의 기억과 경험도 갖고 있지 못하며, 무엇보다 매 순간 거짓이어야 한다는 걸 안다.
어느 순간 제 삶이 하찮아 보이고 진짜가 아닌 것만 같다. 거짓을 말할 땐 모두가 환호하지만 돌아오면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인생, 어느 누가 선뜻 포기할 수 있을까.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특유의 섬세함으로 르로이와 사바나를 오가며 겪는 혼란스런 심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제이티 르로이>의 차별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적잖다. 인물들이 느끼는 감상과 배우들의 표현을 넘어선 무엇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르로이의 화제성과 이슈토픽적인 이야기를 넘어선 감상과 깨달음은 영화 어디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팬들의 박탈감과 문단의 충격은 영화의 주요한 고려대상이 아닌 것처럼도 보인다.
1882년 출간된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가 보여준 이상과 현실의 괴리, 적절한 현실풍자를 2020년에 제작된 이 영화가 한 뼘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단순히 실화를 재구현하는 걸 넘어 영화가 지금 만들어져야만 하는 의미를 스스로 증명하지 못했다는 건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