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8일 밤, 크리스탈 호가 이집트 포트사이드Port Said 앞바다에 도착했다. 말로만 듣던 수에즈의 입구, 항만 앞 앵커리지는 이미 운하를 통과하려는 배들로 만원이다. 우리는 포트사이드 항만당국이 도선사 탑승 시각으로 통보한 새벽 세시 반까지 이곳에 앵커를 놓고 대기한다.
수에즈를 통과하려는 배는 포트사이드 측이 통보한 시각에 맞춰 이곳 앵커리지에서 대기를 해야 한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도선사가 배에 오르고 배들은 항만당국이 부여한 순번대로 줄지어 운하를 통과한다. 포트사이드는 배의 종류와 선속 등을 고려해 콘보이convoy라 불리는 조를 짜는데 많게는 스무 척 정도가 한 콘보이를 이룬다. 선속이 빠른 편인 크리스탈호는 세 번째 순번을 받았다.
수에즈 운하는 처음 배를 타기로 결정하면서부터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알에서 새의 모습을 볼 줄 알았던 위대한 사내 페르디낭 드 레셉스와Ferdinand de Lesseps와 그의 친구 사이드 파샤Said Pasha의 합작품, 인간의 힘으로 바다와 바다를 연결해낸 대공사의 현장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하길 원했다. 두 사람이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뚫어낸 운하가 전 세계의 배가 모여드는 길목이 됐다. 한 해 이곳을 통과하는 배만 3만여 척. 이 운하로 인해 이집트는 매년 우리 돈 3조 원 가량을 앉아서 벌어들인다. 얼마나 놀라운 작품인가.
보름 전 북해를 떠나온 크리스탈호의 다음 목적지는 요르단 아카바Akahba다. 아카바는 홍해 북서부 끝단에 위치한 항구로 시나이 반도와 아라비아 반도 사이에 놓여 있다. 17세기 대항해시대를 떠올려보자. 그 시절 북해에서 아카바까지 뱃길로 가려면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아라비아 반도까지 항해한 다음 다시 홍해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비스케이만과 폭풍의 곶, 적도 무풍대 같은 위험구역이 도처에 도사렸다. 해적의 위협도 무시할 수 없었다. 보급기지도 마땅치 않으니 아프리카 대륙을 도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모험이었다.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며 그 모든 어려움이 한 번에 해결됐다. 항로는 획기적으로 짧아졌고 위험도 확연히 줄었다. 오늘날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대형 상선은 수에즈 운하를 한 번 지나기 위해 기꺼이 25만 달러가 넘는 돈을 지불한다. 그편이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가는 것보다 효과적이란 판단에서다. 우리 역시 바로 이곳 수에즈를 통과해 요르단 아카바에 들어갈 계획이다. 북해에서 지중해로 방향을 잡은 건 이 때문이다.
새벽 세시 반, 배에 오른 도선사는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마실 것이라도 주려 했더니 아직 해가 떠 있다며 거절한다. 그런데 컵을 들고 물러나 생각해보니 당황스럽다. 대체 해와 물이 무슨 상관이란 거지? 궁금해져 도선사에게 이유를 물으니 귀찮다는 듯 팔을 내저으며 짧게 답한다. “라마단Ramadān”
아차 싶었다. 라마단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통용되는 금욕의 달이다. 이슬람권에선 매년 이슬람력(曆) 9월을 라마단이라 하여 일체의 욕망이 깃든 행위를 금한다. 해가 떠 있는 동안 음식을 먹는 것은 물론 담배를 태우거나 성관계를 해서도 안 된다. 이는 이슬람 신자에게 부여된 다섯 가지 의무 가운데 하나로 모든 이슬람교 신도들이 철저히 지키는 관습이다. 그 라마단이 지금 한창인 것이다.
이런저런 책을 통해 라마단은 9월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올해는 5월 중순부터 라마단이 시작됐단다. 이슬람력이 윤달이 없는 태음력인 탓에 그레고리력보다 한 해에 열흘 이상이 적어 매년 조금씩 라마단이 빨라지기 때문이란다.
이집트인이며 이슬람교 신도인 도선사는 그래서 낮 동안 기운이 없다. 그는 항해장비 앞에 의자를 갖다놓고 앉아 스마트패드에 드라마를 띄워놓고 항해 내내 들여다본다. 음식은 먹지 않으면서도 드라마는 챙겨보는 게 라마단의 의미와 맞나 싶다가도 축 처진 그 표정을 보면 ‘그래, 저거라도 봐야 졸지는 않겠구나’ 싶기도 하다.
사실 선교에서 드라마를 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배 전체를 통제하고 지휘하는 장소인 선교는 배에서 가장 엄격하게 관리되는 곳이다. 근무자는 늘 깔끔한 정복 차림이고 잠시 오가는 선원들조차 슬리퍼나 반바지를 착용하지 못한다. 하물며 드라마를 보는 일이야 허락될 리 만무하다. 제 선원들이 그러한데 남의 배에 오른 도선사라면 더욱 예의를 지켜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놈의 수에즈 도선사는 눈치도 보지 않고 드라마에 열중이다. 돈을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건 우리인데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만약 수에즈가 상선들에게 대체할 수 있는 곳이었다면 도선사의 태도는 결코 이럴 수 없었으리라.
