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산다는 건 왠지 손해보는 것 같아요. 뭔가를 계속 잃어버리게 되잖아요. 왜 엔트로피 법칙이라는거 있죠? 자연현상의 변화는 안정에서 불안정으로, 질서에서 무질서로 간다는 것 말예요. 마치 그거랑 같아요. 가만히 있으면 계속 흐트러지고, 사라져버려요. 그렇다고 해서 잃지 않기 위해서 애를 써봐도 고작 잃어가는 속도를 늦출 뿐이라는걸 곧 깨닫게 되죠. 그럴 때 난 정말 슬퍼요."
"나도 그래. 어려선 나를 사랑해준 사람을 잃었고, 나이가 들어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어. 내가 너만큼 어렸을 땐 잃는 것보다 얻는게 많았었지. 하지만 난 벌써 이렇게 나이를 먹었고 이젠 얻는 것보다 잃는게 많아. 전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항상 '하루가 갔구나.'라고 생각했어. '이렇게 몇번 더 자고 일어나다보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순간이 오겠지'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어쩌겠어. 그게 산다는 건데. 알고보면 내가 잃어버린 것도 처음부터 내겐 없었던 거야. 어차피 처음엔 제로였으니까."
"그래도 난 누군가 죽는게 슬퍼요."
"사실 죽음이라는 것 자체는 슬픈게 아니야. 죽음이 슬픈건 남아있는 사람들 때문이야. 넌 죽은 사람이 우는걸 본 적이 있어? 죽은 아이의 엄마가, 죽은 엄마의 아이가 슬퍼하기 때문에 죽음은 슬픈거야. 하지만 정작 죽은 사람은, 조금 두렵고 아쉽기는 해도, 슬프진 않아.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거든. 누구도 죽어본 사람을 만나지 못했잖아."
"하지만 죽으면 다시는 만날 수 없잖아요."
"그건...분명히 슬픈 일이야. 하지만 곧 새로운 걸 찾게 될거야. 넌 어렸을 때 키우다 죽은 병아리들 때문에 오늘도 슬퍼하고 있진 않잖아. 병아리가 죽은 다음엔 고양이가 생겼고 어제 그 고양이가 죽었을 뿐이야. 오늘은 강아지가 생길지도 몰라. 그럼 넌 곧 강아지만 생각하게 될거야. 그리고 가끔씩 병아리와 고양이를 떠올리겠지. '아주 귀여웠었는데'하고. 만나면 언젠간 헤어져야 하지만 그게 두려워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않아선 안돼. 그럼 아주 외로울 테니까."
"하지만 만약 아저씨가 죽는다면,.아저씬 무섭지 않아요?"
"내가 걱정하는건 내일 내가 못 일어나면 이렇게 너와 아침을 먹을 수 없을테고, 그럼 네가 조금 슬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야. 만약 네가 조금쯤 나를 생각해준다면, 그래서 조금쯤 쓸쓸한 기분이 된다면 나는 기쁘겠지만, 네가 오늘처럼 아침도 못먹을 정도로 상심해있다면 난 몹시 슬플거야. 그리고 절대로 두려워서 새로운 것을 피해선 안돼. 기억해!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인생은 멋진거야."
"그래도 나는 싫어요. 아저씨가 없으면 슬플거예요. 지금보다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가 그러잖아.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뜰테니까.'라고. 만약 네가 오늘 자서 내일 일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해봐. 네가 없는데도 내일 동쪽에선 아무렇지도 않게 해가 뜨는거야. 조금은 매정하지만, 사실 그건 정말 멋진거야. 네가 없는 곳에서도 너의 강아지는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테니까. 나는 내가 일어나지 못한 다음날에도 네가 여기서 아침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예쁜 강아지랑 같이 말야."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