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눈을 감으면 펼쳐지는 풍경이 있다.
오랫동안 그건 사각진 놀이터 담장을 넘어가는 노란 테니스공과 제 어깨 뒤로 공이 날아가는 궤적을 쫓던 옆 동네 아이, 친구들의 환호 사이로 오른손을 쭉 뻗고 베이스를 돌아 달리던 열한 살 난 내 모습이었다.
나이를 먹으며 작은 놀이터에는 몇 가지 새로운 풍경이 더해졌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하나는 스무 살에 떠난 지리산 여행이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같은 과 동기 둘과 찾은 지리산에서 우리는 새파랗게 반짝이는 젊음이었다. 산행 첫날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한달음에 올라가 헐떡이며 누운 그 자리 위로 흰수염고래만큼 커다란 흰 구름이 선선하게 헤엄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휴식이란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언제나 이 순간이었지.
삼박사일 종주길 둘째 날에 우린 조난이라기엔 민망하고 길을 잃었다기엔 심각한 상황과 마주했었다. 칠흑같은 밤이었고 목이 말랐고 지쳐 있었고 몹시 추웠지. 우릴 구한 건 지금은 폐쇄된 묘향암 처마 밑의 푸르른 풍경소리였다. 바람이 불어오면 티링-팅- 들려오는 소리를 쫓아 도착한 그곳에는 젊은 수도승이 교사로 일한다는 중년부부와 마주 앉아 김이 나는 차 한 잔을 나누고 있었어.
큰 스님 어제 자릴 비우셨다며 뜨끈한 된장국과 청하 한 병, 펄펄 끓는 큰 방까지 내어주신 배려 덕분에 우리는 벌벌 떠는 몸과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더랬다. 그렇게 맞이한 다음날 아침, 묘향암 명당자리에서 오줌을 갈기다 바라본 지리산 깊은 얼굴이 어찌나 멋있었는지, 이후로 한동안은 눈만 감으면 그때 그 순간이 떠올랐었다. 바람이 큰 나무를 흔드는 소리며 새들 지저귀는 소리, 바위 돌아 흐르는 계곡물소리, 스님과 중년 부부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소리, 떠나는 발길 뒤로 들려오는 고마운 풍경소리도 함께였었지.
스물여섯 남보다 늦게 간 군대에서 나는 GOP 철책선을 지키는 초병이었다. 화천.철원 민간인통제선을 한참 지나 없는 길을 내어 오른 산자락에 우리 막사가 있었고, 그곳에서 다시 한나절을 올라가면 이중 삼중으로 쳐진 철책선이 끝도 없이 길게 뻗은 섹터가 나왔다.
산을 제법 잘 탄다는 녀석들도 헐떡이며 오르는 언덕에는 둘둘 고가라 이름 붙은 초소 하나 우뚝 솟았는데, 여기서 아래를 바라보면 구불구불 이어진 철책선과 점점이 자리한 초소들과 그 사이를 오가는 병사들과, 골짜기들과, 능선들과, 짐승들과, 북한군들이 한눈에 들어오곤 하였다. 능선 넘어 태양이 떠오르고 하루에 단 몇 시간만 햇볕이 드는 둘팔육 초소가 데워질 무렵 돌아보는 섹터 풍경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말하자면 바다에서 내가 사랑한 것도 그와 같은 순간이었다. 바다와 하늘을 가르는 선이 유독 선명한 날이면 해가 물 너머 잠겨드는 모습이 아름다웠지. 그럴 때면 나는 갑판에 나가 해가 지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는데,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란 바로 이걸 가리키는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인도양을 가로질러 아프리카로 항해하던 어느 날인가, 수평선 너머 모습을 감추는 붉은 태양과 그것이 하늘과 바다와 구름을 공책삼아 그려낸 풍경을 기억한다. 그날 이후 가만히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해가 졌고, 하늘은 노래졌다가 붉어졌다가 검어졌으며, 별이 뜨고 달이 뜨고 바람이 불었고, 온 바다 가득히 낮은 파도가 일었다. 담장을 넘기는 노란공과 말간 풍경소리, 철책선 위 드넓은 하늘을 활공하는 독수리를 배경으로, 해가 지고 별이 뜨고 파도가 쳤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세상 마지막까지 간직하고픈, 내가 바다에서 길어온 가장 귀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얻은 것이 아예 없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그렇다, 오로지 네 덕분이다.
2018. 11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