수에즈 운하는 대체할 수 없는 유럽과 아시아의 통로다. 아프리카를 돌아가는 뱃길이 있다고는 하지만 거리차이가 엄청나 비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통항료로 수억씩 받아 챙겨도 들어가려는 배가 줄을 잇는 이유다. 그렇다고 운하를 관리하는데 엄청난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니 이집트 입장에선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따로 없다.
물론 이 거위가 그냥 태어난 건 아니다. 수에즈 운하는 그 탄생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침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부침은 수에즈가 가진 엄청난 가치에서 비롯됐다.
포르투갈의 용감한 항해사들이 아프리카를 돌아 아시아에 이르는 항로를 개척한 이래, 바다를 장악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했다. 아시아로부터 들여오는 물자가 산업화의 동력이 됐고 산업화는 곧 부강함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해상패권은 처음엔 포르투갈과 스페인에게, 다음엔 네덜란드와 영국에게 돌아갔다. 십 수 세기 동안 지중해 무역에서 소외됐던 이베리아 반도와 북해의 국가들이 유럽의 강자로 군림했다.
지중해 바닷길을 통해 서아시아로부터 후추를 들여와 막대한 부를 쌓은 베네치아 상인들이나 영국에 눌려 장거리 해상무역을 꿈꾸지 못한 프랑스는 당연히 대안을 모색해야 했다. 이들은 레셉스보다 적어도 한 세기는 앞서 이집트에 관심을 가졌다. 지중해와 홍해를 갈라놓은 이집트의 좁은 땅을 뚫어낼 수만 있다면 지중해에서 바로 아시아로 나가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지중해와 아시아가 연결된다면 해상패권은 지난 수천 년 간 그러했듯 다시 지중해로 옮겨올 것이 자명했다.
그러나 해상패권을 장악한 당대 최강국의 방해공작과 얼마가 들어갈지 알 수 없는 건설비용, 척박한 자연환경, 부족한 제반지식이 이들의 도전을 번번이 좌절시켰다. 엎어진 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남겼고 그 이유는 이내 법칙처럼 단단해졌다. 이후에도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운하를 꿈꾼 이가 드물게 있었으나 어느 누구도 이를 현실화시킬 엄두는 내지 못했다. 레셉스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두 바다를 잇는 운하계획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실현됐다. 레셉스의 열망과 파샤의 믿음이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한 계획을 가능케 했다. 프랑스에선 레셉스가 발행한 수에즈 운하 주식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여전히 회의적인 이들이 더 많았지만 레셉스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지중해 연안엔 파샤의 이름을 딴 도시 포트사이드가 건설됐다. 전 유럽으로부터 운하건설에 필요한 물자가 포트사이드로 모여들었다. 증기로 움직이는 수백 수천의 기계, 노벨이 이제 막 발명한 다이너마이트, 그러고도 파샤가 제공한 수만의 노동력이 필요했다. 사막 한 가운데서 이들이 먹고 마셔야 할 것을 옮기고 지켜내는 일 또한 쉽지 않은 과제였다.
인류역사에 기록될 대공사는 착공 10년째인 1869년에 끝났다. 운하의 소유권은 돈을 댄 프랑스와 이집트가 지분에 따라 나누어 가졌고 이후 이집트 지분을 매입한 영국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그러다 1950년대 쿠데타로 집권한 나세르Gamal Abdul Nasser가 1956년 운하를 다시 이집트의 것으로 돌려놓는다. 분개한 프랑스, 영국, 이스라엘은 즉각 이집트를 침공하지만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전 세계 여론의 비난에 부딪혀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눈뜨고 지켜보게 된다. 이란과 리비아, 나이지리아, 알제리 등이 미국과 영국 등 서구 제국주의 자본이 소유했던 유전의 국유화 조치를 단행한 것도 이즈음의 일이다.
배가 운하에 접어들자 작은 보트들이 크리스탈호 옆구리에 붙었다 떨어지길 반복한다. 수에즈 운하를 지나기 위한 수속절차로 보트에 탄 공무원들이 갱웨이를 따라 배에 오르고 내린다. 수에즈는 세관부터 검역, 출입국 등 수속절차가 모두 운항 중에 이뤄진다. 배가 붙으면 담당 공무원이 본선 5번 데크에 올라 수속을 진행하고 절차를 모두 마치면 다시 내려간다. 배가 붙을 때마다 보트에 선 사내들이 본선 선원들을 향해 ‘씨가레트, 씨가레트!’하고 외친다. 공무원들이 상선을 상대로 담배를 뜯어내는 것을 보고 배운 것일 테다.
