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누군가는 제 삶과 하등 연관이 없는 것에 눈물을 흘린다. 땀흘려 손을 뻗고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부른다. 아버지는 어린 내게 그깟것 보아야 밥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고 못마땅해 하셨지만 나는 밥이며 쌀만큼 중요한 무엇이 빚어지고 있음을 알았다. 내가 이토록 하잘것없어 보이는 일에 나를 놓아두곤 하는 건 삶 가운데 제가 애정하고, 지키고자 하며, 응원하는 무엇들을 늘려가는 이들과 가까이하고 싶어서는 아니었나. 나 아닌 곳으로 나를 이끌어 마침내는 나의 경계를 넓히는 일, 그리하여 나의 것이 된 것에 책임을 다하는 일이야말로 소년이 남자가 되어가는 길이라고 믿어왔던 터다.
경기장에 들어서기 위해 가방을 칸칸이 열어 까뒤집도록 한, 그리하여 귀한 맥주캔들을 빼앗고 땡볕에 이십분 가까이 머물도록 한 이 빌어먹을 종자들은 제 삶에서 단 한 차례도 앞으로 나아가본 일이 없을 것이다. 제게 주어진 그 아까운 시간들을 되는대로 까먹으면서 남탓만 해온 한심한 치들임에 틀림없는 일이다. 일찌감치 주어졌을 그 작고 사소한 모든 기회가 눈앞에서 알알이 짓이겨지는 가운데서도 그깟것 내게는 하나도 소중하지 않다거나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다거나 그 비스무리한 온갖 변명을 입에 달고 비겁하게 살아왔을 게 틀림없다. 이 같잖은 자들이 남몰래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것도, 개똥철학 비스무리한 무엇조차 내놓지 못하는 것도, 이렇다할 타깃을 겨냥해 계획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란 사실이, 그저 되는대로 아무나 죽이고선 순순히 잡혀가는 그 꼬라지가 나를 분노케 한다. 이 세상에서 이루거나 지키거나 가지고픈 무엇도 남기지 못한 한심함의 증거가 낱낱이 묻어나서다.
이 시발것들은 그토록 한심한 삶을 살아오고도 제가 단박에 이룰 수 있는 대단함이 있다는 망상을 그치지 않는다. 그리하여 지나가는 누구에게 칼을 꽂는 것인데, 그로부터 누구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쾌감이며 비로소 세상이 제게 주목하는 모양에 우쭐함 비스무리한 걸 느꼈으리라 생각하니 치가 떨린다는 게 무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말하자면 내가 며칠 동안 조립한 글라이더를 짓밟아 부순 사학년 이반 어느 십세기가 떠오르는 일이다. 그 녀석은 그 글라이더가 몇달동안 놀이터 흙바닥을 뒤지고 자판기 환불구에 손을 넣어가며 겨우 산 것이란 것을, 세상 온갖 시시한 놈들에게 실실대며 이것저것 빌리고 구한 끝에 겨우 만들었단 것을 전혀 상관하지 않고서 내것이 제것보다 더 멀리 오래 난다는 당연한 사실과 내가 저보다 몸집이 작다는 이유만으로 되돌릴 수 없는 짓을 저질렀던 것이다. 할 줄 아는 거라곤 망치는 것 뿐인 이런 치들은 바로잡을 기회 또한 차버리게 마련이다. 그러니 기껏 뱉는 말이라곤 니가 어쩔 건데 그따위인 것이고 나로선 내가 어찌할 수 있는지를 찬찬히 알려줄 밖에 없는 일이다. 이런 녀석에게 자전거 바퀴를 펑크내거나 책가방을 불로 태우거나 안경 다리를 꺾어주거나 거듭 이해할 수 없는 재난을 닥치게 해주지 못한다면 어린이의 삶이란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 온통 하찮은 지식만 주입할 뿐인 학교라는 공간이 그래도 십수년이나 다닐만한 가치가 있는 건 이러한 일과 수시로 맞닥뜨리며 제가 물러설 일과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을 구분토록 하고, 저질러도 될 일과 그래서는 안 될 일을 깨닫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제대로 가르치는 거라곤 그게 전부인 학교며 군대며 세상으로부터 이 모자란 것들은 대체 무엇을 배웠는지 모를 일이다.
이 안쓰런 세상에도 과분한 선의가 있음을 목격한다. 세상 하잘것 없는 인간조차 가만히 알아가다보면 빌어먹을 정이 가는 때가 있는 것인데, 지켜야지가 아닌 죽여야지로, 망쳐야지로 제 생을 몰아간 이 덜떨어진 애새끼들을 어찌해야 할까. 실패를 거듭하는 이 사회가 지킬 것 없는 종자들을 다루는데 실패하여 그나마 남은 선의조차 짓이겨지는 광경을 지켜보는 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세상은 이미 각자도생의 시대, 대단한 무엇도 갖지 못한 나는 오늘도 빠따 한 자루 가방에 꼽고서 아무곳에나 으르렁거릴 뿐이다.
그러고보면 두려워 떨만큼 강렬한 계획을 공포하고 누구누구를 겨냥하여 은밀하고 정확하게 칼을 꼽는 대단한 악적이 되지 않은 것에 안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분노와 좌절과 열패감 따위가 아무렇게나 떠다니는 이 비열한 거리에서 이들의 자멸적 계획이란 오로지 저들보다 시시한 이들만 격동케 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3. 8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