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게재, <열아홉> 영화평
그런 뉴스를 볼 때가 있다. 충격적인, 해괴한,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기괴하고 무섭게 느껴지는 이야기들. 아이들이 굶어서 죽고,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고, 젊은 청년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 따위가 그렇다.
그런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며 '요즘 세상에 아직도 저런 일이 있다니'하고 말한다. 마치 제 주변에선 벌어질 수 없는 일인 것처럼.
여기 한 소녀가 있다. 제 힘으로 세상으로 나오기엔 역부족인 열아홉 소정(손영주 분)이다. 소정은 어머니와 함께 산다. 술을 마시고 어머니를 두들겨 패기 일쑤였던 아버지는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기침을 달고 산다. 천식으로 숨을 쉬기도 어렵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드물다.
소정은 음악을 하고 싶다. 어쩌면 그저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울타리 너머 다른 아이들처럼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그러다 훨훨 날아가고 싶다.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하지만 소정의 현실은 흔한 말처럼 '시궁창'이다. 보기에도 고약하고 냄새까지 배는 시궁창이다.
특성화고에 다니는 소정은 졸업 전 아이스크림 공장에 취업한다.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보관하고 정리하는 잡일이 소정의 몫이다. 실습생인 소정이 약속과 달리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다고 항의하자 사장은 "그럼 아이스크림을 더 넣어줄게"하고 말한다.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영화는 열아홉 소정에게 닥친 위기를 다룬다. 흔한 어려움이 아닌 뉴스에 나올 법한 충격적인 고난이다. 소정이 스스로 선택했지만, 결코 혼자 선택한 것만은 아닌 도시괴담이다.
영화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 우리 곁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음을 설득하려 한다. 소정의 엄마가 죽고, 소정은 엄마의 시신을 치우지 못한다. 시신을 치우면 임대아파트에서 쫓겨나 아빠에게 갈 거란 두려움이 소정을 막아선다. 소정이 사는 곳은 낙후된 임대아파트고, 동사무소 직원을 제외하면 누구도 다른 누구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곳이므로. 또 졸업까지 조금만 버텨내면 성인이 될 수 있으므로. 소정은 충분히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을 감출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소정은 공장에 가서 일을 하고 퇴근할 때마다 드라이아이스 몇 개씩을 훔쳐 집으로 돌아온다. 청테이프로 방문을 막아 악취가 퍼지는 걸 막는다. 그러고도 부패를 막지 못하자 할 수 있는 건 고작 웅크리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것뿐이다.
19살 여고생에게 다가온 절망
우경희 감독은 첫 장편 <열아홉>을 통해 감독이 청소년기를 보냈을 10여 년 전을 배경으로 한 여자아이의 극단적 성장기를 그린다. 찌든 때처럼 끈덕지게 붙어 있는 가난으로부터 교통사고처럼 단박에 찾아온 절망까지를 힘겹게 다룬다.
MP3와 싸이월드 미니홈피 같은 시대적 설정을 적극 활용해 지난 시대의 감성을 자아낸다. 낯선 배우들의 풋풋한 연기는 어색함을 지우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극에 얼마간 설득력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 시대 청소년치고 어른들의 세계에 능숙하게 적응할 이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극단적 설정은 영화의 승부수이지만 지나치게 자극적이어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사회적 문제를 헤집고 결함을 집어낼 역량을 지니지 못한 탓에 그저 개인의 감정과 심리에만 집착한 점도 아쉽다. 혼란과 방황, 가난을 비추는 데는 성공했으나 주어진 87분의 시간은 그 이상에 도달하기 충분한 것이었단 점에서 느슨한 문제의식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저 가난하고, 소외됐으며, 방황하는 청춘을 그렸다는 것만으로 박수를 치기엔 한국 영화예술이 흡수하고 있는 사회적 자양분이 차고 넘친다.
소외된 것을 비추어 보지 않는 이들의 관심을 이끌려는 집념이 영화의 몇 안 되는 미덕이었음을 기록한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