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게재, <오늘 출가합니다> 영화평
[김성호의 씨네만세 333]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오늘 출가합니다>
친구가 출가를 한단다. 멀쩡히 결혼해 장성한 딸까지 둔 아버지가 갑자기 출가라니. 하긴, 중년의 사내란 어디다 말할 수도 없는 고민을 저만 열어보는 서랍장에다 콕- 하니 처박아두고 사는 존재인 법이다.
진우(나현준 분)라면 틀림없이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성민(양홍주 분)이 머리를 깎는다는 소식에 가까운 친구들이 모였다. 이혼을 하고 반년째인 성민은 속세의 무엇이 그리도 고단했던지 산 깊고 물 맑은 절간으로 들어가길 결심했단다. 어련히 고민이 깊었을까, 친구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성민의 출가를 응원한다. 하기야, 제 삶 하나 지탱하기 버거운 팍팍한 세상에서 친구라고 해봐야 응원밖에 무얼 더 하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웬걸, 성민이 진우에게 난감한 부탁 하나를 한다. 제가 출가할 사찰까지 배웅해달란 것이다. 차를 몰고 한나절은 가야할 판, 영 껄끄러운 제안이다. 그렇다고 거절하기도 난감하다. 곧 속세를 떠날 오랜 친구 아닌가 말이다. 진우의 난감한 기색을 읽어서일까, 성민이 재빠르게 말한다.
"데려다주면 내 차 줄게."
친구 차 받으려 떠난 출가배웅기
둘은 이제껏 성민의 차였고, 곧 진우의 차가 될, 현재는 누구의 것인지 영 난감한 차 앞에 선다. 진우는 이내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성민은 그런 그에게 말한다.
"아직 잘 나가, 500km는 거뜬하다고."
연식이 얼마나 된 건지 짐작하기도 어려운 구형 코란도를 타고 둘은 절로 향한다. 태웅사라 이름 붙은 그 절은 성민이 지난 6개월 간 모신 스승이 추천한 곳, 앞으로 성민이 불가의 제자로 거듭날 곳이다.
나이든 코란도에 올라타 오래 달린 끝에 성민과 진우는 태웅사에 도착한다. 어깨 떡 벌어진 규모 있는 절에 성민도 못내 자랑스런 모양, 진우도 어딘가 경건해져 둘은 잘 가시오 스님, 또 보자 친구 하고서 뜻 깊은 인사를 나눈다.
친구를 보내고 돌아오는 진우는 어딘지 허전한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진우의 사정도 영 개운치가 않다. 영화 PD로 일하는 진우는 하던 일이 목 아래 턱 걸려 내려가지 않고 있다. 3년 넘게 붙들고 있던 시나리오에 겨우 투자자가 붙었는데 주인공을 여자에서 남자로 바꾸자는 황당한 요구를 한다.
따르지 않자니 투자자가 떠나고, 따르자니 감독이 방방 뛰는 난감한 상황에 진우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래도 어쩌랴, 돈 주는 쪽이 갑인 것이다. 진우는 굽힐 생각 없는 감독에게 주인공의 성별을 바꿔보자고 설득하고 또 설득한다.
마음처럼 안 되는 인생, 어디 이들 뿐이랴
출가하는 성민이나 그렇고 그런 무명 제작자 진우나 삶이 영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다. 성민은 이혼한 지 반년 째, 진우 역시 아내와 떨어진 지 오래다. 진우는 서울 한 여관에서 청소일 따위를 하며 돈을 번다. 명색이 영화 제작자지만 영화로만 먹고 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손님 빠진 객실에서 시트를 걷고 청소를 하는데, 마음은 멀리 영화판에 가 있다.
서울에서 일한다는 핑계로 아내를 찾지 못한 지 한참이다. 꿈이 컸던 젊은 시절을 금세 지나가고, 이젠 장모 있는 처가에 가는 게 영 불편하다.
답답함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진우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방금 전 절로 들어선 성민이다. 뭔가 싶어 전화를 받아보니 출가에 실패했단다. 나이가 너무 많아서란다. 이런 젠장, 출가도 인생도 쉽지가 않다.
<오늘 출가합니다>는 색다른 로드무비다. 출가하려는 친구와 그를 배웅하는 친구의 짧은 여행기다. 결심이 무색하게 출가는 쉽지 않고, 배웅의 여정은 여행이 되고 만다. 이 절은 이래서, 저 절은 저래서 출가를 거절하니, 인생이 어려운지 출가가 더 어려운지 도통 구분하기 어렵다.
허랑한 두 사내의 여정, 우리라고 다른가
진우는 출가를 거부하는 스님에게 "여기 한 번 나와 보라" 성을 내고, 성민은 절 마당에서 공연히 술판을 벌인다. 술이 깨니 민망해진 두 사내, 염치없이 푸른 산천을 허랑하게 쏘다닌다.
그때부터 영화는 완연한 로드무비가 된다. 바닷가 마을에선 성별 바꾼 옛 친구를 만나고, 자연스러운 몸짓에 충격을 받고, 코란도 몸뚱이에 요상한 그림을 박아 넣고, 어찌어찌 헤어져서는 각자가 있을 곳으로 돌아간다. 짧은 여정이 무엇을 바꿨을 진 분명치가 않은데, 분명한 것은 무언가 바뀌기는 바뀌었다는 것이다.
허랑한 두 사내의 좌충우돌 여행기는 어딘가 친숙하고 익숙한 감상을 일으킨다. 성민에겐 쉽지 않은 출가기이고 진우에겐 의도치 않은 가출기지만, 관객들은 인생 어딘가에서 한 번쯤 마주할 법한 고민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 무수한 고민 끝에서 두 사내가 선택한 길은 사람 수만큼 많은 인생의 갈래 중 고작 둘일 뿐이다. 이들이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역시 수많은 갈래 중 어느 하나씩을 골라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영화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주인공과 조연들과 영화를 보는 우리의 삶이 모두 어느 하나의 갈래일 뿐임을 알게 한다는 것, 서로가 아등바등 애쓰며 사는 인생 가운데서 오늘 만날 누군가의 갈래를 보다 눈여겨보게끔 한다는 것 말이다. 어떤 연민과 응원의 시선으로.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