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크리스탈호엔 모두 스물두 명 승무원이 타고 있다. 이 가운데 열넷은 한국인, 여덟은 필리핀 선원이다. 선장과 기관장 이하 사관 전원과 갑판장, 조기장, 조리장으로 구성되는 직장들까지 관리자급은 전원 한국인이다.
이제껏 경험한 사관들은 대부분 한국인보다 필리핀 부원들과 일하는 걸 선호했다. 필리핀 선원들이 더 적극적이고 일도 확실하게 처리한다는 이유에서다. 한국 부원들은 나이가 적어도 마흔 줄에, 예순이 넘은 이도 수두룩한데 필리핀 부원들은 또래가 대부분이라 다루기 편하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필리핀 부원들은 지적으로도 우수한 경우가 많다. 대부분 4년제 해사대학을 졸업했고 적지 않은 수가 3급 항해사 면허까지 갖고 있어 적어도 이론지식에선 한국인 부원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가진 면허는 한국 초임사관들과 같지만 자국 선박이 없어 사관으로 취업이 어려우니 부원으로 배를 타는 것뿐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사관으로 임관하길 희망하지만 자국사관을 우대하는 해운사들은 쉽사리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이들이 갑판원(OS)으로 일하고 받는 돈은 한 달 1000달러 남짓. 갑판수(AB)들에겐 1300달러가 지급된다. 같은 직급 한국인 선원들이 받는 돈의 1/3 정도다. 같은 회사라면 국내법에 따라 동일한 노동에 같은 임금이 지급되겠지만 선박관리회사는 외국인 선원과 관련된 업무를 현지 선원공급 업체에 위임해 지출을 최소화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필리핀에서 선원은 알아주는 직업이다. 육상에서 공무원이나 민간기업에 취업한 것보다 수입이 평균 세 배 이상이라니 그럴 수밖에.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필리핀에선 선원뿐 아니라 해외로 나가 달러로 봉급을 받는 직종이 인기가 높다고 한다. 과거 한국에서도 외항선원의 수입이 대단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니다.
필리핀 선원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몇 년 바다에서 고생하면 집도 사고 차도 사고 가족들도 부양할 수 있다는 계획이 줄줄 풀려나온다. 비슷한 또래지만 일찍 결혼해 아이까지 여럿 둔 선원들에게선 무거운 짐을 짊어진 자 특유의 비장미까지 느껴진다.
제프도 그런 선원 중 하나다. 아내와 아들 딸 두 아이를 고향에 두고 십년 넘게 배를 탄 베테랑 타수. 이제껏 번 돈으로 고향에 번듯한 이층집을 지어놨다는 그는 시간만 나면 휴대폰을 들이밀며 제 집이랑 아이들 자랑에 여념이 없다. 그 앞에서 지난번에 이미 보여주지 않았느냐고 항변해봤자 소용없는 노릇.
항상 웃는 낯에 가만히 있으면 귀찮을 만큼 다가와 말을 걸곤 하는 제프도 가끔은 조용할 때가 있다. 돌아보면 창가에서 가만히 하늘을 보고 섰다. 그런 때면 어김없이 보름달이 떴다. 묻지 않아도 안다. 육지에 두고 온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다. 아내와 자식, 부모와 친구를.
제프가 보름달을 보는 날이면 나는 내 아비를 생각한다. 먼 나라 미국으로 건너가 중년을 다 지내고 돌아온 그의 삶을 생각한다. 수년 만에 공항에서 멋없이 만난, 내 기억보다 훅-하니 늙어버린 사내의 몸과 얼굴을 생각한다. 그를 보고 지었던 내 표정들을 생각한다. 가장의 책임감을 짊어지려 홀로 뒤집어 써야 했을 눅눅한 외로움들을 생각한다.
존 스터지스의 <황야의 7인>에서 내가 좋아하는 배우 찰스 브론슨은 악당과 맞서는 총잡이들을 외면하는 제 아비를 비난하는 꼬마녀석을 두들겨 팬 뒤 이런 대사를 남겼었다. “네 아버지는 겁쟁이가 아니니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아라. 내가 총을 차고 있으니 용감해 보이더냐? 책임감이 있는 네 아버지가 나보다 더 용감하다. 너와 네 형제와 네 어머니에 대한 책임감 말이다. 그런 책임감이 훨씬 더 무거운 거다. 땅에 묻히는 그 날까지 멍에가 되는 거란 말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가족을 사랑하니까 그런 거지. 난 그런 용기를 가져 본 적이 없다. 어떻게 될 지도 모르면서 늘 허리가 휘어지게 일을 하고, 그게 바로 용기란다. 난 시작도 못하는 거란 말이다.”
난 그런 용감한 사내들과 부대끼며 살고 있다. 이 커다랗고 조그마한 배 위에서.
2018. 8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