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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스무살의 회고

벽이 없을 땐 땅은 하나였다

by 김성호

벽이 없을땐 땅은 하나였다.

그 땅에 누군가 울타리를 만들었다.

그저 들꽃을 키우고 가끔 누워있을 땅이 조금 필요했을 뿐이었다.

욕심이 아니라 그저 조금만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땅을 가꾸는 게 너무 좋았다.

그가 땅을 가꾸고 있으면,

지나던 사람들은 그를 보고 인사를 했다.

그때마다 그는 문을 열어주었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는 울타리 밖에 나가지 않게됐다.

사람들도 울타리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울타리 밖 어디보다도 좋은 이곳이 자신의 땅이 아니던가.

그는 자신의 땅을 무엇보다도 사랑했다.


어느 날, 그가 땅을 가꾸고 있을 때 한 친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깟 울타리 부숴버리고 나와 이야기나 하는 게 어때?'

그는 친구보다도 자신의 땅을 사랑했다.

그래서 외쳤다. 필요했던 것 보다도 더 큰 소리로.

'난 이 울타리가 좋아. 너 같은 애 보다 백배쯤은 더!'


그는 볼품없는 울타리가 마음에 안들었다.

그래서 울타리를 부수고 담을 쌓았다.

튼튼한 벽돌 담이었다.

이젠 담밖을 지나는 누구도 안을 볼 수 없었다.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려면 초인종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담밖의 사람들은 점점 그를 잊어갔다.

그가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고, 들판에 핀 꽃을 좋아해서 낮에는 같이 꽃구경을 하고 밤에는 함께 누워 별을 보곤 했다는 것도 모두 잊어갔다.

이제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몇 명 뿐이었다.

그는 그들에게만 문을 열어주었다.


어느 날, 담밖을 지나던 누군가가 그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한창 텃밭을 갈던 중이었다.

'누구야, 이렇게 바쁜데.'

그는 투덜대며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 한 소녀가 서있었다.

'방해가 안된다면 안을 좀 구경해도 될까요?'

그는 처음보는 소녀에게 자신의 땅을 보여주기 싫었다.

어쩌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담이 햇빛을 가려 점점 죽어가는 꽃들을 보여주기가.

그래서 그는 소리쳤다.

'너같은 애에겐 보여주고 싶지 않아. 가버려.'


그는 사람들이 오지 못하게 성벽을 쌓기 시작했다.

담을 높이고 해자도 팠다.

항상 경비들이 성을 지키고 사수들은 밖을 겨냥했다.

이젠 누구도 허락없이 성문을 두드리지 못하리라.


그는 자신의 성이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친구들을 초대했다.

비싼 그림을 걸고, 악사들에겐 음악을 연주하게 했으며, 예쁜 무희들에게 춤을 추게했다.

그는 뽐내며 말했다.

'어때? 내 성 정말 멋지지?'

친구는 조용히 말했다.

'이 성벽은 너무 높아. 햇빛이 들지않아 꽃들도 죽어가고, 밤이면 별도 보이지 않아. 너는 왜 이리도 높은 성벽을 쌓은 거니?'


그는 자신의 땅을 돌아보았다.

더이상 아름다운 꽃은 없었다.

너무 높은 성벽에 하늘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성벽보다 별과 꽃을 사랑했다.

그래서 성벽을 허물기로 결심했다.


성벽을 허문 후에 그는 알게 될 것이다.

울타리가, 담이, 성벽이 사라져도 그의 땅은 그대로라는 것을.

울타리가 없을 때에는 땅이 하나였다는 것을.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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