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푼 일이다

단상

by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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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술술 넘어가는 건 술푼 일이다. 술푸다는 건 어리석다는 뜻이다. 무언지를 알면 그리 술술 넘길 수는 없을 테니.


술은 취하는 것이다. 핏줄을 타고 뇌까지 기어오르는 알코올이 인간을 취하게 한다. 그 알코올을 얻는 건 얼마나 고단한 작업인지. 효소가 당을 먹고 내놓는 게 알코올이다. 너무 먹어치우면 써지고 못 먹으면 달아지며 잡스런 균이 들어갔다가는 시큼하고 역해서 버릴 밖에 없다. 그런 건 술이 아니라 술 비슷한 무엇이다. 취하는 게 아니라 그 비슷한 무엇으로 이끄는 것이다.


말하자면 알딸딸해지는 건 어려운 일이다. 뭐 하나만 잘못돼도 얼딸떨하거나 알딸떨하거나 얼딸딸해져서는 도저히 마실 수가 없게 되고 만다. 벌쭉벌쭉 들이켰다가는 지끈지끈하여 일어날 수 없는 괴로운 날을 맞는다. 그쯤이면 술이 아니라 독이라 불린대도 좋겠다.


술이 되기 위하여선 기술이 필요하다. 발효하고 여과하고 덧빚고 끓이는 게 죄다 기술이다. 그뿐인가. 발효엔 시간이, 여과엔 노력이, 덧빚는 덴 노동이, 끓이는 데는 정성이 든다. 그 뒤에야 비로소 한잔 맑은 술이 내어지는 일이다. 알딸딸하게 취하여 처진 이는 달떠지고 조급한 이는 여유로워지는 귀한 술 한 잔이 태어난다.


모 심고 잡초 뽑고 수확하여 깎아내는 일은 어떤가. 세상 이편의 곡식이 세상 저편 양조장에 흘러들기까지 견뎌야 할 파도는 또 얼마인가. 술의 기막힌 사연을 듣고서는 아무렇게나 술을 술술 넘길 수가 없는 일이다.


차가운 술잔을 입술에 대고서 술에 담긴 사연들을 짚어본다. 술이 겪은 그 모든 사연을 술술 삼키는 건 도대체 얼마만큼 술푼 일인지.



2023. 8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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