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여, 새 외투를 사서 입고 헌책을 읽어라

단상

by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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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란 내용보다도 발화자가 중요하다. 개쌉소리도 어여쁜 이에게 나오면 귀를 기울이지만 천년의 지혜가 담긴 말도 거렁뱅이가 찌끄리면 개짖는 소리 취급이다. 낡은 외투를 그냥 입고 새 책을 사란 말도 그렇다. 백수십년 전 신학자의 말로는 울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만, 21세기 홍대 중심가 도서관 벽짝에 붙는다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말하자면 쌉소리란 뜻인데 오가는 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읽고 있다니 화가 치밀만도 하지 않은가.


글도 책도 만만한 시대, 책이야 빌리면 될 일이다. 외투는 어디 그러한가. 빌려주는 이도 없거니와 추위를 피하고 몸이나 가리자고 옷을 입는 시대는 진즉에 끝나버린 것이다. 더구나 여기는 홍대 복판이다.


허름한 인간은 허름한 취급을 받는다. 낡은 외투를 입고 쓰는 글은 오늘 나와도 낡았다고 여겨진다. 반대의 경우는 얼마나 흔한가.


대개 새 외투는 헌 것보다 낫지만 새 글이란 그렇지가 않다. 신간 만 권이 열 권 고전보다 못한 게 현실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옛 사람보다 무지하고 얄팍해서라고? 그렇지가 않다. 영리한 이들이 세련된 외투를 입고 낡은 글을 쓰는 광경을 자주 목격한다. 새 옷을 입고 대강 쓰는 것이 반대보다 효율적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 옷은 입는 이를 세련되게 하지만 새 책이란 자리나 차지할 뿐이다. 지식의 전당이라면 책 대신 옷이나 사입으라고 그렇게 권할 일이다. 책꽂이만 살찌우는 허영따위 일찌감치 내던지고서 홍대 복판에 박힌 이곳 마포평생학습관으로 오라고 말이다. 독려할 것은 독서이지 새책이 아니고 경계할 것은 낡아지는 것이지 새 외투가 아니다. 지금껏 수천권쯤 읽은 내가 겨우 터득한 지혜이니 의심이 된다면 지난 십여년간 베스트셀러 목록을 좌악 뽑아 읽어보면 알 일이다. 개중 진정으로 가질 만한 책이 몇권이나 되는지를.


불행히도 나는 낡은 외투를 그냥 입고 새 책을 사모으는 삶을 살았다. 그로부터 길러진 건 무신경함이고 사라진 건 패션센스이니 내가 이런 게시물에 황당해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부디 청년이여, 새 외투를 사입고 헌책을 봐라.



2023. 8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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