사실 후진국이면 어느 곳이든 선원들에게 물건을 요구하는 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맡겨 놓은 것도 없으면서 배에서 당연히 물건을 내놓아야 한다는 듯 태도도 당당하다. 난감한 건 입항절차를 위해 나온 공무원이 챙겨갈 걸 내놓으라고 할 때다. 이런 경우 선원들은 대부분 이들이 원하는 만큼을 내어준다. 요구하는 걸 내주지 않았다가는 온 배를 뒤집고 문제 삼을 거리를 만들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루 용선료만 수천 만 원인 배가 출항정지 처분이라도 받아 항구에 발이 묶이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사소한 실수를 트집 잡아 벌금이라도 먹게 되면 그것도 골치 아프다. 이러니저러니 배로선 거마비조로 담배 몇 보루씩 내주는 게 보통이다. 아예 현지 업무를 돕는 대행사가 나서 세관, 검역, 출입국사무소 측에 직접 전달하겠다며 담배 십 수 보루를 받아가기도 한다. 선원들로선 이 담배가 어떻게 나눠지는지 알 도리가 없다.
담배만이면 다행이다. 필리핀 바탕가스Batangas에서 배에 오른 십 수 명의 공무원과 수행원들은 거나하게 식사를 하고 담배를 챙긴 뒤 주방 냉장고에서 김치까지 꺼내 한 박스 챙겨가기도 했다. 선진국 항구에선 한두 명이 간단히 처리하는 일을 두고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몰려다니는 이유는 명백하다. 서아프리카 항구에선 냉장고를 터는 건 기본이고 배에서 쓸 페인트까지 모두 챙겨들고 간단다.
하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해야지. 나이든 선원들로부터 한국 항만 공무원들이 과거에 얼마나 명성을 떨쳤는지 들어보면 후진국 항만에서 느끼는 분노도 조금은 잦아든다.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부산항 세관 공무원으로 등장하는 최익현(최민식)이 그런 인물의 전형이라 할 수 있겠다. 밀수품을 빼돌리고 뒷돈을 챙겨온 최익현이 화장실 천정 위에서 돈뭉치를 꺼내던 장면은 이들의 오늘과 어제의 우리가 내 생각만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폭 300미터의 좁은 수로를 따라 한참을 나아가는데 오른 편에 웬 탑이 하나 보인다. 높이 솟은 두 기둥 앞에 각각 사람 조각 하나씩이 지키고 섰다. 앞에는 ‘DEFENSE.DV.CANAL.DE.SUEZ’라고 적어놓았다. 유래를 알아보니 1차 대전 중 오스만투르크로부터 수에즈 운하를 지켜낸 걸 기념하는 탑이란다.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이집트의 종주국인 오스만투르크가 독일과 동맹을 맺고 수에즈 운하를 위협했는데 이집트가 가세한 연합군이 이스마일리아에 작전본부를 두고 두 차례 침략을 막아냈다는 것이다. 오스만투르크의 오랜 종속국 신세를 벗어난 이집트는 전쟁이 끝난 뒤 수 년 간의 투쟁을 벌인 끝에 보호국인 영국으로부터도 독립, 완전한 독립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집트와 수에즈 운하가 커다란 지정학적·경제적 가치를 지녔기에, 이를 보유한 약소국 이집트의 현대사는 거센 풍랑을 겪어야 했다. 영국과 프랑스, 소련과 미국이 이 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이집트는 끊임없이 변하는 세력판도 속에서 이집트의 생존과 현대화를 도모해야 했다. 나세르에 이어 이집트를 이끈 사닷Anwar Sadat,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무바라크Hosni Mubarak는 모든 실수와 잘못들 가운데서도 수에즈 운하에 대한 지배권만은 끝내 놓치지 않았다. 그 결과 수에즈는 피라미드와 함께 이집트의 마르지 않는 샘이 되었다.
운하 따라 네 시간 쯤 왔을까. 좁았던 뱃길이 탁 하고 트였다. 양편으로 끝 모르고 이어졌던 황량한 풍경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레이트 비터 호수GreatBitter Lake에 접어든 것이다. 본래 습지대였던 이 호수는 레셉스에 의해 운하의 일부가 됐다. 레셉스가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호수의 양편을 터 바닷물이 자유롭게 흘러들도록 한 것이다. 포트사이드에서 43마일, 수에즈까지 43마일 떨어진 이 호수를 끼고 건설기지가 마련됐고 기지는 금세 틀이 잡힌 도시로 발전했다. 도시는 사이드의 아들이자 이집트의 부왕이 된 이스마일 파샤의 이름을 따 이스마일리아가 되었다. 현재 수에즈 운하를 관리하는 운하관리 위원회가 이곳에 있고 레셉스가 살던 집터는 이스마일리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됐다. 남들보다 먼 곳을 내다보는 선각자는 많지만, 살아서 꿈이 실현되는 광경을 지켜본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운하가 뚫리고 수에즈가 세계 물류의 중심이 되었을 때 레셉스는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까?
여러 상념에 젖어 있는 동안 크리스탈호는 운하의 끝에 도달했다. 포트사이드를 출발한 지 꼭 열 두 시간 만이었다. 도선사가 타고 떠난 보트 뒤로 그 이름이 무색할 만큼 푸른 홍해가 두 눈에 가득 찼다. 불과 어젯밤까지 지중해 위에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수에즈를 건넌 것이다.
2018. 6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