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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Nov 21. 2024

임신 공포 담은 '기괴한' 애니메이션, 아쉬운 건

오마이뉴스 게재, <클라이밍> 영화펴

[김성호의 씨네만세 329] <클라이밍>


애들이나 보는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겐 생소하겠으나, 애니메이션은 공포물에 최적화된 기법이다. 이유는 간명하다. 실사영화에선 좀처럼 구현하기 어려운 효과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캐릭터의 외모와 움직임에서부터 인간과 동떨어진 이질감을 즉각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실사라면 좀처럼 시도하기 어려운 자극적 장면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내는 것도 가능하다. 일본과 미국 등에서 공포 애니메이션이 흥하는 이유다.


한국에도 공포 애니메이션이 없는 건 아니다. 웹툰이 인기를 끌며 공포 웹툰 장르도 일찌감치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토 준지 류의 기괴한 공포만화가 큰 인기를 누린 나라답게 국산 공포 만화 시장도 제법 넓어졌다. 개중에선 웹툰을 원작으로 <아파트> <0.0MHz> 같은 실사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실사가 아닌 공포 애니메이션은 한국에선 이제 막 발을 뗐다고 봐도 좋다. 간간이 작품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2020년작 <기기괴괴 성형수>, 이제 막 개봉한 <클라이밍> 등 제법 공들여 만든 공포 애니메이션이 연달아 개봉한 건 한국 영화계에서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특히 <기기괴괴 성형수>는 코로나19 국면 가운데서도 1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들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전성시대가 머지 않았음을 알리기도 했다.

 

▲클라이밍포스터(주)트리플픽쳐스

 

부담을 안고 암벽을 오른다


<클라이밍>은 상당한 기대감을 안고 개봉했다. 기대의 다른 이름은 부담이다. <기기괴괴 성형수>가 이룬 성취를 다음 작품이 이어받을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의문에 정면으로 대항해야 한다. 뿐만 아니다. 웹툰 원작을 갖고 있었던 <기기괴괴 성형수>와 달리 순수 창작 애니메이션에 대한 의문점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영화는 제목처럼 클라이밍 선수의 이야기다. 실내 암벽타기 운동을 가리키는 클라이밍은 한국에선 김자인 선수가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대중화됐다. 영화와도 관련이 깊은 것이 클라이밍 동아리 출신 남녀가 주인공으로 나온 2019년작 <엑시트>가 크게 흥행하며 클라이밍을 실내체육 운동 중 하나로 널리 알렸다.


이미 잘 알려진 운동이다 보니 별도의 설명도 필요가 없다. 영화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클라이밍 선수 세현의 이야기다. 베테랑 선수인 세현은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클라이밍 대회를 앞두고 압박감에 시달린다. 매섭게 뒤 따라 오는 후배가 있고, 경기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문제도 있다. 특히 세 달 전 교통사고를 겪은 뒤로는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애인과 동거 중인 세현에겐 임신도 큰 부담이다. 대회를 앞두고 자칫 아이라도 생기면 자신의 커리어가 완전히 무너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는 것이다. 단 100g 몸무게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클라이밍에서 임신은 감당하기 어려운 변화다.

 

▲클라이밍스틸컷(주)트리플픽쳐스

 

부담은 강박이 되고, 강박은 공포에 이른다


영화는 세현의 부담이 강박이 되고 다시 공포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다. 쫓아오는 후배와 임신에 대한 부담이 구체적으로 시각화돼 공포로 다가오기까지 기이한 설정 여럿을 끼워 넣는다. 그 과정에서 아들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시어머니와 코치에게 이성적으로 다가서는 후배의 모습 등 익숙한 설정도 여럿 등장한다.


여자 엘리트 운동선수의 이야기로 공포물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조슬예 감독의 <디바>를 떠올리게 하는데, 여기에 더해 시어머니와의 관계와 임신에 대한 공포를 삽입한 점이 특징적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 모든 설정이 기존 여성을 내세운 공포물에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진부한 소재란 점이다. 임신에 대한 공포, 임신한 아이를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 며느리가 임신한 아이에 집착하는 시어머니, 손자에게 아들을 투영하는 할머니, 뒤따르는 후배선수를 경계하는 선배, 그 후배가 권위 있는 남성에게 성적 매력으로 어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여자 선배 등의 모습은 굳이 <클라이밍>이 아니라도 접하기 쉬운 설정들이다.

 

▲클라이밍스틸컷(주)트리플픽쳐스

 

더 새롭고 치열했어야 했다


<클라이밍>은 내적으로 새롭다는 인상을 주기 어렵다. <여고괴담>의 스포츠판, <디바>의 클라이밍 버전, <올가미>의 판타지 에디션 정도로 취급돼도 반박하기 어려울 정도다. 장면 장면의 특색은 있지만 집중하는 큰 얼개가 모두 익숙한 것뿐인 탓에 보는 이로 하여금 새롭다는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술력이 각별히 훌륭하지도 않다. 정밀한 3D효과를 강점으로 내세우지만 이미 한국 관객들은 할리우드의 3D 애니메이션이 어디까지 나아갔는지 생생히 알고 있는 것이다. 암벽 등반을 하는 선수들의 손동작부터 캐릭터의 움직임과 표정, 몇 안 되는 야외장면인 북한산 등정신에서 단점은 더욱 역력하게 드러난다.


돌아보면 <클라이밍>이 나아갈 방향은 내적 완성도를 높이는 길 뿐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공포와 질투, 두려움과 같은 감정을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데서 멈추고 말았다.


정식 개봉하는 창작 애니메이션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장편 작품을 발표한 김혜미 감독의 열정은 높이 산다. 그러나 그녀에게 다음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면, 그 도전엔 단순한 열정을 넘어선 가치가 있어야만 할 것이다.

 

▲클라이밍스틸컷(주)트리플픽쳐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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