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뭔가를 줄 서서 먹어본 일이 없는 나로선 인앤아웃이고 블루보틀이고 잠깐의 만족을 위해 몇시간씩 기다리는 선택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건 저들이 아닌 나의 문제다. 평생 어느 음식도 간절한 적 없었기에 줄 서 기다리지 않은 것이니까.
트웨인의 문장이나 토르나토레의 영상이라면 달랐을 것이다. 그들의 비기를 백만분의 일 만큼이라도 엿볼 수 있다면 네시간이 아니라 사백시간도 기다렸을 게 나란 걸 안다. 누군가 그런 나를 비웃는대도 세상에 아주 적은 이만이 귀한 걸 알아본다며 우쭐댔겠지. 부족한 건 관심이지 상품이 아니다.
평생 한 개의 버거 한 잔의 커피도 간절하지 않았단 건 부끄러운 일이다. 몇시간 줄을 서 맛봐야 할 햄버거와 커피가 있는 삶이란 얼마나 풍족한가. 자고로 간절할 수록 만족도 큰 법이다.
옷도 마찬가지다. 이제껏 십수벌의 옷을 가졌으면서도 옷장엔 아끼는 옷 한 벌이 없다. 교복과 군복이 차라리 친숙했고 다른 옷도 그렇게 입었다. 취향이란 것도 관심에서 출발하는데, 관심이 없으니 취향이 움트지 못했다. 옷을 사고 패션을 익히는 녀석을 보면 세상에 관심가질 일이 그토록 없는가 비웃기도 하였다. 그러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돌아보면 나는 참 편협한 인간으로 살았다. 그리하여 먹고 입는 일에 관심두지 않았다. 그 관성이 아직도 남아, 가끔은 옳지 않은 감정을 일으킨다. 살펴 경계할 일이다.
2019. 5.
김성호.