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게재, <식물카페, 온정> 영화평
"사람도 분갈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배경은 한적한 식물카페다. 테이블 몇 개가 자리한 작은 공간에 살아있음을 한껏 알리는 녹색 식물들이 가득 자리했다. 과묵한 주인사내 현재(강길우 분)가 카페를 찾는 손님들을 맞는다. 그들이 가져온 저마다의 사연을 감당한다.
개중 한 손님이 있다. 오랫동안 준비한 공무원 시험을 포기한 20대 여자다. 그녀가 길고 어두운 시간을 함께 한 산세베리아 화분 하나를 들고서 식물카페를 찾았다.
빛도 잘 들지 않는 책상에 몇 년을 두었는지, 산세베리아는 무관심에도 제법 몸을 키웠다. 화분이 좁다고 시위하듯 아우성치는 녹색 생명체를 마주한 주인장은 무심하게 분갈이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통풍이 되는 토기와 되지 않는 플라스틱 화분이 있다고, 자기는 토기를 추천한다고 말한다.
주인장이 화분 하나를 둘로 나누는 동안, 손님은 주인장이 내준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숨을 돌린다. 저마다 귀한 생명 가득한 식물카페에서 쉼을 찾아오는 시간이다.
화분이 비좁다면 자리를 옮겨야 한다고
<벌새>로 주목받은 배우 박수연이 산세베리아의 주인을 맡아 연기했다. 그녀가 말한다.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공무원 시험을 접기로 결심하고서 집을 비우는데 책상에 덩그러니 놓인 산세베리아가 눈에 들어왔다고 말이다. 제 삶도 지탱하기 버거워서 돌보지 못했는데 어느 사이엔가 화분이 좁게 몸을 불리고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분갈이한 화분 두 개를 들고 나가는 그녀 뒤에서 현재가 읊조린다. 사람도 분갈이가 필요하다고.
나는 지난 수년 동안 몸담았던 회사를 이제 막 나온 참이다. 기약 없는 백수생활이 예고 없이 열렸다. 오랫동안 매일 출근해서 늘 하던 과업을 하고 살았는데, 나도 모르는 새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이 트였던가 보다. 어느 순간, 회사가 움직이는 방식과 방향이 마음에 걸렸다. 주어지는 일도, 그것이 쓰이는 과정도 못마땅할 때가 있었다. 끓어오르는 분노와 무력감을 삭이며 직장이란 그저 살기 위해 다니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생각했다. 삶은 누구에게나 단 한 번뿐이고, 억지로 감당하며 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고. 산세베리아가 화분 가득 몸을 키우듯, 나를 담은 회사란 그릇도 어느새 작아졌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처음부터 그랬을까. 작은 화분도 작은 생명에겐 충분한 터전이었을 테다. 심긴 식물에 비해 화분이 너무 크면 과습으로 고생하거나 꽃을 피우는 시기가 늦어지기도 한다. 결국 제 몸에 맞는 화분을 고르는 것이 중요한데, 분갈이는 작은 화분에서 더 큰 화분으로 옮겨가는 일종의 성장의식과 다르지 않다.
온정, 따스한 시선으로 공감에 이른다
작은 화분에 담긴 식물은 어떠한가. 잎을 떨구고, 색이 누렇게 변하고, 뿌리를 화분 아래 물구멍으로 뻗는다. 비좁은 공간에서 몸을 부대끼며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려 한다. 그러다 결국은 성장을 멈춘다.
사람에게도 분갈이가 필요하다. 제 성장에 맞는 터전이 주어져야 한다. 생명을 위한 터전이지 터전을 위한 생명이 아니므로, 제게 맞는 터전을 찾아 기꺼이 나가야 한다.
<식물카페, 온정>은 하루 동안 현재의 식물가게를 찾은 이들의 이야기다. 오랜 고시생활을 끝낸 사회초년생과 새로운 시작을 염두에 둔 사내, 그런 그를 만류하는 애인의 이야기가 연이어 펼쳐진다. 현재를 찾은 옛 후배와 현재가 가진 아픔도 너무 급하지 않게 소개된다.
누구나 하나쯤 품고 있을 사연과 고민들이 식물원에서 듣는 라디오처럼 선선한 분위기 가운데 하나씩 소개된다. 감독은 그 가운데 어느 하나쯤은 영화를 보는 이의 삶과도 맞물리길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이직과 헤어짐, 치유와 안정과 성취 가운데 서 있을 관객들이 제 것과 비슷한 모양의 고민을 들여다보며 마음을 나누길 바라는 것,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온정'은 그때서야 본연의 의미를 드러낸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